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아홉, 마음, 마음 하나...
"엄마, 그네 밀어주세요"
곧 있으면 여섯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딸 아이가 뛰어와 말한다. 그 작은 손을 꼬옥 붙잡고 아이방 앞에 걸려있는 그네 앞에 선다.
"그래, 엄마가 밀어줄게. 그럼 우리 딸은 숫자를 세어보자. 자, 시작!"
하나, 둘... 아이는 숫자를 세며 신나게 날아오른다. 보이는 건 뒷모습뿐인데도 동동거리는 발재간과 꺄르르 터져 나오는 웃음 덕에 아이의 환한 얼굴이 절로 그려진다.
서른아홉, 마흔에 이르자 흥이 오른 아이는 전보다 조금 더 격양된 목소리로 외친다.
"마음, 마음 하나, 마음 둘, 마음 셋..."
'마흔'이란 단어가 낯설었을 아이에겐 이 단어가 그저 자신이 이해하기 쉬운 '마음'으로 들렸으리라. 잠시, 아이의 발음을 고쳐주어야 하나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천진한 아이의 목소리로 듣는 '마음'의 소리가 참으로 좋았기 때문이다.
숫자 세는 소리가 이렇게까지 달콤할 수 있을까? 마음을 간지럽히는 아이의 목소리가 내 마음에도 한 가지 깨달음을 주는 듯했다.
'내 나이 마흔, 그래 나도 이제야 겨우 내 마음 하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아간다. 조금 더 욕심을 내어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년에는 나 말고 다른 '마음 하나' 더, 후년에는 '마음 둘' 정도는 품을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한 해를 넘기고 한 살을 더 먹어가면서 숫자만 더해가는 인생이 아니라 내 속에 품을 수 있는 마음의 수도 늘려가고 싶다는 소망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백 살 호호 할머니가 되었을 즈음엔, 열 손가락을 몇 번씩 접었다 펴야 할 만큼 많은 마음을 품을 수 있게 되겠지... 상상만 해도 마음이 풍선처럼 따뜻하게 부풀어 올랐다.
벌써 6월, 나의 마흔도 이제 곧 절반을 넘기게 될 터였다. 그간 나는 정말이지 내 마음의 반 정도는 다독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나 다시 한번 질문을 해본다. 사실, 아직 조금 부족한듯하다. 그렇다면 남은 시간 동안은 내 마흔의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는 내가 되어보자고 다짐해 본다. 그래야 마흔하나쯤엔 가장 가까운 사람 마음 하나 정도는 따스하게 챙겨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길 테니 말이다.
아이가 다시 그네를 밀어달라며 씽긋 웃어보인다. 등을 가만히 밀어주며 이번에는 나도 함께 숫자를 세어본다. 하나, 둘... 열하나, 열둘... 스물... 서른아홉... 마흔에 이르러서는 아이처럼 마흔이 아닌 '마음'을 외쳐본다. 전보다 조금 더 큰 소리로, 더 신나게.
"마음, 마음 하나, 마음 둘, 마음 셋, 마음 넷, 마음 다섯, 마음 여섯, 마음 일곱, 마음 여덟, 마음 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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