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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ven Lim Jun 14. 2020

“운명이야 둘이 만난 건.”

<카츠> 권투 만화야 연애 만화야? 역시 아다치 미츠루!

   15세 관람가 영화를 좋아합니다. 전체관람가보다는 자극적이되 대놓고 과하게 보여주지 않는, 관객의 상상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작품에 마음이 끌립니다. 그래서인지 풋풋한 감성이 살아있는 하이틴 로맨스물에 아직도 설레는가 봅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주책입니다!)  이 같은 제 마음에 잘 들어맞는 일본 만화작가가 있으니... 바로 아다치 미츠루입니다. 스포츠 만화, 특히 야구 만화를 잘 그리는 작가로 <터치>, <H2>, <크로스게임> 등으로 유명하죠.


   대학생 시절 그중에서도 <H2>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 대부분 독자는 마찬가지겠죠!) 두 야구천재를 중심으로 갑자원을 향한 고교 야구부원들을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야구와 사랑에 걸친 둘 간의 숙명적 대결을 담백하게 담아냈습니다. 그래서 더 애달팠다고 할까요? 문득 그 만화가 그리워집니다!^^

하지만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만화’를 쓰기로 하면서 집에 소장한 작품을 대상으로 하겠다고 마음먹은 바 있습니다. (물론, 그래놓고 지인과 대화하다 나온 <나인볼 황제 용소야>를 충동적으로 적은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다치 미츠루의 다른 작품 <카츠(KATSU!)>를 다루기로 했습니다.     


   <카츠>는 권투 만화입니다.


   동체 시력이 좋은 평범한 고교생 사토야마 카츠키. 그는 자기와 이름이 같은 미즈타니 카츠키를 좋아합니다. 친구로부터 그녀의 아버지가 웰터급 동양챔피언 출신의 복싱체육관 관장이란 말을 듣고는 관심을 끌고자 회원 등록을 합니다. 권투 재능을 지녔음에도 여자이기에 꿈을 접은 미즈타니는 사토야마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어갑니다.

   사실 사토야마의 아버지도 무패 프로복서 출신의 회사원입니다. 상대의 펀치를 피해 다니며 포인트를 올리는 게 주특기였던 래빗 사카구치지요. 사토야마의 뛰어난 동체 시력은 유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기에 아버지와는 달리 펀치력도 대단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사토야마는 고등학교에서 계속 시합에 출전하며 승리를 쌓아가고, 미즈타니와도 점점 가까워집니다. 그러면서 그녀 곁을 맴돌던 연적들도 차례차례 제거(?)합니다.
하지만, 권투선수 사토야마는 지금까지 몰랐던 출생의 비밀을 만나게 됩니다. 아카마츠 류스케라는 죽은 프로복싱 선수가 친부이고, 래빗 사카구치와의 경기에서 KO패를 당한 이후 병원에서 사망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세계챔피언 감이었던 아카마츠 류스케와 마지막 경기로 배턴을 넘겨주고 은퇴를 하려 했던 래빗 사카구치. 하지만 그의 럭키펀치가 먹혔고, 당시 상대 선수 아이를 배고 있던 여인과 결혼함으로써 류스케의 자식을 키웠던 것입니다. 진실과 대면한 사토야마, 이제 두 아버지의 아들로 링 위에 오릅니다.     


   역시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입니다. 스포츠 만화를 그리지만, 그저 해당 종목 만화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해 ‘청춘 감성 00 만화’라고 이름 붙이는 게 자연스럽단 생각이 이 만화에서도 여지없이 느껴집니다. 주인공들의 성장 스토리 속에 네 남녀의 감정들이 꼬인 실타래처럼 꿈틀거렸던 <H2>보다 단순하고, 결과가 너무 뻔하게 정해져 있기는 합니다. 미즈타니의 마음이 너무 확고하고 경쟁자들이 금방금방 바뀌어서 긴장감이 좀 덜하지만, 만화 컷들 사이로 툭툭 내뱉는 말 속에 마음을 담아내는 작가 특유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다소 아쉽긴 합니다.) 미즈타니 카츠키란 여성 주인공 한 명을 두고 사토야마, 키모토, 신이치 등 여러 남성의 경쟁을 그렸다는 점에서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나 <신사의 품격> 등을 떠올려 생각해보면 재미가 더해지지 않을까 생각 듭니다.     


   주인공 출생 이야기를 다룬 부분은 나름 신선했습니다. 만화마다 주인공 주변 캐릭터들의 연애 심리를 다루는 게 ‘종목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비슷비슷한 이야기’란 생각이 들긴 하거든요. <카츠>에서는 고교 남녀 둘 간의 심리 묘사보다는, 출생의 비밀을 소재로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를 되짚어 풀어낸 게 더 괜찮았다는 느낌입니다. 한편으론 친부의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 데다 지금까지 진실을 감춰온 원수이고, 반대편에선 모친과 자신을 품에 안아 애정으로 길러온 은인. 만감의 애증이 교차할 수 있는 사이지만, 만화를 읽는 우리는 부자 관계가 흔들림 없이 굳건히 유지될 것이란 사실을 (출생의 비밀 이야기가 등장하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한 권 한 권마다 둘의 티키타카 치고받는 대화 속에 담긴 깊은 유대를 익히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카마츠 류스케의 피와 래빗 사카구치의 사랑을 이어받은 아들, 잘 때리고 잘 피하는 진짜 천재 복서는 사토야마 카츠키는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권투를 다룬 만화는 많습니다. 고전이라 불리는 <허리케인 죠>, 100권도 넘게 나왔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더 파이팅>, 한국 권투 만화의 자존심 <아웃복서> 등 링 안의 세계를 현장감 있고 박진감 넘치게 그린 명작들이 하나둘이 아닙니다. 그들에 비하면 <카츠키>에 드러난 사각 링은 상당히 깔끔하고 정갈한 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권투를 제대로 그리지 못했냐?’ 물으면 "아니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처음 글을 시작하면서도 언급했지만, 저는 독자인 제가 참여할 수 있는 작품이 좋습니다. 피 튀기는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엔 제 상상력이 들어갈 틈이 없는 반면, <카츠>는 그 공간을 제게 마련해 줍니다. 미즈타니의 스파링 상대로 사토야마가 링에 올랐던 순간부터 경기를 거듭해 나가는 현장마다 함께 할 수 있었기에 충분히 권투 만화 감상의 즐거움을 누렸던 작품이었습니다.     


   사실 카츠키와 카츠키는 고등학생이 되기 전부터 서로를 좋아했었습니다. 권투체육관에 등록하기 전부터 둘은 맺어질 운명이었지요. 죽은 친부의 존재를 만나게 된 것 역시 운명이었습니다. 어쩌면 너무 비쌌던 <H2>의 대안으로 <카츠>를 만나 이렇게 글을 남기게 된 것도 운명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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