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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elite Mar 07. 2018

수퍼문, 블러드문

뭔가 위압감을 잔뜩 주는데?

이 글을 올리는 시각을 기준으로는 다소 시간이 지났지만, 2018.1.31일의 개기월식은 수퍼문, 블러드문, 블루문이 한꺼번에 겹친 경우라며 화제가 되었다. 그러면서 각종 매체들이 각각의 용어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설명에 오류가 있는 경우도 종종 있고, 겉핥기식 설명에 그치면서 세세한 의미와 유래를 설명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 글에서는 이들 용어의 의미와 유래 중에서 수퍼문과 블러드문에 대해 자세히 적어보려고 한다. (블루문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 다만, 자세히 적으려면 비록 여러 방면의 천문 지식이 필요하고, 관련 천문 지식이 비록 어려운 내용은 아니지만 모두 적으려면 글이 방대해지기 때문에, 관련 천문 지식은 최소로 적겠다. 중요한 용어에 대해서는 한글 wiki영문 wik 등의 링크로 걸어놨으므로, 부족한 설명은 링크된 관련 글이나 다른 자료를 참고하시길 바란다.



삭망 주기


삭망, 일식, 월식


수퍼문이나 블러드문 뿐 아니라 달과 관련된 천문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최소한 이건 알아야 함" 수준의 지식이 바로 삭망과 일식/월식이다. 고대 천문학에서는 달의 모양이 차고 지다가 일식/월식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매우 신비롭게 생각하며 종교적 의미까지 부여했지만, 현대에는 일반 사람들도 많이 이해하는 상식에 가까운 천문 지식이다. 여기서는 이들 상식적인 천문 현상에 대해 좀 더 명확히 적어보자.


태양계를 구성하는 천체 중에서는 태양 만이 자체 발광이 가능하고, 나머지 천체는 태양 빛을 받아 반사해서 빛을 낸다. 지구와 같은 행성은 물론이고, 지구의 위성인 달도 마찬가지다.

    먼저 위의 '삭망주기' 그림은 "지구-태양 공전궤도를 기준으로" 위에서 내려다 보는 시점에서 삭망 주기를 그린 것이다. 지구 표면에서 사람이 맨눈으로 하늘의 달을 본다면, 달이 태양빛을 받는 밝은 면만 보이고 태양빛을 받지 못하는 어두운 면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지구 하늘에서 보이는 달의 밝은 면의 모양을 '달의 모양'이라고 불렀다. 위의 삭망주기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달의 모양은 달이 지구를 공전하면 합삭 → 초승달 → 상현 반달 → 보름달 → 하현 반달 → 그믐달 → 합삭 → ... 이런 순서로 주기적으로 계속 변한다. 이렇게 달의 모양이 변하는 주기를 삭망(朔望) 주기라고 한다. 여기서 삭(朔)은 합삭을 , 망(望)은 보름달을 의미한다. 삭망 주기는 평균해서 약 29.53일이다.

(참고로, 지구 표면이 아닌 달 표면에서 본다면, 달의 밝은 면은 달의 낮 지역이고, 달의 어두운 면은 달의 밤 지역이다)


합삭(合朔, New Moon)은 하나의 삭망 주기 동안 달이 어두운 면을 최대로 보이는 경우이다. 위 '삭망 주기' 그림에서 지구-달-태양 순서로 일직선 배치될 때가 합삭이 된다. 합삭 때 달은 가장 어둡기 때문에 보기 힘들기도 하지만, 지구 하늘에서는 태양과 같은 방향에 있기 때문에 밝은 낮 시간에 태양과 같이 뜨고 지므로 볼 수 없기도 하다.

    보름(망望, Full Moon)은 삭망 주기 중 달이 밝은 면을 최대로 보이는 경우이고, 지구-태양 공전궤도 기준으로 달-지구-태양 순서로 일직선 배치되는 때이다. 지구 하늘에서 보기에 보름달은 그 자체가 밝기도 하고, 태양의 반대 방향 하늘에서 밤 시간에 뜨고 지므로, 어두운 밤 내내 하늘을 밝게 비춘다.


합삭 때는 일식(solar eclipse)이 일어날 수 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태양을 가리는 달의 그림자가 합삭 때 지구 표면에 닿는 현상이 일식이다. 태양 빛을 받는 물체에는 항상 그림자가 있듯이 달의 그림자도 항상 존재하는데, 그 달의 그림자가 지구 표면에 닿으면 지구 사람들이 일식을 보게 되는 것이다. 태양을 가리는 달 그림자가 지구에 닿으려면 지구-달-태양 순으로 배치되어야 하므로, 일식은 합삭 때 발생한다. 그렇지만 합삭 때마다 일식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아래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는 조건'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달-지구의 공전궤도가 지구-태양의 공전궤도에 비해 약 5º 정도 기울었기 때문이다.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는 조건


달은 지구보다 작은 천체이기 때문에 달 그림자도 작다. 그래서, 달 그림자가 지구 표면에 닿더라도 지구 표면의 일부 지역에서만 태양을 가릴 뿐이고, 일식도 지구의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린 그림자가 닿는 지역에서는 개기 일식(total solar eclipse)을 보게 되고, 일부만 가린 그림자가 닿는 지역에서는 부분 일식을 보게 된다.

일식 때 지구 표면에 닿은 달 그림자를 지구 밖에서 찍은 사진


합삭 때 일식이 일어나는 것과 비슷하게, 보름 때 태양을 가리는 지구의 그림자에 달이 들어가면 월식(lunar eclipse)이 일어난다. 일식과 마찬가지로, 지구-태양 공전궤도에 비해 달-지구 공전궤도가  5º 정도 기울었기 때문에, 월식도 보름 때마다 발생하지는 않는다.

    일식에 비해 월식이 다른 점은, 첫째로 일식보다 월식을 볼 수 있는 곳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지구의 그림자가 달 그림자보다 클 뿐 아니라, 그림자가 닿는 지역을 관찰하는 시점도 다르기 때문이다. 일식은 그림자가 닿은 지역 내부에서 보는 것인데, 월식은 그림자가 닿는 지역 외부에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월식 때는 보름달을 볼 수 있는 지구 상의 모든 지역에서 월식을 관찰할 수 있다.

    둘째로, 지구 그림자가 달보다 커서 달의 전부가 지구 그림자에 들어가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달의 전부가 지구 그림자에 들어가면 지구에서는 개기 월식(total lunar eclipse)을 보게 되고, 달의 일부만 지구 그림자에 들어가면 지구에서는 부분 월식을 보게 된다.

 



수퍼문 (Super Moon)


수퍼문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유난히 크고 밝은 보름달을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수퍼문은 다른 의미가 있다. 미국의 점성술사 Richard Nolle라는 사람이 1979년부터 주창한 것으로, 달이 근지점 근처에서 합삭이나 보름달이 되면 수퍼문이라고 하자고 주장한 것에서 유래했다. 단순하게 보름달이 크고 밝게 보인다고 수퍼문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합삭? 근지점? 이런 것들이 왜 나온 걸까?


원지점과 근지점에서의 보름달 크기 비교


먼저 관련 천문 지식을 설명하면... 천체 A가 천체 B 주위를 중력의 법칙에 따라 공전하고 있다고 하자. 그러면, 천체 A의 공전 궤도의 형태는 타원형이다. 태양계 행성에 대해 이를 적용한 것이 케플러의 행성 운동법칙이고, 케플러의 법칙에 따라 지구와 같은 태양계 행성은 태양 주위를 타원형의 궤도를 따라 공전한다.
    달에도 케플러의 법칙을 적용할 수 있어서, 달도 지구 주위를 타원 궤도를 따라 공전한다. 달이 타원궤도를 따라 공전하다 보면 지구에 가까워지는 때가 있고 멀어지는 때가 있는데, 달이 지구에 가장 가까워지는 지점을 근지점(近地點, perigee), 가장 멀어지는 지점을 원지점(遠地點, apogee)이라 한다.

    달의 근지점-원지점 주기는 평균해서 약 27.55일이고 삭망 주기는 약 29.53일로, 이들 주기는 서로 일치하지 않고 어긋난다. 이들 주기가 어긋나는 가장 큰 이유는 달이 지구를 공전하는 동안 지구도 태양 주위를 공전하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달의 공전 운동은 여러가지 이유로 불규칙성이 큰 편이어서, 근지점-원지점 주기와 삭망 주기가 일치하지 않는 이유도 여러가지가 있다.

근지점-원지점 주기와  삭(x) 망(•) 주기가 어긋나는 모습을 표시한 그래프


다음으로 알아야 할 것은 지구 바다에서 밀물과 썰물을 일으키는 조석력과 그 원리인데, 자세한 것은 wiki 링크 등을 참조하기 바라고, 이 글에서는 필요한 요점만 적겠다. 지구의 밀물과 썰물을 일으키는 조석력을 작용하는 천체로서 중요한 것은 달과 태양이다. 조석력의 크기에는 작용하는 천체의 중력 크기도 중요하지만, 작용하는 천체가 가까울수록 더욱 크게 작용하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태양은 매우 큰 천체지만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달에 비해 태양의 조석력은 1/2 정도 밖에 되지 않고, 지구에 가장 큰 조석력을 작용하는 천체는 작지만 지구와 가까운 달이다. 지구에 작용하는 조석력에는 합삭과 보름도 연관 되는데, 합삭과 보름 때는 태양과 달의 조석력이 겹치기 때문에 지구에 작용하는 조석력이 더욱 커진다.


이제 "왜 점성술사가 근지점에서 합삭이나 보름달이 일어나는 것에 관심을 가졌나?" 설명하기 쉬워졌다. 단순히 근지점 근처의 보름달이 크고 밝게 보인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합삭이나 보름달일 때 달이 근지점에 있다면 지구에 작용하는 조석력이 극대화되기 때문에, 즉 실제로 큰 조석력을 작용한다는 의미에서 수퍼문이라 했던 것이다. 조석력 크기에는 천체의 거리가 중요한 요소라서 지구에 가장 큰 조석력을 작용하는 달이 근지점에서는 더욱 큰 조석력을 작용하게 되고, 합삭이나 보름달일 때는 태양과 달의 조석력이 겹치므로, 두가지가 겹치면 최대치에 가까운 조석력이 지구에 가해진다. 다만, 합삭 때의 수퍼문은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아서, 사람들은 주로 보름달일 때의 수퍼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수퍼문 시기에는 조석력이 극대화 되므로, 일부 점성술사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수퍼문 때 지진이나 화산 폭발이 발생한다는 풍문을 유포했다. 비록 점성술사의 주장이지만 어느 정도 과학적 근거가 있기 때문에, 과학자들이 실제로 수퍼문과 지진/화산 활동의 관계를 조사해 보기도 했다고 한다. 결론은 뚜렷한 연관 관계가 없는, 진짜 풍문에 불과했다는 것... 조석력 때문에 바다에서 밀물/썰물이 하루에 2차례 오르락내리락하듯이, 우리가 느끼지는 못하지만 육지도 조석력 때문에 하루에 두 번 수십 cm씩 오르락내리락한다. 몇 달에 한 번 정도 발생하는 수퍼문은 매일 같이 지구 표면을 들썩이게 하는 조석력을 약간만 키울 뿐이라서, 의미 있는 자연현상을 만들지는 못한다고 한다.

    역사적인 측면에서도 이 문제를 살펴 볼 수 있다. 보름달일 때 수퍼문이면 달이 더 크고 밝게 보인다고 하지만, 보름달에 관심이 많았던 고대부터 각종 조명시설과 편의시설이 발달해서 보름달의 의미가 퇴색한 현대까지, 인간 감각보다 뛰어난 측정장치를 사용해서 일일이 대조하지 않는 이상 인간이 수퍼문 때 보름달이 더 크고 밝다는 사실을 감지했거나 감지할 필요를 느낀 적은 없다. 사람이 체감하는 보름달의 밝기에는 날씨/기후나 보름달의 고도 같은 요소가 큰 영향을 끼치고, 이들 요소에 의한 밝기 변화가 근지점-원지점을 오가면서 생기는 밝기의 변화보다 더욱 크다. 거기에, 역사적으로도 수퍼문 때 의미 있는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사람들이 관심 가질 필요가 없기도 했다. 해와 달, 별 때문에 인간 사회 운세가 변화한다고 굳게 믿고 관심을 가지고 보던 점성술사들조차 1979년까지 수퍼문에 대해 관심 없었다는 사실 역시, 수퍼문이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또 다른 방증이다.

    점성술사들이 막연하게 'super'라는 말을 붙이고 과장하면서 혹세무민(惑世誣民) 한 것과 달리, 실제로는 수퍼문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은 것이다.




개기월식 때 블러드문이 되는 과정 : 블러드문은 보통 달에 비해서 상당히 어두운데, 이 사진에서는 블러드문의 밝기를 과장해서 보통 달과 비슷한 밝기로 보이도록 만들었다.


블러드문 (Blood Moon)


위에 적었듯이, 보름달 때 지구 그림자에 달의 전부가 들어가는 현상이 개기 월식이다. 블러드문은 개기월식 때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진 달이 빨갛게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다소 의외겠지만, 이 현상은 파란 하늘과도 관계있고, 특히 붉은 노을과 관계가 깊다.

관련된 천문 상식을 간단히 적어보자. 우리가 흰색으로 느끼는 태양빛은 무지개 스펙트럼에서 볼 수 있듯이 무지무지 많은 색의 빛으로 구성되며, 태양빛을 구성하는 빛은 자외선-파란색-노란색-붉은색-적외선 순서로 파장이 길어진다. 태양빛이 대기를 통과하면, 레일리 산란 현상 때문에 파장이 짧은 파란색 빛부터 산란된다. 파란색 빛이 산란되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빈 공간이 마치 파란빛으로 채워진 것처럼 보이게 되고, 그래서 낮에 하늘을 보면 하늘의 빈 공간이 파란색으로 보이는 것이다. 참고로, 달처럼 대기가 없는 천체에서 하늘을 보면, 대기에 의한 산란이 없어서 낮에도 밤하늘처럼 까맣게 보인다.

    태양빛이 대기를 통과하는 거리가 길어지면 파장이 짧은 파란빛 녹색빛은 먼저 산란 되어서 없어지고, 파장이 긴 붉은빛만 남는다. 이런 조건에 해당 되는 때가 태양이 동쪽 지평선에서 뜨는 아침 때, 혹은 태양이 서쪽 지평선 아래로 넘어가는 저녁 때이다. 그리고, 태양이 완전히 지평선 아래 있더라도 대기의 굴절에 의해 태양빛이 전달되어 지평선 위쪽은 여전히 밝은데, 이것이 노을이다. 노을은 지평선 아래 있는 태양빛이 굴절 되어 전달되는 동안 매우 긴 거리의 대기를 통과하므로, 산란이 많이 되어서 붉은색이 선명하다.


기본 지식을 충분히 가졌으니, 블러드문을 이해하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당신은 달 탐사 우주인이 되어서 달에 갔고, 지구에서 개기 월식일 때 달 표면에서 지구를 보고 있다. 과연 어떻게 보일까? 관측 지점을 바꿔서 보면 같은 천문현상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 지구에서는 개기 '월식'인데, 달에서는 태양이 지구에 의해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 '일식'을 보게 된다.
    지구의 개기월식 때 달에서는 개기일식이 발생하므로, 이 때 달에서는 태양빛이 지구에 가려져서 완전히 사라져야 할 것 같지만... 지구에는 달에 없는 대기가 있어서 상황이 약간 달라진다. 달에서는 태양이 지구의 지평선 속으로 완전히 가려졌더라도, 지구 둘레의 대기에 의해 굴절되어 전달되는 약한 태양빛을 볼 수 있다. 바로 노을을 보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지구 대기에 굴절되어 달에 닿는 태양빛은 산란이 많이 되어 노을처럼 붉은색이 된다.
    결국, 개기월식 때는 직접 달을 비추는 태양빛은 사라지지만, 지구 대기에 의해 굴절되고 노을처럼 붉은색만 남은 태양빛이 약하게 달을 비춘다. 이 때문에 개기월식 때는 보름달이 어두워지면서도 빨갛게 보이고, 그 색깔 때문에 블러드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수퍼문과 블러드문의 결합?


위에 설명했듯이, 블러드문은 개기월식 때 지구 대기에 의해 굴절되고 붉은색으로 산란된 약한(!) 태양빛이 달을 비추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개기월식 때 달이 근지점 근처에 있는 수퍼문이라면 더욱 선명한 블러드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지난 번 2018.1.31일의 개기월식 때, 수퍼문과 개기월식이 겹쳐서 아주 선명한 블러드문을 볼 수 있었다.


보름달과 관계 있는 천문 현상인 수퍼문과 블러드문에는 뭔가 잔뜩 위압감을 주는 이름이 붙었지만, 이 글에서 보았듯이 실제로는 약한 자연 현상이다. 때문에 개기월식의 불러드문에 수퍼문까지 결합하더라도, 일부러 관심 가지고 살펴보기 전까지는 지구 전체 혹은 지구 표면에 사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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