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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라임 Feb 27. 2024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어서 뭐해"

나만 좋은 글 말고, 나도 좋아하는 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어서 뭐해"


 의외의 대답이었다. 늘 자신만의 독특하고 새로운 개성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트렌드를 이끌어오던 아티스트의 말이었기에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음악을 창작을 할 때 어떤 생각으로 만드는지 묻는 동료 가수에게 사업가이자 아티스트인 '박진영'이 한 대답이었다. 그는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본인이 좋아해야 시작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긴 했지만, 중요한 건 그의 말이 '대중이 원하는'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것이었다. 과연 성공한 아티스트이자 사업가 다운 이야기였다.


 서른아홉, 삼십 대의 마지막에 나는 난생처음으로 '홀로', '고집스럽게' 썼다. 그 모든 여정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머릿속을 맴도는 수많은 생각들, 턱 끝까지 차오른 상념들을 독방에 앉아 묵묵히 받아 적어 내려가는 일이었다. 일상을 압도할 만큼 정리되지 않은 채 쏟아져 나오는 생각들을 토해내듯 써 내려가면서 점차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기 원하는지가 또렷해졌다. 생각이 글이 되어 정갈히 모습을 드러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플랫폼에 공개한 글들이었지만 사실 '읽히기 위한 것'이 아닌 오로지 '쓰기 위한' 글들이었다.


 하루에도 몇 편씩 순식간에 불어난 나의 글들은 브런치 북으로 묶여 크고 작은 줄기의 이야기가 되었다. 간혹 브런치 메인 화면에 노출되어 조회수 그래프가 튀어 오르는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날들엔 잔잔하고 고요하게 읽혔다. 그럼에도 개의치 않았 건 나의 글을 공유 재가 아닌 사유 재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에게 글쓰기란 내 안에 실타래처럼 뭉쳐진 복잡한 생각들을 가늘고 평평하게 풀어내는 작업이었다. 그 과정에서 몽환적이라 느껴질 만큼 뿌옇던 생각들은 모호함과 막연함이라는 연막을 걷어내고 점차 손에 잡히는 실체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고 만족스러웠다.


 한 해 동안 쌓인 글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얼 하며 살고 싶지를 천천히, 조용하게 수면 위로 드러내 보였다. 그 끝에 다다라 깨달은 건, 나는 '글과 목소리로 공감과 위로를 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한 평생 '크리에이티브', '나눔', '이야기'라는 여러 키워드들을 마음에 품고 살아온 터였다. 그와 관련된 활동들에 참여하고 직업인으로 살아오며 오래도록 찾아 헤매던 흐릿한 꿈같은 것이 이제야 형태를 입고 안전하게 땅에 발을 내딛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과 내일을 구분 짓고 매번 다른 기쁨과 보람을 선사해 줄 인생의 지향점과 동력이 선명히 드러난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대중과 소통하는 아티스트의 말이 귀에 콕 박혀 들어왔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는 이제껏 생각해 보지 못한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럼 너는 앞으로 어떤 글을 쓸 거야? 세상에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고요하지만 무거운 질문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나누고 읽히는 글쓰기로 넘어가야 하는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오로지 쓰는 행위로 만족했던 나의 글쓰기 방식에는 변화가 불가피했다. 여태 해 온 것처럼 내가 쓰고 싶은 만큼만, 불친절한 글쓰기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읽히는 글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나와 결을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그 이야기는 어떻게 써 내려가야 할까?


 고민이 깊어지던 중, 난생처음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나의 이목을 확 잡아당기는 책과 좋은 사람들에 끌려 시작한 일이었다. 책의 내용도 좋았지만 탁구공을 주고받듯 함께 생각을 나누는 과정들이 즐겁고 놀라웠다. 분명 같은 내용을 읽었음에도 서로 다른 생각이 교차하고 부딪혔다. 나눔은 질문을 불러왔고 그에 따른 다양한 의견들은 우리에게 색다른 가능성들을 보여주곤 했다. 그건 꽤나 근사한 경험이었다. 나의 세계가 점차 유연해지고 확장되는 경험은 혼자 읽고 덮었을 땐 느끼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작년 한 해 고집스럽게 나에 대해 써 내려가면서 좁아진 시선은 다른 이와 함께 생각을 나누면서 다시 넓어지기 시작했다. 지속적으로 모임에 참여하고 또 다른 글을 읽으며  생각한다. 내 세계 속에만 고립되지 말고 많이 읽고 나누어야겠다고. 그래야 한층 더 넓어진 시야로 나의 이야기를 쓰고 나눌 수 있겠다고 말이다.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자판으로 타이핑하기보다는 종이에 연필로 써 내려가는 것을 좋아하는 아날로그형 인간이지만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며 살아온 것처럼. 새해에는 작년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내가 좋아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화두들을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다. 나만의 뾰족함을 가진 이야기가 너무 부담스러워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면 안 되니까. 올해는 좀 더 다정하고 친근한 글들이 쓰이기를.


'나만 좋아하는 글 말고, 나도 좋아하는 글'들의 탄생을 기대하며. 이렇게 2024년 첫 번째 글을 세상에 띄워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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