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연말에 출간한 <엄마 동화>는 예상대로 정말 소소하고 느린 속도로 작은 서점에서 조금씩 팔리기 시작했다. 서울, 부산과 같은 대도시뿐 아니라 거창 등 소도시들에서 이름 모를 독자들을 만나며 전국을 여행하기 시작했는데, 책이 입고된 서점들을 통해서 혹은 간혹 올라오는 책 리뷰들을 찾아보며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는 <엄마 동화>의 발자취들을 살펴보는 것은 정말이지 유쾌했다.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집에서 발이 꽁꽁 묶인 채 이동의 자유를 제한당하는 중에도 나의 사랑, 나의 책은 급기야 한국을 벗어나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무려 '두바이'였다. 해외에서 거주하고 있는 친한 언니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내려다 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부르즈 할리파'와 함께 <엄마 동화> 책 사진을 찍어 보내온 것. <엄마 동화>의 두바이 진출 순간이었다. 한국에서 직항을 타고 가도 10시간이 넘어서야 도착을 할 수 있는 그 먼 곳에 말이다. 누군가는 그냥 '외국에 사는 친구가 해외 배송으로 책을 받아본 거네'라며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지만, 나에게 그 사진의 의미는 남다르게 다가왔다. 별거 아닌 순간, 별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있는 사진 한 장에 마음이 콩닥콩닥 뛰고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왔다.
산다는 사람도, 판권을 계약하자고 연락 온 출판사도 없었지만 어느새 나의 의식은 책을 등에 업고 전 세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의 글이, 메시지가 한국을 넘어 세계 곳곳에 있는 엄마들의 마음을 울리는 책이 되었으면 하는 꿈을 가득 안고서 말이다. 국적도, 인종도, 문화도, 그 모든 것이 달라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은 다 비슷할 테니까.
마침 1쇄로 찍은 책의 재고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2쇄는 몇 부를 찍어야 할까 고민하는 와중에 훅 들어온 번역본 출간의 꿈을 현실로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소속된 출판사 없이 자가 출판한 독립출판물이었기에 비행기를 타고 더 큰 세상으로 훨훨 날아가고자 하는 나의 앞길을 막을 것은 그 어떤 것도 없었다.
'중국에 살고 있는 이점을 십분 살려 중국어 책을 발간해 보면 어떨까?'
'국제학교 유치원을 다니고 있는 딸아이의 친구 엄마들과 함께 볼 수 있도록 영어로도 번역해 볼까?'
'영어와 중국어로 책이 번역되어 나온다면 이 세상 누구와도 책 이야기를 할 수 있겠구나!'
제작비, 원가, 판매가 등등 책을 팔아 남길 수익 따윈 나의 관심대상이 아니었다. 해외에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을 적극 활용해 조금 더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과 <엄마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은 마음이 저만치 앞서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리저리 수소문해서 중국어로, 영어로 책을 번역하고 한국에 있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인쇄소에서 국문판 2쇄 인쇄를, 중문판과 영문판 1쇄 인쇄를 시작했다. 코로나로 물류이동이 원활하지 않던 시기여서였을까? 예정된 배송일을 두 달이나 넘기고서야 베이징 집으로 배송된 <엄마 동화> 중문판, 영문판을 받아보았을 때 그 짜릿함과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중문판 <엄마 동화>는 중국의 몇몇 독립서점에서 중국인 독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지인을 통해 연이 닿은 한 출판사에서는 몇 편의 동화를 추가해서 동화책 시리즈를 출판하자는 솔깃하면서도 감사한 제안을 보내오기도 했으나, 조심스레 거절했다. 당시 나는 새로운 책을 쓰기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에 들떠있었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 영문판 <엄마 동화>는 훨씬 더 많은 나라 사람들을 만났다. 독일, 미국, 덴마크, 영국, 오스트리아, 대만, 홍콩에서 온 엄마들이 개인적으로 <엄마 동화> 이야기에 대한 공감과 응원을 보내왔다.
책이 출간된 후 단시간만에 이토록 많은 외국인 독자들을 만나는 데는 큰 기적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책이 출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나의 사랑 둥이들의 생일이 있었고 우리 아이들 생일파티에 함께 와준 친구 엄마들에게 내 책을 선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학교와 상업시설이 문을 닫고 무기한으로 온라인 수업을 하는 기간에는 아이들을 위해 소규모 모임을 갖기도 했는데, 친구집에 찾아갈 때마다 책을 건네면서 자연스럽게 육아이야기, 엄마로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곤 했다.
모두들 국적은 달랐지만, 코로나라는 팬더믹 상황아래, 낯선 타국 땅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들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통제되고 답답한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육아를 하고 있었던 탓이었을 것이다. 각자 다른 문화를 가진 나라에서 나고 자라 이 낯선 곳까지 온 엄마들이 그토록 이 책에 사랑과 관심을 보내준 이유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책을 출간했으면 이윤을 남겨야 하지 않냐고. 지인들에게 선물용으로 건네는 책이 뭐가 그리 대단하고 의미가 있느냐고 말이다.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돈이 되지 않는 일, 의미만 쫓는 일을 지속할 수 있겠느냐고, 배부른 소리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책을 통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공감하면서 나는 이제껏 살면서 경험하지 못한 정말 커다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나와 다르게만 보이던 사람들과 같은 것에 대해 크게 공감하고 소통하며 가까워지는 힘, 그리고 그 소통이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지는 행운 같은 것들 말이다. 당장은 커리어가 되지도, 물질적인 여유를 가져다주지도 않았지만 이 행운은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진짜 작가로 성장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했다. 나의 글을 읽고 위로를 받았다며 다음책도 고대하며 기다리겠다고 말해주는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마흔이 되기 전, <엄마 동화>를 통해 뿌린 꿈의 씨앗들은 백세시대에 앞으로 남은 긴 시간 동안 얼마나 푸르고 향긋한 잎사귀들과 꽃, 열매들을 피워낼까?
혼자 보려고 쓴 글을 동화로 만들어 책으로 엮어내고 해외 판권을 계약한 셈 치고 스스로 번역본까지 출간한, 조금은 무모할 정도로 열정적인 내가 기특할 따름이다. 그런 나이기에 앞으로 남은 세월도 두려움보다는 기대를 앞세워 당당히 걸어가 보려고 한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꾸준히 멋지고 역동적으로 잘 살아줘!'
책을 출간할 때처럼, 오늘도 나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며 신나게 파이팅을 외쳐본다!
▼해당 에세이는 팟캐스트에서 오디오북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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