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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임은정 Oct 09. 2020

또 조울증이 재발할 줄이야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망상

"당장 나가!!!"


드라마에서나 듣던 말을 들었다. 당장 나가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가서 짐을 쌌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회사 밖을 나갔다. 근무시간에 돌아다니는 기분이 새로웠다.


'나는 더 잃을 게 없다.'

몇 년 전, 전남편과 살았던 집을 나오면서 들었던 생각이 또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눈에 뵈는 게 없어졌다.




학원 알바를 그만둔 후 이번에는 알바 말고 회사에 취직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찾아보다가, 무역 사무직원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합격했다. 소규모 회사여서 그런지, 처음에 협의한 내용 외에도 재고관리, 택배 부치기, 그리고 짐 나르는 일도 해야 했다. 그래도 초반에는 정시에 퇴근할 수 있었고 즐겁게 일했다. 이전에 했던 일들보다는 꽤 오래 일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여직원이 결혼과 동시에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사장님은 회사 사정이 좋지 않다며 나보고 그 직원 일도 맡아줄 수 있냐고 부탁하셨다. 버거울 것 같았지만 마음이 약해져서 알겠다고 했다. 경리 업무까지 하게 되면서, 전화 오면 바로 응대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내 일보다 우선으로 해야 했다. 원래 해오던 내 업무는 계속 뒤로 밀렸다.


매일 밤늦게 퇴근했고 회사 문을 잠그고 가는 건 늘 내 몫이었다. 두 사람이 하던 일을 갑자기 혼자서 하게 되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자려고 누웠는데 새벽에 해외 거래처에서 메일이 왔을 때, 긴급한 경우에는 번역해서 바로 상사에게 전달해야 했다. 퇴근해도 퇴근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하다 보니 몸에 이상이 왔다. 몸은 피곤한데 스트레스 때문에 잠이 안 와서 불면증에 시달렸다. 손이 덜덜 떨리고 가만히 있어도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온종일 모니터 앞에 있으니 눈도 뿌예지고 계속 침침했다. 그동안 사장님께 일이 버겁다고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웃으면서 투정 부리듯이 얘기해서인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그러다가 나중에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아시고 새로운 직원을 뽑으셨다.


그런데 직원이 들어오고 나서, 일을 가르치며 업무 처리를 하다 보니 퇴근 시간이 더 늦어졌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레스와 과로 때문에 몸이 안 좋아지니까 사장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너무 커졌다. 그동안 동료들에게 느낀 서운함도 한꺼번에 떠오르면서, 참았던 얘기를 마구 쏟아냈다. 대놓고 회사 욕과 동료들 험담을 거침없이 했다. 회사 사람들은 내 몸이 안 좋아진 것도 모르고 있었고 정신건강의학과에 주기적으로 는 것도 몰랐고, 내가 표현하지 않았으니 얼마만큼 힘든지 모르는 게 당연했다. 아무 내색도 안 하다가 갑자기 화를 내니 모두 당황했을 거다. 굳이 나쁜 말은 안 했어도 됐지만, 분노 제어가 안 됐다. 무서운 게 없어졌다.


갑작스럽게 변한 내 태도에 사장님이 화를 내시며 당장 나가라고 하셨을 때, 짐 싸서 회사를 나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앞으로 회사에 취직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동안 안 해봤던 걸 해봐야겠다고. 미용실에 가서 어릴 때도 안 해봤던 탈색을 했다. 평소에 안 신던 높은 힐을 신고 다녔다. 이틀 동안 잠을 1초도 안 자고 깨어있었는데 잠이 안 왔다. 생각이 빠르게 전환됐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즉흥적으로 차 렌트해서 드라이브하다가 무작정 공항으로 갔다. 제일 빨리 갈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제주도행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엄마께 말씀드리면 못 가게 하실까 봐 말도 없이 잠적했다.


짐 하나도 없이, 작은 손가방 하나 없이 폰 하나만 들고 비행기 타는 사람, 아마 별로 없을 텐데 그게 나였다. 분노가 멈춰지지 않았지만, 병이 재발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공항에서 가까운 호텔에 도착했고 비싼 술을 사서 먹고 소란을 피웠다. 호텔 직원들에게 계속 갑질을 했다. 술 먹고 취해서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헛소리를 많이 했다. 나중에 친구에게 들은 얘기인데, 내가 친구에게 전화해서 죽어버릴 거라고 했단다. 친구가 예수님 얘기를 하며 진정시키려고 하자 '예수가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라고 하면서 소리를 꽥꽥 질렀다고 한다.


전혀 기억이 안 난다.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이 희미하다. 내가 말도 없이 잠적했기 때문에 엄마께서 실종 신고를 하셨다며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지만, 집에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호텔에 머무는 내내 행패 부리며 돌아다녔고, 누군가가 나를 경찰서에 신고했는지 호텔로 경찰들이 왔다. 실종 신고 탓인지 형사들까지 왔다. 엄마와 함께.


엄마가 이미 내 정신병력에 관해서 얘기해두셨는지 경찰들이 나를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데려갔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분들에겐 그냥 정신질환자가 떠들어대는 소리일 뿐이었다. 말 그대로 미친 사람이 되어서 아무 말이나 지껄였고 아무도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다. 병원 도착 후에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의사가 주사를 들고 걸어왔다. 코끼리 주사인 걸 눈치챈 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는데 왜 내 얘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주사 놓으려 하냐면서 폰을 집어던지고 난리를 쳤다.


병원 직원들이 달려왔고 내 사지를 붙잡고 못 움직이게 하더니 주사를 놨다. 그렇게 또 기억을 잃고 눈 떠보니 폐쇄병동이다. 그때가 여섯 번째 입원이었다. 나중에 엄마께 들어보니 내가 다시 깨어나서 난동을 부리면 사지를 묶고 또 주사 놨다고 한다. 그러면 또 의식을 잃고, 그렇게 반복했다고 한다. 소리 지르면서 문을 부술 듯이 두드리고 난리 치는 딸을 보며 엄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셨다고 한다. 엄마를 보면 더 공격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곁에 가지도 못하고 문밖에 앉아계셨다고 했다. 며칠간 아무것도 안 드신 채로.

나는 죄인 중에서도 괴수이다….


이후에 외식업을 경험해 보고 나니, 그 회사에서 정말 편하게 회사 생활했다는 걸 깨달았다. 식당 일의 힘듦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더 힘든 일을 겪고 나니 진짜 힘들었다고 생각했던 일이 상대적으로 덜 힘들게 느껴졌다. 회사생활 하는 동안 잘해주신 것도 많았고 좋은 기억이 많았는데 이성을 잃고 나니 모든 기억이 전부 부정적으로 변해서 나쁜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좋은 기억만 남았다. 죄송스러운 마음, 면목 없는 마음도.


이 글을 쓰면서 미안한 사람들이 계속 떠오른다. 상황이 되면 모두에게 연락해서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다. 몇몇 사람들에게는 사과했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느닷없이 하는 사과에 어떤 친구는 굉장히 당황스러워했다. 내 마음 편해지자고 하는 사과가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친구가 자기는 다 잊었고 괜찮다면서 앞으로 안 그러기만 하면 된다고 말해줘서 고마웠다.


더 잃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용감해졌었다. 딱딱한 마음의 갑옷을 입고, 따가운 말과 행동을 무기로 삼고 휘두르며 사람들을 공격했다. 갑옷과 무기가 없는 사람들이 무방비 상태로 다쳤다. 내가 죗값을 치르려면, 수백 번 사형당해도 그 값을 치르기 어려울 거다.

씨앗이 땅속에 파묻혀서 씨앗의 형태를 잃을 때 새싹이 돋아나고 열매라는 새 삶을 얻는다. 이제는 죄로 가득한 내 형태를 날마다 잃고 날마다 새 삶을 얻고 싶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요한복음 12:24 새 번역


Very truly I tell you, unless a kernel of wheat falls to the ground and dies, it remains only a single seed. But if it dies, it produces many seeds.

John 12:24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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