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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모모씨 Jul 15. 2023

요즘 제 관심은 당신입니다

회사를 잠깐 쉬게 되면서 시간이 많아졌다. 대부분, 아니 거의 모든 친구들은 주중 낮엔 회사에 있으니 나와 시간을 보내줄 수 없다. 그 덕에 요즘 엄마와 시간을 자주 보내고 있다. 별 스케줄이 없는 주중에, 갑자기 나가고 싶어지면 엄마에게 냅다 말한다. '엄마, 내일 회사 늦게 가라, 나랑 어디 좀 가자.' 답은 거의 항상 '좋아'다. 그것도 활짝 웃으면서. 어디를 가는지 무엇을 할 건지 묻지도 않고. 나를 언제나 신뢰하고 환대하는 사람이 세상에 한 명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로와 위안을 주는지, 나는 그때마다 느낄 수 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한다. 많이.


캥거루족인 나는 엄마와 집에 함께 있는 시간은 많았다만,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요즘 엄마와의 외출이 잦아지면서 이제껏 몰랐던 엄마의 모습을, 마음을 알고 있다. 엄마가 말하는 엄마의 과거까지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의 젊은 시절이라거나, 아니면 내가 태어나기 전 엄마의 모습. 학생 때는 언제나 반장이었고 어렸을 때는 지금보다 더 울보였다는 것과 같은. 특히나 엄마와 아빠의 연애 스토리는 꽤나 흥미롭다. 남들의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재밌지 않은가. 물론 그런 간질간질한 이야기의 남자 주인공이 아빠라는 점이 몰입을 방해하지만, 인물은 언제나 입체적이니까. 내가 당신들 사랑의 결과물이라는 점은, 가끔 삶의 의지가 저하될 때 힘을 내보려고 되새기는 수단이기도 하다. 내가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해서 태어난 게 나라는 사실. 그게 종종 날 일으키게 한다. 그래서 요즘은 부쩍 씩씩해지기 수월하다.


엄마와의 데이트 루틴은 대개 비슷하다. 우선 내가 좋아하는 맛집과 카페에 간 후 쇼핑으로 마무리한다. 엄마는 밖에 나가면 무언가를 사고 싶다고 내게 넌지시 말하곤 한다. 이전부터 엄마는 종종 내 방에 들어와서 내 옷들을 뒤지곤 했다. 새로운 옷을 입어 보겠다며. 그러면서 몇몇 옷을 자신도 입어도 될 것 같다고 걸쳐 봤다. 대부분의 옷들은 너무 아가씨 같다고, 너무 노출이 많다고, 너무 작다고, 너무 크다고 선택되지 않았다. 그렇게 심사숙고 끝에 하나의 옷이 간택되면, 엄마는 꽤 좋아했고 자주 입고 다녔다. 그걸로 충분한 줄 알았다. 엄마와 쇼핑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까지는. 둘이 같이 쇼핑을 다니며 우리의 취향이 얼마나 다른지, 엄마는 어떤 옷을 좋아하고 편해하는지 그리고 어떤 옷이 잘 어울리는지, 그리고 새 옷을 입어보고 사는 엄마가 얼마나 기쁘고 즐거워하는지 어찌나 예쁜지 매번 직접 눈으로 보며 느끼고 있다. 요즘은 엄마가 내 옷장을 뒤지지 않는다.


문제는 내가 엄마를 알아가고 있는 만큼, 엄마도 이제껏 몰랐던 나를 알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언뜻언뜻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엄마는 요즘 유난히 내 방에 들어와서는 재잘재잘 거린다. 그러다 날 쓱 보고는 안부를 묻는다. 만날 보면서 대체 안부는 왜 묻는 건지. 하루는 내가 겉보기와 다르게 맘이 약한 것 같다며, 그게 이제야 보인다고 말했다. 남 눈치를 너무 본다고 했나. 동정심보다 무서운 건 없다. 그 사람의 고통에 쉽게 그리고 깊게 이입하게 하니까. 상대방의 고통은 상상력으로 증폭되고 깊어져서 실재의 고통보다 무겁게 여겨진다. 나는 그 이유를 안다. 대개는 사랑이다. 엄마는 날 사랑한다. 그럴수록 더더욱 씩씩한 척을 해야 하는데, 그게 자식 된 도리인데, 요즘 부쩍 붙어 있다 보니 쉽지가 않다.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서 그런지, 가끔은 당신 앞에서 그냥 무너져 안기고 싶나 보다.


엄마에겐 평생 말을 못 하겠지만, 나는 엄마 때문에 살 수 있는 날들이 많았다. 온 세상이 합심하여 나를 못살게 구는 것 같을 때, 내 위의 하늘만 무너지고 내 밑에 있는 땅만 흔들리는 것 같을 때도, 엄마만큼은 내 옆에서 나를 껴안고 쏟아지는 하늘과 꺼지는 땅으로부터 나를 지키려고 힘쓸 것 같아서, 나는 긴긴밤을 잠들려 노력했다. 내일을 맞이하려 했다. 가끔은 요즘도 여전히 그렇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농담을 자주 뱉었던 나지만, 이 시간과 이 땅이 엄마와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면 기꺼이 태어났으리라 여겼다. 물론 엄마 한 테만큼은 비밀이다. 나는 엄마 없이 잘 사는 독립된 딸이어야 한다.


30여 년 동안 내가 엄마의 관심을 꽤 많이 차지했다는 것을 안다. 잠귀가 밝은 엄마는 오늘 아침에도 내가 방에서 나오는 소리에 일어났다. 눈도 제대로 못 뜬 채로 입만 활짝 웃으며 아침 인사를 건넸다. 여느 때와 같이 당신은 나를 사랑했다. 시간이 많아지고, 매몰된 내 자신을 극복한 요즘에서야, 엄마가 보이기 시작한다. 엄마에게 관심이 생겼다. 나 또한 엄마를 사랑한다.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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