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 한 잔에 기억
꽤 오래전 친구와 함께 갔던 별다방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신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보라매공원 근처의 별다방이었는데, 사실 난 그곳이 어떤 곳인지 전혀 몰랐다. 그냥 친구가 유명하다며 같이 가자 해서 갔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마신 아메리카노의 기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다. 그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그때를 추억해 보게 된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곳에서의 생소한 듯, 세련되었던 분위기, 호기심 가득했던 친구의 모습, 높은 바텐더식 의자에 앉아 아메리카노가 자극하는 미각의 신세계로 빠져들었던 기억들이다. 진짜 추억은 방울방울 떠오른다.
호기심으로
카페 창업에 대한 소박한 꿈을 품고, 배우게 된 바리스타 기술은 나를 커피에 세계로 인도하는 계기가 되었다. 먼저, 커피 원두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그러면서 이 원두가 어디에서 재배되는지, 커피나무는 어떻게 생겼는지, 커피의 유래는 어떻게 되는지 조금씩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바리스타 과정을 통해 학습을 하기는 하지만, 보다 깊이 알고 싶은 호기심에 커피 관련 책들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커피의 유래, 최초의 커피하우스, 커피 원산지, 커피 생산 수확 과정, 원두가공 과정 등 보다 자세히 커피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 즐거웠다. 다양한 원두의 추출방식, 커피를 이용한 혼합 음료, 각국의 커피 소비동향 등 책을 통해 습득해갔는데, 그중에서도 커피 원산지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콜롬비아, 브라질,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케냐... 원산지별 원두의 특징 등에 알아감으로 커피 문외한에서 커피 애호가의 모습이 되어갔다.
점점 커피 속으로
다 비슷한 커피 맛으로만 여겼다가 커피에 대해 배우면서 원두별 특징의 맛을 알게 되고,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커피 맛을 찾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추출방식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커피 맛의 차이를 알 때쯤이면 이것 저거 원두를 찾아보게 되고, 카페에 가서도 어떤 원산지의 커피가 있는지 유심히 보게 된다, 그러다가 집에서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시고 싶은 욕구들이 생겨난다.
내가 사랑했던 모카포트
나도 직접 커피를 내려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구입한 첫 번째 도구가 비알레띠 모카 포트였다. 이 신기한 방식의 에스프레소 추출은 한동안 나를 즐겁게 했다. 유럽에서는 흔한 도구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커피 애호가 사이에서만 쓰이는 경향이 있다. 아무튼 한동안 이 모카포트로 훌륭한 커피 맛을 즐겼고, 때로는 우유를 넣어 라테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모카포트를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불 조절을 잘못하다 손잡이 부분을 태워버렸던 기억이 난다. ㅎㅎ (아. 방울방울 올라오는 추억의 방울들) 반지하에 살면서, 그 반지하의 삶이 지상에서의 삶으로 올라갈 날을 상상하며 나와 함께 했던 모카포트!
직접 내려마시는 커피. 그 과정에서의 즐거움이 있다. 그 즐거움이 하루 이틀 쌓이다 보면 겹겹이 달콤한 크루아상처럼 추억도 겹겹이 쌓인다. 내가 직접 내려마시며 사용했던 도구 하나하나는 흠집 나고, 손때가 묻어도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가족같은 물건이 된다. 그리고, 그런 도구들이 하나, 둘 늘어가다 보면 나도 제법 커피전문가인듯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