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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모모씨 Jul 07. 2023

전 프로가 될 거예요

망할. 정말 망할이었다. 감정은 정말 제 멋대로였다. 프로답고 싶었다. 감정에 쉽게 휩쓸리는 사람으로 비치고 싶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누구보다 멋있게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쏘 프로페셔널한 인간으로 보이고 싶었단 말이다. 근데 쟤랑 비밀리에 사귀고 비밀리에 헤어지기까지 하고 나서, 처음으로 동아리에 나간 날, 나는 프로가 되는 길이 험난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프로가 되기는 글렀다.


우린 매주 한 번은 만나야 했다. 그때마다 멘토인 기자 한 분과 동아리 친구들이 함께, 그 주에 올라온 글을 합평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분 탓이었을까. 걔는 헤어지고 나서 내 글만 유난히 까댔다. 피드백인데, 내 글을 유심히 읽어주고 의견을 내주는 건 분명 고마운 일인데, 나는 그게 너무 고깝게 들리기 시작했다. 왜 시비야.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꼬실 때는 내 글 좋다고 편지에 가까운 피드백을 굳이 개인톡으로 보내놓고는. 그러다가 걔의 의견을 멘토가 지지하면, 그게 진짜 기분 탓인 걸 인정해야만 했다. 창피한데 여전히 화는 났고 그런 내 자신은 멋이 없었다. 몹시. 그래서 생각했지. 아, 그냥 때려치워?


그때뿐만이 아니다. 언제나 감정은 나를 볼품없게 만들었다. 중학교 때 친구들에게 서운해서 집에 와 펑펑 울자, 아빠는 나보고 왜 이렇게 약하냐며 질책을 했다. 그런 걸로 이렇게까지 울어야 하냐며. 그 때부터였으려나. 슬픈 게 꼭 부끄러운 일 같이 느껴졌다. 꼭 슬픔만 그런가. 질투는 어떠한가. 내 친구이면서 그의 친구인 여자와 히히덕 대는 그를 보면서, 대놓고 뭐라 할 순 없는데 그래도 언짢긴 할 때, 맥락 없이 투정을 부리곤 했다. 모양 빠지게 말이다.


나쁜 감정만 그런 게 아니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제 멋대로 굴지 이미 알고 있기에 나름 꽁꽁 숨겨보려 하지만, 언제나 헛수고다. 감정은 어느새 터져 나와서는 일상을 죄다 망쳐놓는다. 게다가 일단 나오기만 하면 눈덩이처럼 커진다. 결국엔 내 허락 없이, 월권을 행한다. 컨트롤 타워가 바뀐다. 내 삶이 기승전 '사랑'이 돼버리기 일 쑤다. 일에 집중하기 어려운 건 당연하다. 영화나 책을 보고 나서도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는 작품의 주제가 아니라 그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억지로 쥐어짜 낸 하나의 장면에 꽂힌다. 작품을 헛보는 것이다.


수많은 감정에 휘둘릴 때, 특히 감정이 너무 넓고 깊어서 감당하기 버거울 때, 그래서 내가 나를 잃는 것 같을 때마다, 생각하고 적고 바라고 다짐했다. 이 쓸데없는 감정 같은 거 죄다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하등의 도움이 안 된다며, 제발 모든 감정에 무뎌지자고. 숨기고 억제하자고. 침대에 누워 영화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도, 들리는 대사 한 줄에 갑자기 꽂혀 베개에 눈물을 적시지 말자고. 감정을 줄줄 적어내는 일기 따위를 쓰면서 내 감정에 취하지 말자고도 말이다.


물론 수없이 쓰면서도 쓰고 돌아서자마자 나는 잊었다. 일기를 적고 나서도 감정이 해소가 안되면 결국엔 친구에게 전화해서 털어놓곤 했기 때문이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말에서 나를 사랑하는 감정이 느껴지는데, 내가 어떻게 감정에 무뎌지잔 다짐을 지킬 수 있었겠는가. 왼쪽 가슴이 따뜻해져 버렸는데. 체온이 올라갔다고 느껴졌는데. 매번 전화는 "너한테 말하니까 기분이 좋아졌어"로 끝나곤 했다.


감정 자체에 무뎌지기에는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때가 너무 잦았다. 이름 모를 타인이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알 때마저 그랬으니까. 도서관에서 빌린 소설을 읽다가, 인물의 내밀한 감정을 묘사한 문장에 누군가 밑줄을 치며 '개공감'이라고 써 놓은 게 왜 그렇게 마음에 와닿던지. 일기에 그걸 적어놓기 까지 했다. 그 일기를 어쩌다 다시 읽으면, 그때마다 맘이 좋았다. 감정을 알고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밀려오는 감정이 아무리 버거워도, 언젠간 지나갔다. 때로는 그것이 결국은 날 행복하게도 해줬고. 친구들에게 서운해서 울던 중학생의 나도, 결국 친구들을 사랑해서 기대했고 기대해서 서운했던 것이다. 사랑으로부터 파생된 마음이었다. 그렇게 펑펑 울고 나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 난 그들과 화해했고 매일같이 어울려 다니며 즐거움을 쌓아 갔다. 마음을 나눴다. 질투도 그랬다. 뜬금없이 짜증을 내다가도 그 사람의  '질투하냐'는 한마디에 바로 맘이 사르르 녹아서 폭 안기곤 했으니까.


그리고 이따금씩 너를 보고 있을 때도 그랬다. 사랑이 내게서 주도권을 빼앗아가는 건 괘씸했지만, 사실은 일부러 내가 져주는 게 아닐까 싶었다. 심장이 찌르르 떨리는 건 꽤 좋은 일 같아서. 내가 보고 있는 너도 비슷한 마음인 걸 짐작할 수 있어서 더욱 그랬다. 나는 그때마다 생각했다. 기분이 좋다고. 내일도 그럴 것 같다고. 앞으로 자주 그럴 것 같다고. 어쩌면 꽤 오래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이 감정이 살아가는 데 꼭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쁜 감정이 나를 죽게 하진 못하지만, 좋은 감정은 가끔 나를 살게 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생각했지, 감정에 무뎌지면 나는 죽어버릴 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사실 그 때 동아리를 그렇게 그만두지도 않았다. 오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최소한 걔보다 더한 칭찬을 들어보겠다고 더욱 열심히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활동을 이어나갔다. 사실 그런 걸 다 떠나서 서로 좋아했을 때만큼은 정말 좋았다. 심장이 진짜 찌르르하고 떨렸다. 그건 비유가 아니라 묘사에 가까웠다. 모든 것을 알고 돌아간다 해도 선택에 번복은 없을 것이다.


숱하게 해왔던 다짐을 이제야 바꿔 보려 한다. 피어오르는 감정을 더 이상 탓하지 않겠다. 소중히 받아들이리라. 어차피 나는 감정을 누르는데 영 재능이 없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감정은 부끄럽지 않고 감정적인 나도 꽤 멋지다. 앞으로는 감정을 당당하게 원동력으로 삼아서 살아갈 테야.


쏘 프로페셔널하게!

그러니 많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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