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빵한 보름씨와의 만남(12)
3종 굴욕세트를 마친 뒤 얼마 안 가 간호사님께서 진통 촉진제를 넣어 주셨다. 나는 사실 굉장히 보수적인 편이라 촉진제도 맞고 싶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유도분만을 피했던 이유) 나같은 산모가 꽤 있는지 간호사님께서 촉진제를 투여하기 전에 동의하는지 물어보셨다.
이제 촉진제 투여할 건데 괜찮으실까요?
진통을 겪어보니 솔직히 너무 힘들었고 ㅋㅋㅋㅋ 그 상황에서 당당하게 '아니요. 저는 자연주의로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할 정도의 강한 신념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꼭 맞아야 되나요..?"라고 물었고 혼자 자답하듯 "필요하시니까 넣어주시는 거겠죠.."라고 둘러 동의를 표했다. 간호사님께서 내 마음을 읽었는지 "너무 힘드시니까요.."라고 말하며 진통 촉진제를 넣어주셨다. 그리고 진통 주기가 미세하게 더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으악.. 으악.. ㅜㅜㅜ
나는 아직도 이 기계를 보면 온몸의 신경이 쭈뼛쭈뼛 선다. 정말 잊지 못할 고통이었다..;;;
모니터 중 가장 아래 쪽 곡선이 높아지면 큰 진통이 오는 건데, 곡선 경사가 높아질 때마다 큰 파도가 눈 앞에 닥친 것처럼 두렵고 무서웠다 ㅠ 도망가고 싶은데 달리 방법도 없었다. 몇 초후엔 여지없이 파도를 철썩 때려맞는 것처럼 고통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아...
새벽 4시부터 두 시간 동안 그렇게 진통에 몸부림을 치다가 여섯시에 무통주사 삽관(무통 약 투여 x)을 해주셨다. 무통주사 삽관은 또 얼마나 무서운지... 새우처럼 허리를 숙이고 있으면 척추에 주사바늘을 꽂아주는 거였는데 나는 바들바들 떨었다. 척추에 주사를 놓는다는 게.. 잘못하면 마비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너무너무 무서웠다. 막상 바늘이 들어갔을 땐 그렇게 아프지 않았지만..!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너무 아프면 벨을 눌러달라고 하고 간호사님이 나갔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벨을 눌렀더니 4cm가 열렸다고 무통주사를 놓아주신다고 했다. 그렇게 무통주사가 들어갔더니 팔에서 등..다리까지 뭔가 촤악 시원한 느낌이 나고.. 더 이상 아무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또 너무 아프면 다시 불러달라고 하고 간호사님이 나가셨고..한 두시간 뒤에 다시 고통이 찾아왔다. 그땐 간호사님이 내진을 하면서 뭔가 세게 터뜨리는 느낌이 났는데 양수를 터뜨려주신거라고 했다. 간호사님 손에 흥건히 묻은 피를 보자 다시 막연한 공포가 일었다. 저 피가 다 내 거라고? 나 혹시 죽는 건 아닌가? 양수를 터뜨리자 증말 너무너무 아팠다... 자궁문은 7cm가 열려있었고 무통주사가 한번 더 투여됐다. 그리고 두 시간 뒤.. 다시 무통빨이 떨어지고 진통이 느껴져 벨을 눌렀더니 9cm가 열렸다고 힘주는 연습을 시작하자고 하셨다. 진통이 찾아왔을 때 개구리처럼 다리를 올리고 아래쪽으로 힘을 끄으응 주는 연습이었다. 남편이 같이 손을 잡고 호흡을 해주면 좋다고 했다. 몇 번 연습을 하자 간호사님이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주시고 한마디 응원을 건넸다.
얼른 끝내고 점심 드실 수 있게 해드릴게요.
그때 시간이 11시를 좀 지나고 있어서 속으로 그게 가능할까? 싶었다. 가능하면 좋겠다는 바람이야 말할 것도 없었지만ㅠㅠ
진통은 새벽처럼 온몸을 쥐어짜는 느낌은 아니고 왼쪽 무릎과 허벅지 허리 라인이 찌릿하는 정도의 아픔이었다. 물론 아팠지만 한쪽만 아프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달까... 그리고 개구리 다리 자세로 힘을 주니까 새벽에 맨몸으로 때려맞을(?) 때 보다는 덜 아픈 것 같았다. 간호사님 두분이 오셔서 진통 느껴질 때마다 힘주기를 도와주셨고 몇 번 반복하다 신호가 왔는지(드디어?!!) 침대가 변하고 의사선생님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당황했다. 애기가 나온다고?? 이렇게???? 그냥 계속 아프기만 할 뿐인데...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아기가 내려오는 느낌이 난다고 하고 친정엄마도 아기가 홱 도는 느낌이 났다고 기억을 했는데 나는 아무 느낌이 없었다. 그냥 밑이 엄청 아팠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아기 머리가 나오려고 질 입구에 껴있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치과에서 기구로 입을 쩍 벌려놓고 오~래 있으면 뻐근한것처럼 밑에 뭔가 꽉 껴서 오~래 있는 아픈 느낌이었는데 아기가 빠지고서야 그게 그런 아픔인 걸 깨달았다. 아무튼 밑이 아팠고 나는 그걸 진통 때문에 오는 아픔으로 착각했다.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수술 가운을 입는데 너무 여유를 부려서 속으로 화가 났다. 아 아파죽겠는데 고냥 좀 얼렁 오시지는!! ㅋㅋㅋㅋ 쨌든 섬세하게 가운을 정비하신 의사선생님은 ㅋㅋ 내 앞에 앉으시더니 진통이 오는 타이밍에 같이 구령을 해주셨다. 힘주세요 힘주세요 하다가 어느순간 힘 빼세요! 힘 빼세요!!!! 소리가 들리더니 밑으로 아주 따뜻한 물체가 물컹~ 나오는 느낌이 났다. 잠시 정적이 일더니... 조금 있다가 응~~애 소리가 들렸다. 아기 울음소리는 티비에서 들은 것처럼 말 그대로 '응애'였다. 그게 너무 귀여워서 순간 웃음이 났다. 의사 선생님이 '우는 사람은 봤어도 웃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탯줄이 연결된 채로 아기를 들어서 나에게 얼굴을 보여주셨다. 그땐 눈물이 났다. 아기가 산도를 통과하기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도 잘 나와준 게 기특하고 대견하고 또 고마웠다. 임신 10개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는데 그 세월을 같이 견딘 아기를 실물로 마주하는 기분이... 너무 고맙고 감동적이었다.
남편이 탯줄을 자른 뒤 아기는 캥거루 케어를 위해 내 가슴에 안겼다. 아기가 어리둥절한듯 여기저기를 둘러봤고 나는 눈물을 참으면서 아기한테 말을 걸었다. 엄마 여기있어!
아기가 내 목소리가 들리는지 나를 쳐다봤다. 그리곤 다시 훌쩍이기 시작했다. 응애...응...애..... ㅋㅋㅋㅋㅋ 나도 눈물 날 것 같은데 괜히 듬직한 척하면서 엄마 흉내를 내봤다. "엄마 보니까 눈물이 나?? 울 것 없어. 이제 괜찮아~"
아기는 곧 신생아실로 올라갔고 진통 때부터 도와주던 간호사님이 내게 장난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점심 드시게 해드린다는 약속 지켰습니다~
그렇게 빵빵한 보름이와 첫 대면을 할 수 있었다!
빵빵이 출산일지(2)
5/27
04:00 무통주사 삽관
06:00 무통주사 투여 (자궁문 4cm)
08:00 무통주사 추가 투여 (자궁문 7cm)
11:00 자궁문 9cm
11:51 아기 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