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인생이 한 폭의 그림과 닮아 있다고 느낀다.
그림에는 완벽이라는 것이 없다. 그려지지 않은 여백도 그림의 일부가 되고, 빈 공간을 채운면 또 다른 형태의 그림이 된다. 결국, 그림을 그려도 그리지 않아도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된다.
그런데 우리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는 그렇지 않다.
삶을 그림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끊임없이 평가하고 평가받으며 점수를 매긴다. 처음엔 별것 아니었던 평가 한 줄이,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문장이 나를 정의해 버린다.
“나는 너무 소심해.”
“나는 너무 게을러.”
“나는 너무 예민해”
분명 나를 좋게 평가해 준 말도 있었을 텐데, 이상하게 긍정의 기억은 흐려지고 부정의 목소리만 또렷이 맴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결국, 내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이 되어버린다. 모든 생각과 감정은 반복되는 내면의 언어를 양분 삼아 자란다. 처음엔 아주 작은 점에 불과했던 결핍이 쌓이고 쌓여, 어느새 면이 되어 나를 덮는다.
“코끼리를 기억하지 마!”라는 말의 역설이 있다.
부정의 단어로 코끼리를 떠올리지 않으려 할수록, 오히려 머릿속에서 지우려던 코끼리는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는 법이다. 부정의 언어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의식을 의도와는 반대 방향으로 더 끌어당긴다.
외모, 성격, 학벌, 말투, 표정, 행동 등 세상이 나를 평가하는 수많은 기준 속에서 자신을 억지로 끼워 맞추며 살아간다.
잠시 멈춰 곰곰이 생각해 보자. 나는 정말 그렇게 부족한 사람일까?
우리가 닮고 싶어 했던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들 역시 완벽한 사람은 없었다.
화려해 보이기만 했던 연예인들도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고백한다.
빈센트 반 고흐는 생전 단 한 점의 그림만 팔았을 정도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극심한 우울증과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결국 생을 마감했다. 역사상 최고의 대통령과 총리로 평가받는 에이브러햄 링컨과 윈스턴 처칠조차 평생 우울증과 싸워야 했다.
결국 부러워했던 삶의 이면 뒤에는 늘 어둠이 존재했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이다.
우리가 보는 타인의 인생 역시 조명이 비춘 한 장면일 뿐,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다.
사람들은 모두 불완전한 존재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다른 부분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그러면 또다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한 삶을 반복한다. 하지만 신조차도 모두에게 추앙되지 않으며 비판의 대상이 된다.
결점은 결점으로만 볼 때 약점이 되고 부끄러움이 된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결점이 있다는 것은 아직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이고, 결점이 있기에 나아갈 이유를 갖는다. 결점은 단점이 아니라, 아직 쓰이지 않은 나의 가능성이다.
모든 것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언제든 앞면이 뒷면이 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단점’이라 부르는 것들도 각도를 바꾸면 ‘다른 모습의 장점’이 된다.
그렇기에 0도 무한대가 될 수 있고, 무한대도 0이 될 수 있다.
겉보기에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0'은, 모든 가능성을 품은 무한한 시작점이 된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 때 오히려 모든 것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다.
반대로 아무리 커 보이고 중요했던 것도 시간이 흐르거나 관점이 달라지면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모든 것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상태도 절대적이지 않다.
그러니 이제, 내 안의 ‘0’이라 생각했던 결핍들을 다시 바라보자.
‘느리다’는 평가는 꼼꼼하고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신중함’의 다른 이름일 수 있고, ‘급하다’는 말은 과감하게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실행력’일 수 있다.
‘예민하다’는 것은 작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세심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능력이며, ‘완벽주의’는 맡은 일에 ‘책임감’을 느끼고 끝까지 해내려는 태도다.
결국 모든 평가는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다.
내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단점도, 특성도, 장점으로 바뀔 수 있다.
우리가 단점이라 여겼던 것들은 어쩌면 아직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소중한 가능성일지 모른다.
내가 가진 결핍이 단점처럼 보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환경, 역할, 관계 속에서는 누구보다 빛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이제는 나의 단점도 ‘다르게 생긴 장점’일 수 있음을 알기에 더 이상 스스로를 탓하고 자책하지 말자.
그 단점이라고 느꼈던 모습들조차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 준 나의 일부다.
사람은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괜찮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사랑을 주며,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만약 삶에서 타인의 평가가 내 마음을 잠식하려 할 때, 내 안에서 또다시 부정의 목소리가 피어오르려 할 때, 조용히 자신에게 말해보자.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