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박의 두근거리는 리듬감은 온몸 곳곳에서 선명해지고, 들숨 날숨이 내 몸의 일부가 되었다가 자유로워지는 것이 새삼 실감되는 날. 매 순간 일어나는 일임에도 신기하리만치 감각하지 못하던 무채색의 무언가가 한순간 쨍한 컬러를 입은 듯도드라진다.살아있음이 말 그대로 피부에 와닿는 날이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연거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던 날. 한동안 고요히 앉아 있던 몸이 후끈해질 만큼 내달린 후에. 기다리던 소식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알림음에 귀가 쫑긋 해질 때. 그런 순간이면 일순간에 감각들이 되살아난다. 그간의 무심함을 탓하듯 강한 존재감을 내보이면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이 아닌 내부의 무언가가 건드려져 살아나는 감각들도 있다. 머리가 쭈뼛 설 만큼 놀라운 무언가와 마주했을 때가 그러하다. 나는 머릿속에 구름처럼 막연히 떠다니던 상념들이 활자를 입고 또렷이 모습을 드러낼 때 소스라치게 전율한다. 또 우연한 기회로 시작한 일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내 안의 꿈을 흔들어 깨우는 순간 그 충만함에 압도당하곤 했다. 그건 카페인이라든지, 플랫폼에서 쏟아지는 자극적인 콘텐츠를 소비할 때는 느낄 수 없는 고차원적인 것이었다.
최근 나의 감각은 전보다 자주 섬세해지기 시작했는데, 그건 바로 소설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소설이라... 내가 소설을 읽었던 적이 있었던가? 굳이 예전의 기억을 들춰보고 쥐어짜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과 나의 인연은 정말이지 비루하기 짝이 없다. 학생 시절에는 교과서와 기출문제로 등장했던 짤막한 소설 몇 문단을 읽어본 것이 전부였다. 현대문학이라는 거대한 이름 아래 문제 풀이로 마주한 그와의 첫 만남은 유쾌할리 만무했다. 밥 벌이를 하면서부터는 종종 회사 앞 대형서점에 들르곤 했는데, 베스트셀러 서가에 오래도록 자리해 궁금증을 자극한 몇 권의 책을 구매한 것이 전부였다.
바야흐로 쏟아지는 영상과 자기 계발서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소설 혹은 문학이라 함은 당장 써먹을 수 없는 사치품과 같이 느껴졌다. 고작해야모처럼 맞이한 긴 휴가지에서 바다를 곁에 두고 썬 베드에 누워 펴보는 것이 다였으니까. 그마저도 몇 장을 넘기지 못하고햇빛가리개로 사용할 만큼 나에게 소설이란낭만을대표하는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