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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ven Lim Mar 06. 2020

"요즘 무슨 책 읽어?"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만화로 느끼는 책 읽기의 즐거움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2018년부터 구성원 몇 명이 함께 독서 나눔 모임을 가지면 매월 해당 도서와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하는 독서클럽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구성원들의 자발적 자기계발과 책 읽는 문화 조성을 위한 것이지요. 여가시간 딱히 할 일 없는 저 같은 경우 책이라도 들춰보려고 2개 모임에 가입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이 바쁘셔서 그런지 독서클럽 참여자들은 전체 구성원의 10% 남짓한 정도입니다.   

   새로운 독서클럽 신청을 받던 2019년 1월, 저는 ‘보지 않는 책은 그림의 떡이다’, ‘독서문화 확산을 일으킬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라는 거창한 사명감을 앞세워 과감히 만화책 읽는 독서클럽, 제 브런치의 제목이기도 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만화책’ 모임 개설을 신청했습니다. 저희 팀장님을 비롯해 뜻을 같이하는 구성원 10여 명도 함께 했지요. 예비 멤버분들과 ‘어떻게 운영하는 게 좋을까?’ 의견을 조율하고 있었는데...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주관부서로부터 “개설 불가” 회신을 받은 것입니다. ‘순순한 열의를 의심하지는 않지만, 이번 개설을 승인하면 향후 불순한 의도의 만화 모임이 우후죽순처럼 생길 게 우려된다’라는 사유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만화 독서클럽 결성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처음 모임 서적으로 계획했던 게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입니다.

   ‘B급 감성 사이로 고고히 흐르는 지적 인문주의의 대향연’이라는 뒷면의 글귀가 딱 들어맞는 개그 만화입니다. 동시에 저는 ‘책과 독서클럽으로의 초대장’ 같은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 독서클럽에 가입한 경찰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요. 출신을 알 수 없는 각 멤버들의 속사정, 독서클럽에 들어오기 위해 애쓰는 노마드(등장인물 중 한명의 닉네임입니다) 등의 사례가 재미있게 펼쳐집니다. 그러면서 어린 학생이나 독서 초보자를 위해 가이드를 하듯, 저자가 생각하는 ‘책을 대하는 자세’를 만화 속에 잘 그려냈습니다. 중간중간마다 책은 어떻게 골라야 할지, 고른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등을 서술한 내용이 꽤 유익합니다. 또 다소 엉성하고 엉뚱하지만, 주인공(?!)인 경찰의 사건 해결로까지 이어지면서 나름 완결적인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고, 독서클럽 멤버들 사이의 배려와 정도 느낄 수 있습니다.

   [뭔가 있는 것처럼 얘기해보자면 ‘독서클럽 배경의 피카레스크식 구성으로 각 에피소드를 통해 작품 속 인물들의 성격과 상호관계를 은유적으로 드러냈으며, 개인화된 사회 속에서 독서 나눔과 협력을 통한 문제해결의 중요성을 해학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랄까요?^^]     


   이 만화가 갖는 가장 큰 장점은 독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가벼운 듯 무게감이 있습니다. 경찰, 킬러, 정신병자, 동물(?) 등을 등장인물로 내세운 것은 웃음을 유발하는 것뿐만 아니라 독서가 누구에게나 열려있음을 이야기해 줍니다. 그러면서도 캐릭터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은 게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순 없는 게 독서라는 걸 알려준다고 할까요?   

  

   한 권의 만화를 출판하기 위해 정말로 깊이 있게 연구했다는 것도 체감하게 됩니다. 380페이지(꽤 많은 듯 하지만 만화란 걸 감안하면 순식간에 읽어내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책 곳곳에서 등장인물들을 통한 고찰과 세계적 작가들의 명문을 만나는 것은 물론, 독서 중독자(등장인물들, 즉 작가)의 독서리스트를 들여다 보면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목만 들었지 제대로 읽지 못한(사실 제목조차 몰랐던) 책들이 수두룩합니다. 책을 앞에 두고 다시금 겸허해 지는 제 자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강유원, <책과 세계>)는 의미심장한 말로 시작해 “요즘 무슨 책 읽어?” 끝맺는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병든 사람이 병맛을 느끼는 만화책임이 분명합니다! 문득 우리 만화 모임을 독서클럽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던 그 시절이 다시 아쉽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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