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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라임 Mar 05. 2024

먹고 살기도 바쁜데 소설이라니(2)

4주동안 단편 소설 하나 완성하기

 2024년, 나는 고대하던 마흔을 맞이했다. 이름도 거대한 '불혹'을 앞두고 지난 한 해 동안 고집스럽게 쓰며 스스로를 들여다본 나였다. 그리고 그 끝에 글쓰기를 '평생 친구'로, '일상의 안식처'로, '지속하고 싶은 업(業)'으로 삼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무생물 중 나와 최고의 궁합을 가진 무언가를 찾는다면 그건 '글쓰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쓴다는 건 나에게 큰 기쁨과 위안을 주었다. 더불어 다른 이들에게 나의 글들 공유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행복하고 보람 있는 일이었다.


 요즘은 백 살까지 산다는데, '글쓰기'라는 아이템 하나만 잘 장착하고 있으면 할머니가 될 때까지도 매일 즐겁고 활기찬 하루를 맞이할 수 있을 듯해 안심이 됐다. 그렇게 나에겐 내 몸에 꼭 맞는 든든하고 편안한 취미이자 믿을 구석이 하나 생긴 것이다. 자칫 아득하고 지난할까 걱정했던 남은 인생에 대한 걱정을 덜고 나니, 이번엔 잘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가끔 열의에 가득 찰 때만 써오던 글이었다. 이에 지속할 힘과 역량을 불어넣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난생처음 글쓰기 강의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등원해서 하원하기 전까지,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은 평일 오전 시간뿐이었지만, 대부분의 글쓰기 강의는 평일 저녁 혹은 주말에 열렸다.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았지만 일단 뭐라도 시작해 보자는 심정으로 '소설쓰기' 강의에 신청서를 냈다. 


 수업을 진행하는 강사님은 '소설가'였다. 소설이란 장르에 크게 관심이 없던 나였지만 막상 수업을 앞두고는 설렘이 가득했다. 나에게 소설은 곧 낭만이었으니까. '낭만을 쓰는 사람에게 배우는 글쓰기라니!' 이보다 낭만적인 일은 없을 것만 같았다. 수업은 예시로 제시된 몇 단락의 글을 함께 읽으며 '누구에 대해 어떻게 쓸 것인지' 배우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소설 작법 수업이 끝나면 열명 남짓한 수강생들이 써온 소설에 대한 합평이 이어졌다.


 초심자를 위한 소설 쓰기 강의였다. 나를 포함해 소설이란 단 한 줄도 써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에 다들 처음에는 무척이나 난감해 했다. 우선,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가 막막했고, 잘 쓰고 싶다는 마음에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때문에 첫 문장을 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몇 글자를 적어보고는 이내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은 저만치 달아났으 종이를 채우는 글자 수는 제자리걸음을 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함께하는 힘에 의지해 다들 어찌어찌 완성한 글을 들고 모였고, 합평은 시작되었다. 쓰는 것만큼이나 다른 이의 글을 읽고 의견을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강사님은 이 모든 과정이 글을 보는 안목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했다. 좋은 글을 써 놓고 애꿎게 고쳐버린다거나, 못난 글을 보며 흡족해하다 더 좋은 글을 쓸 기회를 놓칠 수 있으니까. 쓰는 것만큼이나 많은 글을 읽고 생각해 보아야 하는 이유였다.


 그렇게 한 번의 수업을 끝내고 나면 소설을 보는 눈이 달라져 있었다. 이전에는 평면적으로만 읽혔던 이야기가 연극 무대에 오른 한편의 극을 보는 듯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이야기 전체를 아울러 여기저기 흩뿌려 놓은 복선들이 좀 더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고, 절정에서 화려하게 꽃 피기 위해 한 겹씩 쌓아 올린 서사들이 더 세밀하게 감지됐다. 알면 알수록, 쓰면 쓸수록 소설은 깊고 섬세한 매력을 드러냈다.


 4주간의 짧고 굵은 소설 쓰기 강의를 듣고 나서 나는 열 페이지 짜리 원고를 손에 쥐었다. 간신히 분량만 채운 첫 습작이었지만 난생처음 내 손으로 써 낸 단편 소설이었다. 의자에 앉아 써 내려간 건 하루 세 시간이 전부였지만, 사실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들여 쓴 글이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나는 설거지를 하면서도, 동을 하면서도 계속 주인공을 생각하고 관찰하며 이야기를 지어나갔다. 마치 그가 내 머릿속에 자리를 잡고 앉아 끊임없이 주의를 끄는 것만 같았다. 온종일 골몰하느라 잇몸이 부어올랐고 쉬이 잠들이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지만 분명 즐겁고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허구의 세상을 창조하고 이야기를 엮어내는 일은 주변을 보다 섬세하게 바라보는 감각을 일깨워주었다. 늘 마주는 일상의 순간도, 익숙한 사람들도, 이야기를 짓겠다고 마음먹은 이의 눈에는 예사로워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늘 그대로인듯한 오늘은 매일 다채로워졌고 타인에 대한 관심과 이해 또한 깊어지는 것 같았다. 누군가를 바라보고 생각하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니까.


 우연히 만난 소설은 그렇게 삶을 좀 더 유연하고 깊이 알아가는 즐거움을 선물해 주었다. 이 기쁨을 오래도록 즐기며 나눌 수 있는 글을 써야지! 언젠가 곱게 빚어낸 나의 이야기가 세상에 가닿는 날을 고대하며 오늘도 나는 한 손엔 소설을 들고, 한 손엔 펜을 들고선 소설 속 화자와 내가 바라본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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