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미련과 내일의 치열함에 끼인 오늘

당신의 '오늘'은 안녕한가요?

by 스윗라임

"안녕, 정말 오랜만이다!"

바쁜 일상에 치여 사느라 그녀와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보고 앉은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서운함 보다는 기쁜 마음이 훨씬 컸기에 괜찮았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다시 만났으니까. 언제나처럼 그녀는 에너지 넘치는 생기 가득한 얼굴로 대화를 시작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알아온 그녀는 이제껏 해낸 일들도 하고 싶은 일들도 많은 모험가이자 전략가다. 한번 마음먹은 일에 대한 열정과 추진력은 또 얼마나 대단한지! 자리에 앉자마자 성공적으로 끝낸 지난 캠페인에 대한 짜릿하고도 멋진 에피소드 들과 다음 달에 있을 신규 프로젝트에 대에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의 이야기에 한껏 몰입한 우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서로의 얼굴이 발그스레 달아오를 때까지 대화를 나누었다.


"어머나! 항상 이렇다니까."

문득 시계를 확인한 그녀가 말했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서둘러 인사를 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분명 웃으며 돌아섰는데 이내 마음이 쓸쓸해진다. 그렇다. '어제'와 '내일'에 대한 이야기로만 가득한 그녀의 세계에 여전히 나의 이야기는 없었다. 그렇지만 늘 그렇듯 또다시 기다려본다. 언젠가는 그녀의 눈길이, 마음이 나에게도 와닿기를. 늘 함께 하고 있는 나에게도 말이다. 나의 이름은 '오늘'이다.




파워 J(계획형 인간)인 나는 서른아홉 해를 살아오면서 과거의 아쉬움들을 곱씹으며 미래의 계획들을 설계하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왔던 것 같다. '과거'에 대한 미련과 '미래'에 대한 치열함에 끼여 정작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지금'을 바라보지 못했다. 눈뜬장님처럼. '


'카르페디엠'처럼 '지금 현재에 충실하라'는 수많은 명언들을 뒤로한 채 언제나 뒤를 돌아보느라, 저 멀리 앞을 내다보느라 막상 나에게서 가장 가까운 '지금'은 사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아득하고 먼 존재였다. 그는 언제나 나를 두 팔 벌려 안아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생각해 보면 '오늘'은 나에게 바라는 것이 많지 않았다. '어제'의 끝없는 후회가 남긴 상념들과 아쉬움, 죄책감 같은 것들, '내일'이 작은 나를 짓누르고 있는 부담감과 불안함의 무게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말이다. '오늘'은 그저, 약간의 것만 원했다.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다른 것에 관심을 빼앗기지 않고 지금 나를 둘러싼 작은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약간의 관심만을 말이다.


가령, '지금 불어오는 봄의 산들바람의 포근함을 느끼고 있는지.', '길고 긴 회의들 사이에 홀짝이며 마시는 커피의 맛은 네가 좋아하는 고소 하면서도 시원한 맛인지.', '길가에 핀 수국의 보랏빛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약간의 관심으로 인해 잠시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현재 나를 보듬을 수 있는 그 시간을 '오늘'은 소박하고도 간절하게 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길거리에서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셋과 씨름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본다. 엄마는 바쁘다. 양 옆에서 자기 좀 봐달라고 난리 치는 첫째와 막내를 받아주느라 정신이 없다. 엄마도 안쓰럽지만, 나는 자꾸 둘째 아이에게 마음이 갔다. 자기주장 강한 첫째 언니에 치이고, 응석 부리는 막내에 밀려서 그 둘에게 엄마의 두 팔을 양보하고는 아무 말 없이 엄마와 자매들을 따르고 있는 둘째 아이.


그러다 나의 '오늘'에 또다시 미안해졌다. 나도 저 엄마처럼 늘 묵묵히 기다려주고 참고 있는 나의 오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다음에... 다음에... 너의 손을 잡아줄게,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할 거야, 언젠가 다른 아이들이 보채지 않을 때 꼭 너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줄게.'


▼해당 에세이는 팟캐스트에서 오디오북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788857?e=24804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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