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엔 부모님이 내려준 정답대로 움직였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가르침과 시험지 속 정답에 따라 생각했다. 성인이 되면 사회가 미리 정해놓은 기준과 정답에 맞춰 살아간다. 언제부터인가 '질문하는 삶'보다 '정답을 따르는 삶'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래서 무언가 어긋나고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면 그 해결책 또한 습관처럼 외부에서만 찾는다. 자기 생각보다 먼저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내면의 감정보다 먼저 세상의 기준을 따른다. 때론 누군가 정답을 알려주고 해결해 주길 바란다.
언제부터인가 외부에서 답을 찾는 게 익숙하다.
연애할 때도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기보다 친구에게 조언을 구하고 인터넷에서 해답을 찾는다. 그 관계에서 내가 느끼는 미묘한 감정의 결은 외면한 채, 마치 연애에도 공식이 있는 듯 외부의 조언만 찾는다.
학교에서도 비슷하다.
최상위권 학생들은 의대에 진학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움직이고 내가 배우고 싶은 전공보다는 점수에 맞춘 대학의 이름값이 우선이 된다. 그렇게 선택하면 처음엔 합격의 기쁨에 들뜨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불현듯 찾아오는 질문과 허탈감이 찾아온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그 회의감은 내 삶에 진짜 질문이 없었기 때문에 오는 허무함이다.
결혼 역시 마찬가지다.
함께 있을 때의 편안함, 나와의 결의 유사성보다 상대방의 학벌, 배경, 조건을 보고 먼저 판단한다.
결혼정보회사가 매년 성장하는 게 이를 방증하는데 그런 조건이 결국 행복을 보장해 줄 거라 믿지만, 조건으로 결혼한 수많은 연예인과 재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이혼하는 기사들은 그 믿음이 얼마나 불안정했는지 말해준다.
직업을 선택할 때 “요즘은 IT가 대세야”, “그래도 결국엔 공무원이 안정적이지”라는 말에 이끌려 자신의 관심과 재능은 뒤로 밀어둔 채 사회가 유행처럼 말하는 트렌드에 맞춰 꿈을 끼워 넣는다. 그러나 그런 선택이 내 마음의 방향과 다를 때 남는 것은 허탈함과 공허함뿐이다.
수년간 취업 준비를 하며 대기업과 공무원으로 합격을 했지만 1년 안에 퇴사하거나 면직되는 비율이 높은 이유는 그 일이 정말 자신이 원해서 한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창업이나 새로운 도전을 할 때 “그게 요즘 제일 돈 많이 벌어”, “유명 유튜버가 그게 좋다더라”, “SNS에 맨날 이거 나오잖아”와 같은 말에 이끌려 도전을 시작한다. 하지만 자신의 질문이 아닌 외부의 소문과 조언에서 비롯된 선택은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길인가?’라는 의문이 마음속에 싹튼다.
실패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요즘 경쟁자가 너무 많아졌어.”
“자본금이 좀 부족했지.”
“마케팅만 잘됐어도 됐을 텐데…”
실패의 이유를 '운'이나 '환경' 탓으로 돌리며, 원인을 자신 바깥에서 찾는다.
하지만 진짜 질문은 이런 것이다.
“나는 정말 그 일을 간절히 원했던가?”
진실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 바로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삶을 되돌아보는 출발점은 언제나 ‘나’와 마주하는 순간이다. 길을 잃고 방황할 때도, 모든 것이 평온해 보일 때조차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지금 내 선택은 정말 내 생각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기준을 따라가는 걸까?”
“정말 이 일이 좋아서 하는 걸까, 아니면 단지 좋아 보이니까 하는 걸까?”
“내가 가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의 순간 앞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방향은 어디인지, 지금, 이 선택은 내 마음에 부합하는지 말이다.
어린아이들은 세상이 궁금하다. 그래서 끊임없이 묻는다.
“왜 하늘은 파래?”
“왜 그림자는 길어져?”
세상의 모든 것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아이들은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간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어른들이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은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그냥 원래 그런 거야”라는 답을 들은 아이는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 믿고, “그건 ○○해서 그런 거야”라는 설명을 들은 아이는 ‘세상은 이유가 있는 것’이라 믿는다.
부모가 세상을 해석해 주는 방식이, 아이의 인식이 되어버린다.
우리도 타인이 알려주는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살아왔다. 하지만 어른이 되었다고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외부에서 정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그리고 내 삶에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진짜 내가 원하는 길을 가고 있는가?"
타인이 정해준 답을 따라가며 살던 삶에서 벗어나서 내면의 나로부터 답을 찾으려는 그 시점이 바로 삶이 바뀌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나라는 주체를 가장 오래 지켜봐 온 사람은 누구인가?
타인도, 가족도, 사회도 아니다. 바로 ‘나 자신’이다. 그렇기에 질문은 밖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향해야 한다.
삶의 진짜 변화는 나를 향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궁금해진다.
생일은 언제이고 취미는 무엇인지 또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무슨 습관이 있는지 등 그 사람을 이루는 하나하나가 전부 알고 싶어진다. 어떤 일이 그 사람을 웃게 하고, 또 무엇이 그 사람을 슬프게 하는지도 알고 싶어진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의 애정은 때로는 감탄을 자아낸다. 그 사람이 했던 말, 입었던 옷, 습관, 사소한 표정까지 기억해 내는 모습을 보면 마치 팬들이 아이돌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 앞에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자신에게는 그런 애정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에는 무심하고, 무엇이 나를 움직이고 흔드는지도 잘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진짜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나는 어떤 순간에 슬프고, 어떤 순간에 기쁠까?’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까?’
‘지금 이 일은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맞는 걸까?’
누군가를 사랑할 때처럼, 그 애정의 시선을 자신에게도 돌려야 한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궁금해하듯, ‘나’라는 사람의 내면을 더 많이, 더 깊이 알아가야 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질문해야 한다.
질문이란 나에게 관심을 두는 첫 번째 행위다. 질문이 없으면 관찰이 없다. 관찰이 없으면 이해도 없다. 그리고 이해가 없으면 평생 자신을 모른 채 살아가게 된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그 안에서 수많은 페르소나를 쓴다.
학교와 직장에서는 A라는 가면을, 가족 앞에서는 B라는 가면을, 혼자 있을 때조차도 C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내 앞에 마주한 현실의 외로움과 두려움, 감정을 숨기느라 쓰던 가면이 때로는 나를 나답지 않게 만들고 오랜 시간 쓰던 가면들이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진짜 내 얼굴이 어떤 모습이었는지조차 잊고 살아간다.
이제는 그 가면을 벗고 진짜 나의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질문은 곧 나에 대한 탐구이며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내면의 대화다. 그리고 그 과정은 단지 생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된다.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묻어두었던 상처를 발견하고 억눌린 감정과 오래된 소망과 마주하게 된다.
질문은 자기 자신을 인터뷰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종종 정답을 찾는 데 몰두한다. 하지만 세상은 하나의 정답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누구도 똑같은 삶을 살지 않기에 서로가 정의하는 정답은 각자 다른 색깔을 띤다.
가치관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상처와 기쁨의 결도 다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질문이 있어야 비로소 나만의 길이 열린다.
어린 시절 우리는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자라면서 질문하는 법보다 정답을 외우는 법을 먼저 배웠다. 그리고 그 익숙함 속에서 점점 '질문 없는 삶'에 길들여졌다.
질문 없이 쌓아 올린 삶은 종이컵으로 만든 탑과 같다.
겉보기엔 높이 올라갔지만, 속은 비어 있고 중심은 약하다. 조금만 흔들려도 무너지는 그런 삶은 겉으로는 성공했지만, 마음은 늘 공허하고 의미를 잃은 사람들의 삶이다. 그 삶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사회와 타인의 기준에 맞춰 연기하듯 살아온 삶이다.
“난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어. 쉬는 날에도 뭘 해야 즐거운지 모르겠어.”
만약 이 말이 낯설지 않다면, 어쩌면 지금 당신도 질문을 잃은 삶을 사는 중일지 모른다.
질문을 잃는다는 건 곧 ‘나’를 잃는다는 뜻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가 아니라 “왜 그 길을 가고 있는가?”이다. 그렇기에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은 질문이다. 질문은 방향을 확인하는 나침반의 역할을 해주며 내가 가는 길의 목적이 내 마음과 닿아 있는지 확인하고 지금, 이 선택이 내 삶의 방향성과 맞는지를 알려준다.
아무 질문도 하지 않는 삶은 늘 누군가의 대답에 끌려다니는 삶이 된다. 질문이야말로 내 삶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물론 모든 질문이 즉각적인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질문의 씨앗은 언젠가 꽃이 되어 나를 마주한다. 의외의 순간, 삶의 틈 사이에서, 불현듯 그 답이 찾아온다. 그건 단지 지식의 결과가 아니라, 내면의 성장이자 깊은 자각이다.
회사에서 한명의 사람을 채용하기 위해 수십 개의 질문을 던진다. 그 사람이 회사와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질문을 통해 면접자를 알아가고 면접자는 회사가 자신과 어울리는지 알아보기 위해 질문의 의미를 생각하고 질문한다.
그런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삶의 주체인 나 자신에게는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가장 오랜 시간 함께해 온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무관심한 삶을 살아온 셈이다.
질문은 자기 자신과의 대화이며 사랑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처럼 자신에게도 그만한 애정과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오늘 하루 어땠어?”
“무엇이 너를 설레게 해?”
“요즘은 뭐가 가장 힘들어?”
“너의 삶을 이끄는 원동력은 뭐야?”
질문은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내면의 진짜 나 자신과 마주하는 가장 깊은 시간이다. 세상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며 스스로 삶의 방향을 이끄는 방식이 된다. 그렇기에 내면의 자아에 질문을 던지는 것은 내가 의식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다.
질문은 감정을 깨우고 자각을 만든다. 그리고 하나의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그렇게 이어진 질문의 끝에서 예상치 못한 경이로운 대답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법구경>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스스로를 이기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승자이다.”
또한 <성경> 요한복음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31,32)”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결국 자신 안의 의문과 답을 대면할 때, 비로소 자유와 성장을 얻는다. 진리는 질문을 통해 다가온다. 질문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우리의 꿈을 찾게 하고 우리 자신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만든다.
결국, 질문은 지금 서 있는 길 위에서 우리를 인도하는 안내자가 된다.
그렇기에 질문은 우리의 스승이다. 삶에서 모든 질문이 반드시 정답을 주지는 않지만 질문을 던지는 그 행위 자체가 이미 의미 있는 여정이며 그 여정은 우리를 더 진실한 삶으로 이끈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 그것이 진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