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마흔’

나는 언제 어른이 될까?

by 스윗라임

'나는 언제 어른이 될까?'


어렸을 때는 막연히 술을 먹을 수 있는 만 19세부터 어른이라고 생각하며 어서 빨리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되기를 고대했던 것 같다. 사회에서 어른이 되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는 나이였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사실 살면서 '나 이제 어른이 되었구나.'라고 느낀 순간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스무 살이 되어 대학을 가면서', '취업을 하고 돈을 벌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면서', '어여쁜 아이를 낳으면서'. 인생에 길이 남을 역사를 장식하는 순간마다 나는 어른이 된 느낌을 받곤 했다.




그렇지만 ‘어? 나 어른인 줄 알았는데, 아직 아니네?’라는 생각에 혼란 스러 울 때도 있었다. 그 시작은 아이를 낳고 이제 막 엄마가 되었을 때였다. 그제야 진짜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첫 아이로 쌍둥이를 품었던 나는 아이들이 갓난쟁이였던 시절, 특히나 정신을 놓고 살 수밖에 없었다. 난생처음으로 제대로 먹을 수 없었고, 충분히 잠을 잘 수도 없었으며, 나를 위한 시간은 꿈도 꿀 수 없었던 극한의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그때의 나는 정말이지 난생처음 깊은 혼란의 늪에 빠진 느낌이 들었다.


이쯤 되니 학창 시절 무미건조하게 배웠던,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가 떠오른다. 고리타분하다 생각했던 이 이론을 다시 떠올릴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 인생에 이 이론을 굳이 다시 찾아보는 날이 오다니!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총 5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가장 하위의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그다음 높은 단계로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 그렇지, 이제 기억나는 것 같아!)


가장 하위 단계인 1단계에는 수면, 음식 등 '생리적 욕구'가 가장 상위 단계인 5단계에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자리하고 있다고 하는데... 취업을 하고 난 이십 대 이후부터는 주로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집중해 온 나였기에 다른 단계는 으레, 당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고민해 본 적도 거의 없는 듯하다.


그런 나였는데, 그런 내가 출산과 동시에 갑자기 인간의 기본 욕구라 불리는 ‘잠’과 ‘식사’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서 멘붕이 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이란 참으로 어리석은 망각의 동물인가 보다. 몸이 조금이라도 기운을 차리면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또다시 예전처럼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하겠다며 버둥거렸다.


두 갓난쟁이를 먹이고 입히고 집을 치우는 와중에 바라본 거울 속 나는 내가 바라던 ‘생기 넘치고 멋진 여자’의 이미지는 완전 다른 모습이었다. 몸이 먼저, 그리고 마음이 조금씩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던 때였다.




다행이었던 건, 그럴 때 내 곁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육아 선배들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기 낳고나서는 내가 이렇게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었나. 이렇게 화가 많은 사람이었나 싶다니까.'

'나 자신이 너무 별로라는 생각이 들어. 어제의 내가 최악인 줄 알고 아 이제 바닥까지 왔구나 했는데, 웬걸? 오늘이 더 바닥이야. 정말 끝도 없이 내려가다 보면 내가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이었나 싶어서 자괴감이 들어’


아이를 낳기 전에는 들을 수 없었던 현실적인 이야기들. 환상으로만 가득했던 육아의 진짜 민낯을 꺼내 보이는 선배들의 마음속 이야기들을 전해 듣다 보면 ’아, 나만 이런 건 아니구나’라는 위안을 얻곤 했다.


그래도 해결이 되지 않는 답답한 감정이 들 때면, 평생 관심도 없었던 심리 관련 영상과 책들을 찾아보며 현재 나의 감정과 상태를 이해하려고 부단히도 애를 썼다. ‘아, 내가 지금 이런 기분이 드는 건 과거 나의 이런 결핍 때문이구나!’, ‘먼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지금 수면 위로 드러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 것도 육아를 하면서부터다.




그렇게 평온하게 살 때는 몰랐던 감춰진 내 진짜 모습들, 생각들, 잊고 있었지만 내 인생전반에 중요하게 영향을 주었던 사건들을 마주하고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나조차도 낯선 감춰져 있던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구나’

‘내 안에 약한 부분이 건드려질 때, 내가 이렇게나 발끈하는구나.’

‘이런 감정을 마주하면 어찌할지 몰라서 그 상황자체를 피하려 하는구나’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스스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와 조금은 친해진 느낌,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느낌, 그래서 이해받고 치료되고 성숙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를 이해한 뒤로는 내 옆에 있는 상대를 조금은 관대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바라보게 된 것 같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예전 같으면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저 사람의 행동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달까. 그러다 보면 상대가 조금 더 이해되곤 했다. 설령 그 행동자체가 이해되지 않더라도 너무 속상해하거나 그 감정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었다. 전보다 더 여유롭게 부정적인 상황을 넘겨버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내 삶과 타인의 삶을 바라볼 때 이렇게 약간의 거리와 여유를 갖게 되니 인생이 조금은 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 내가 어른이 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평생 너무나도 흔하게 들어온 소크라테스의 명언 ‘너 자신을 알라.’가 또 새롭게, 깊게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그가 전 세계가 그토록 열광하는 대단한 철학자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가 남긴 이 한 줄에는 사람과 그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을 관통하는 진리가 담겨있었으니 말이다.



백세 시대에 가장 자주 화두에 오르는 말은 ‘반백살’ 오십 인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오로지 ‘마흔’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서른아홉의 나이로 곧 다가오는 사십 대를 기다린다기보다는 ‘마흔’ 앞에 항상 따라붙는 ‘불혹’이라는 말 때문에.


‘불혹’. 이제 몇 개월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내 것이 되는 ‘마흔’이라는 나이에 나는 어느 것에도 현혹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자꾸 고개를 내민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 매일 밖에 나다니는 통에 독서를 권장하는 뜻으로 만들어진 말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불혹의 나이, 마흔’ 또한 쉼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이기에 그만 좀 흔들리고 오롯이 서있어보라고 지어진 말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십 대의 힘든 육아를 경험하며 알게 된 인생과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나도 사십 대에는 흔들림 없이, 그러나 유연하게 인생을 대할 수 있는 ‘마흔’이 되기를 소망한다.


누군가가 보기엔 단순한 진리와 사실도 내가 스스로 경험하고 체화해서 글로 써 내려갈 수 있다면 그 또한 소중한 나만의 ‘깨달음’이 되지 않을까 싶기에 오늘도 나는 어른이 되어가는 길에 깨달은 나만의 생각들을 적어본다. 곧 다가올 ‘불혹’의 내가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마흔’을 맞이하기 위하여.


▼해당 에세이는 팟캐스트에서 오디오북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788857?e=2480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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