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다 소중하다

by 라임웨일

의미 없는 삶은 아무도 없다.

사람은 모두 각자의 고유한 빛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지 못한 채, 매일 자신을 깎아내리고 비난한다. 어쩌면 오늘 하루도 힘겹게 버티면서, 초라한 내 모습과는 달리 반짝이는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하지?”

“왜 나만 안 되는 걸까?”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한 걸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신을 마음의 감옥에 가두고 매일 날카로운 말로 자신에게 화살을 쏘며 마음속 깊은 곳에 상처와 흉터를 남긴다. 마음의 감옥은 점점 자신을 작게 만들고, 꿈꾸는 것을 멈추게 하며,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든다.

특히 SNS를 볼 때면, 누군가는 고급 차를 타고 화려한 집에서 비싼 음식을 즐기며, 명품 쇼핑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모습을 보며 초라한 나를 마주하게 되고, 허무함은 더욱 깊어진다.

"나는 왜 저 사람처럼 되지 못할까?"

"나도 노력했는데, 왜 이 모양일까."


비교는 언제나 나를 초라하게 만들고, 마음은 소리 없이 얼룩져버린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진실이 있다. 사람들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골라서 드러낸다. SNS는 마치 무대와 같아서, 조명이 비치는 부분만 화려할 뿐 그 뒤편의 어둠은 감춰진다. 마치 달의 한 면만 평생 바라보며 달 전체를 다 안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때로는 액자 속 화려한 모습만 보고 그것을 전부인 양 착각한다.


그들도 어쩌면 인정받고 싶어 자기 삶의 일부분을 떼어내고 꾸며서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받은 평가로 결핍을 채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면의 치장을 통해 내면의 결핍을 채우려는 삶은 결국 공허(空虛)를 반복할 뿐이다. 깨진 항아리에는 아무리 많은 물을 부어도 물은 고이지 않는다. 내면이 메워지지 않았다면 아무리 겉을 꾸며도 마음은 절대 채워지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우리는 누구보다도 사랑과 애정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가르치며 <법구경>에서는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라고 말한다.

<성경>에서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마태복음 22:39)”고 가르친다.

두 종교에서 공통으로 말하는 것은 단 하나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관계의 시작이며, 삶의 회복력이다.

자신의 소중함은 결코 타인의 평가로 결정되지 않는다. 진짜 삶은 외부의 비교가 아닌, 내 안의 정직한 감정과 경험에서 시작된다.

눈에 보이는 성공보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단단함이 삶을 살아가게 한다.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누구나 불완전하고, 흔들리며, 때론 길을 잃는다. 하지만 삶은 시험지가 아니고, 정답이 정해진 것도 아니다. 누구의 삶도 의미 없지 않고, 누구의 존재도 헛되지 않다. 이 세상에서 바꿀 수 있는 건 결국 나 자신뿐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시선으로 삶을 바라볼 때, 비로소 마음의 감옥은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꽃이 피는 시기는 모두가 다르다.

지금 내가 가진 것과 이룬 것이 남들보다 부족하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봄에 피는 꽃이 있고 여름에 피는 꽃이 있다. 가을에 피는 꽃이 있으며 겨울에 피는 꽃도 있다.

각자의 꽃은 각자의 시기에 맞춰서 피어난다. 그 꽃들은 자신들이 개화되어야 하는 시기가 아닐 때 먼저 핀 다른 꽃들을 보며 질투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자신들의 때를 기다린다.

어떤 씨앗은 깊은 뿌리를 내리느라 오랜 시간을 흙 속에서 보낸다. 그렇다고 해서 그 꽃이 덜 아름답거나 덜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각자 모두 다른 인생을 살고 있으며, 저마다의 속도로 살아가는 중이다. 성격도, 자라온 환경도, 가진 재능도, 인생의 타이밍도 다르다.

어떤 사람은 20대에 큰 성공을 거두고 어떤 사람은 40대에 성공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인생의 후반이라고 말하는 6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

누구는 이른 아침에 피는 꽃이고 누구는 해가 지고 나서야 천천히 향기를 내뿜는 꽃이다. 피지 않았다고 해서 꽃이 아닌 것이 아니며 잠시 시들어 있다고 해서 가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같은 시기에 피지 않을 뿐이다. 모든 꽃은 같은 속도로 피지 않는다.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거칠게 느껴져도 그 안에는 분명히 자신만의 빛이 숨어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무거운 책임감과 끝없는 경쟁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지치고 외로워지고, 내가 처한 모든 상황이 문득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의구심들이 불청객처럼 마음속에 스며든다.


누군가는 지금 백수가 되었을 수도 있고 이직을 준비하며 자존감이 무너진 상태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육아에 지쳐 하루 종일 자신을 잃은 채 살아가는 중이며,

누군가는 부모님의 병간호로 인해 평범하던 일상들이 모두 바뀌어 버렸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자신의 꿈은 뒤로 밀어둔 채 살아갈 수도 있다.

누군가는 연애에서 상처를 받아서 아픔을 겪고 있고,

누군가는 이혼이나 관계 단절로 깊은 외로움에 빠져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가족, 친구의 영원한 이별로 깊은 상실감에 빠져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모든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하다.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있다. 그 힘든 순간을 버텨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가치를 말해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지금 겪는 고통, 외로움, 혼란은 나 자신을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일 뿐이다.

비록 스스로가 빛나지 않아 보일지 몰라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색깔로, 향기로, 이야기로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피어나고 있다. 사람의 가치는 인정이나 눈에 보이는 성과, 타인의 평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의미 있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 사실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상상할 수 없는 가능성과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가치는 존재하는 그 자체에서부터 비롯된다.

성과나 결과와 상관없이, 존재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나 자신에게 감사하고, 그 하루를 버텨낸 자신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대단한 업적을 이루지 않아도,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발자취만으로도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서로를 위로하듯, 우리도 누군가에게 커다란 희망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누구나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어느 날,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배워온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노래를 듣던 아내는 “노래가 참 좋다”며 따라 부르곤 했고, 나 역시 자연스럽게 그 노래를 귀 기울여 듣게 되었다. 자세히 듣게 된 노래의 가사는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위로가 되어 있었다.

아들이 부른 노래는 <모두 다 꽃이야>라는 동요로 기회가 된다면, 누구든지 꼭 한 번 들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노래의 가사엔 “산에 피어도, 길가에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이 짧은 노랫말이 우리의 삶을 대변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

비록 지금 당장은 눈에 띄지 않고, 멈춘 듯 보일지라도, 분명 자신만의 속도로 피어나고 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우리는, 존재만으로도 소중하며 살아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이미 의미 있는 존재다.


우리는 모두 다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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