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 봄, 마흔을 상상하다

내년에 마흔이라고? 내가?

by 스윗라임

'한동안 잊고 살았다. 내 나이를.'


나이를 소개할 일이 없어진 건 아마 일을 그만두고 육아를 시작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새로 만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때 우리는 보통 '아이의 개월수'를 물었고 '아이의 이름'을 물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만 했던 '누구의 엄마'라는 호칭은 어느새 내 이름처럼 익숙해져 있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은 보통의 월요일이었다. 한결 산뜻해진 바람이 불어오던 날이었지만 이마엔 땀이 송글 송글 맺혔다. 졸린 눈을 비비며 다리가 아파 빨리 걸을 수 없다며 투정 부리는 아이들을 겨우 시간에 맞춰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낸 후였다.


"후, 오늘도 정신없는 하루였어요. 언니 커피 한잔하고 들어갈래요?"

기나긴 주말을 보내고 촉각을 다투는 월요일 아침을 보낸 육아동지 L언니와 나는 종종 아이들을 등원시킨 후, 함께 커피 한잔을 하면서 주말에 쌓인 노곤함을 털어내곤 했다. 육아 이야기, 요즘 관심 있게 보고 있는 콘텐츠이야기, 최근 생각하고 있는 사업 아이템 이야기 등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또다시 산뜻하게 하루를, 한주를 시작할 생기를 얻곤 했다.


부드러워진 바람이 포근하다는 이야기로 시작된 그날의 수다는 사십 대가 되면 느끼는 부담감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삼십 대와는 달리 아이들도 부모님들도 많이 챙겨야 하는 사십 대의 삶이 생각만큼 여유롭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다가 철부지처럼 대답해 버렸다. "응? 우리는 아직 멀었잖아요?"라고. 잠깐의 정적이 지나는 동안 나는 머리의 망치를 맞은 것처럼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다.'아! 언니는 이미 사십 대 초반이고, 나는 내년에 마... 마흔이네?!'




'맙소사! 내가 마흔이라니!' 마흔은 엄청나게 고리타분한 어른에게 붙이는, 고로 나와는 머나먼 그 어떤 것인 줄만 알았는데 그 딱지가 나에게도 붙는단다. 그것도 곧! 심지어 내 앞에 앉아있는 저리도 곱고 생기 넘치는 언니는 벌써 마흔이 넘었단다. '오 마이 갓. 말도 안 돼!'. 집에 돌아오는 중에도, 집에 돌아와 서재 의자에 한참 앉아서도 계속 나를 혼란에 빠뜨린던 건 곧 바뀌는 앞자리 숫자가 아니었다. 분명 그 이상의 무언가가 나의 의식을 격하게 흔들고 있었다. 이후, 나흘을 꼬박 '마흔'에 대해 끙끙 앓으며 묵상하던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내가 이토록 마흔이란 나이에 격렬히 저항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그렇다. 마흔은 분명 서른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누구나 알고 있는 무겁고도 유명한 수식어를 가지고 있었고 서른아홉 해를 살아온 나는 아직 그 수식어를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서른아홉의 나는 아직 '불혹'이라는 그 엄청난 무게를 껴안을 자신이 없었다는 걸.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던 4월의 봄날,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나의 마흔을 상상했다.


▼해당 에세이는 팟캐스트에서 오디오북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788857?e=24803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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