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사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even Lim Mar 20. 2020

네 아내와 통하였느냐?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아내가 죽은 척을 하고 있다> 소통의 언어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재택근무, 다른 말로는 ‘온종일 아내와 함께하는 날’.

이날들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둘뿐인데도 이처럼 쌀과 음식이 빨리 떨어질 수 있단 사실을 깨닫고 패닉에 빠진 걸 빼고는 아직 별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TV 프로그램 시청과 영화감상, 게임, 청소, 대화 등을 공유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분명 매일 출근하던 전보다는 더 여유롭고 가까워진 기분입니다. 제 생각이 그런 거지, 아내도 실제 그리 느낄지는 모르겠습니다(‘식충이 하나가 굴러들어와서 생고생’이라고 생각할지도~^^).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아내가 죽은 척을 하고 있다>는 부부의 소통에 대해 코믹하게 다룬 영화입니다.

첫 결혼생활에 큰 상처를 받고 이혼한 . 그는 치에와 재혼하며 3년이 지난 후 결혼을 지속할지 이혼할지 결정하자고 합니다. 약속한 3년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들어선 준은 입가에 피를 흘리며 죽어있는 치에를 목격합니다. 깜짝 놀라지만 사실 아내의 연출이었죠. 다양한 시체의 모습으로 남편을 맞는 치에의 행동은 이후로 계속됩니다.      

퇴근하는 준을 맞이하는 치에의 시체놀이는 계속됩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준은 걱정이 가득합니다. 도대체 아내가 왜 시체놀이를 계속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만하라고 하니 고양이나 만화캐릭터로 변장을 하지 않나, 사랑한다는 말에 맞장구는 없고 뜬금없이 “달이 아름답다”고만 하고…. ‘혹시 결혼생활이 만족스럽지 않고 이혼하고 싶은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은 점점 커집니다.     


준과 함께 관객들도 궁금해집니다.

‘쟤는 정말 왜 그러는 걸까?’

우리 또한 치에의 삶을 알지 못하고, 그녀의 생각을 들여다보지 못하기에 이해가 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문제의 원인을 알면 해결방법을 찾겠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모르는 게 영화 속 치에에 대해서만인가요? 정작 내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도 잘 모르는 게 현실 아닌가요?

준의 고민 해결사로 나서는 후배 부부, 참 사이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에선 그 부부가 이혼하는 스토리가 이어집니다. 불임, 양가 부모 관계, 바쁜 직장생활 속 대화 단절 등 갈등요소들이 ‘배려’와 ‘인내’만으로는 봉합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둘은 준과 치에보다 자신들을 먼저 살폈어야 했습니다.

이 후배 부부가 이혼하는 모습을 보면 "결혼생활, 참 힘들구나!" 깨닫게 됩니다.

그 후배의 모습 속에 제가 그대로 보입니다. “당신에게는 늘 내가 3순위”란 말은 다른 여러 일에 관심을 쏟으면서 부부 관계에는 소홀한 저에 대한 아내의 날카로운 분석이자, 감출 수 없는 팩트입니다(반성, 또 반성합니다!).     


영화는 치에의 행동 사유에 대해 정확히 얘기해 주진 않습니다. 하지만 일찍 혼자가 된 아버지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숨바꼭질과 여러 분장을 했던 치에의 어릴 적 이야기를 통해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치에의 마음을 은유적이면서도 진실하게 표현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최근 몇 년간 봤던 로코물 중에 가장 제 타입이었던 <로맨스는 별책부록> 명장면을 다시금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남자인 저조차도 심쿵할 정도로 멋진 사랑 고백 장면이었는데요, 이 영화에서는 조금 덜하지만 <로맨스는 별책부록>에 대한 추억을 되살릴 정도로 딱 좋습니다. 드라마나 영화가 아닌, 나쓰메 소세키가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요?      

'사랑합니다'를 '달이 참 아름답네요'라고 표현했던 나쓰메 소세키의 말에 빗대어 단이를 향한 마음을 전했던 은호의 모습. <로맨스는 별책부록>의 잊을 수 없는 명장면입니다.

진심이 통하면 행복한 법입니다... 라며 마치면 훈훈하겠지만, 여전히 우리는 상대방을 모릅니다.

기껏 치에를 따라 자기도 죽은 척했건만, 이는 그녀의 짜증과 화를 돋울 뿐입니다(이래서 ‘내로남불’, ‘我是他非’인가 봅니다!^^).


부부간의 소통, 참 어렵습니다. 그래도 아내와 함께하는 오늘 같은 밤엔 “달이 참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역병,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