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시작된 질병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2월 말 시작한 재택근무도 한 달이 지났습니다. 사회적 혼란 장기화로 마음의 불안이 커집니다. 그런데도 마음에 근심이 덜한 건 이 시기가 끝나면 돌아갈 곳, 내가 소속된 곳이 확실히 있다는 것입니다. 소속감은 구성원에게 편안함을 주기 마련입니다.
이번 주 많은 신작 영화들이 IPTV에 올라왔습니다.
제목이 유달라 눈에 띈 <용길이네 곱창집>은 김상호와 이정은 배우 주연의 작품으로,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재일교포들이 사는 작은 마을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2018년에 개봉했고, 영화 이전에 일본 연극계를 휩쓸었던 레전드 작품이라는데 저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영화 <용길이네 곱창집>. 연극이 원작으로, 재일교포 감독이 만든 재일교포 가족 이야기입니다.
감상 후기부터 이야기하자면 재미있다고는 못하겠습니다.
자기 땅도 아닌 국유지 판자촌에서 지질하게 부대끼며 사는 가족의 모습이 정말 우울합니다. 사이다 같은 인물은 없고 죄다 고구마입니다. 카메라는 곱창집 주변의 어두운 모습만 시종일관 보여줍니다. 가끔 등장하는 다른 풍경이란 게 도망치다 개에게 다리를 물리는 공항, 국수 국물을 뒤엎어 버리는 언덕, 남자를 두고 부인과 불륜녀가 싸우는 카바레, 왕따 당하는 학교, 자살하는 교량 정도입니다. 희망을 이야기하며 끝나지만, 실제 미래는 그다지 희망적이지도 않습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는 밝고 꿈을 주는 영화를 봤으면 좋겠는데, 이 작품은 상극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가슴을 울리는 무엇인가를 느끼게 되고,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 희극들보다 높게 평가받는 것처럼, <용길이네 곱창집> 역시 근래에 상영된 다른 작품들보다 좋게 기억될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말입니다.
오사카 공항 근처의 판자촌에서 사는 용길과 영순 부부. 간장 가게 주인 사토에게 구입한 땅(하지만 사유지가 아니라 국유지랍니다!)에서 곱창집을 운영하며 네 남매를 키우고 있습니다.
둘은 재혼 부부입니다. 첫째와 둘째는 용길이 전처의 여식, 셋째는 결혼 전 영순이 낳아 데려온 딸입니다. 넷째인 토키오만이 용길과 영순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지요. 토키오의 말처럼 “조금씩 피로 이어져 있으면서 조금씩 피로 이어져 있지 않은” 가족입니다.
이들 가족과 곱창집을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재일교포들입니다. 강제징용 등으로 인해 일본에 왔다가 눌러살게 된 이들입니다.
그런데 사는 모습이 참 '개판'입니다.
용길의 첫째 딸 시즈카. 전쟁에서 팔을 잃은 용길의 상처가 되물림되듯, 공항에서 개에 물려 한쪽 다리가 불구가 됩니다.
공항 감시견에게 다리를 물려 절게 된 첫째 딸 시즈카. 장애인이라는 열등감 때문인지 좋아하는 남자(테츠오, 공항 사건 동참)의 청혼을 거절합니다. 그 남자는 시즈카의 동생 리카와 결혼해 매제가 되는데, 눈은 계속 시즈카를 향합니다. 리카는 다른 한국 남성과 눈이 맞고, 급기야 테츠오는 시즈카의 약혼 파티(곱창집에서의 가족 식사)에서 “나와 함께 북으로 가자”며 시즈카에게 사랑고백을 합니다. 셋째인 미카는 유부남과 사귀고요, 막내 토키오는 집단 따돌림에 괴로워하다 자살하고 맙니다.
이 정도면 가정 파탄이고 다시는 서로 얼굴 보지 않는 게 정상일 텐데, 이들은 용길이네 곱창집에서 함께 합니다. 세 자매는 물론테츠오, 리카의 남자친구, 게다가 테츠오에게 약혼녀를 빼앗긴(?) 남성까지도 말입니다. 거기 말고는 갈 곳 없는 사람들입니다.
“고향은 가까워, 하지만 멀어. 너무나 멀어.”
용길의 말은 재일교포들의 현실을 이야기해 줍니다. 조금은 일본인이고 조금은 한국인이지만,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닙니다. 돌연변이처럼 특이한 게 딱히 가치 없는 존재입니다. 자기 뜻으로 재일교포가 된 게 아니고, 전쟁에 동원되어 한쪽 팔까지 잃었건만 제대로 봐주는 이는 없습니다.
제주 4.3 사건으로 가족과 고향마을마저 사라져 버린 용길, 살기 위해 딸을 데리고 일본으로 도망친 영순은 어떻게 해서든 일본에서 버티려 하지만... 결국, 그들에게 돌아오는 건 아들의 죽음과 심신의 피폐함입니다.
사연 많고 한 많은 삶 속 '또 일하고 있했던' 용길. 오갈 데 없지만 끝까지 버텨내려는 재일교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려, 아내와 자식을 위해 일하고 일하다 깨닫고 보니 이 나이일세.”
용길이 씁쓸한 인생사를 얘기하며 계속해서 반복한 “하타라이타 하타라이타”가 지워지지 않네요. 영화에서 다룬 1969년부터 1971년은 일본이나 우리나라 모두 경제발전 가속화가 이뤄진 시기였지만, 재일교포들에게는 여전히 겨울이었나 봅니다.
최인훈 소설 <광장>의 저잣거리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남도 북도 제3국도 갈 수 없어 바다로 몸을 내던졌던 주인공의 모습이 <용길이네 곱창집> 동네 사람들에게 비칩니다. 그래도 곱창집은 이들에게 나름 숨 쉴 수 있는 밀실이자, 서로 함께할 수 있는 광장의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지지리 궁상으로 부대끼면서도 고난을 견뎌내게 하니까요(어린 토키오의 죽음은 많이 안타깝습니다!).
용길. 영순과 헤어짐을 순간을 맞은 세딸 부부. 이제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화의 끝부분인 1971년 봄. 사연 많은 용길이네 세 딸의 문제는 얼추 정리되고, 판자촌 철거와 함께 가족들은 헤어집니다. 첫째네는 북한으로, 둘째네는 남한으로, 셋째네는 일본의 시댁으로 가고, 용길과 영순도 새 거처로 떠나게 되죠. 벚꽃을 보며 희망을 꿈꾸지만... 가난이 기다리는 북한, 한국말 못하는 둘째를 반길 리 없는 남한, 후처로 시집살이를 해야 하는 일본 등 이들의 미래는 여전히 험난해 보입니다.
“떨어져 있어도 우리 가족은 이어져 있어. 그걸 잊으면 안 된다.”
영순의 말이 이들에게 삶의 이유가 될까요? 문득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이 떠오릅니다.
가족, 참 많은 것을 포용하는 집입니다.
건물이 철거된다고 마음마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은 여전히 이어진 관계이고, 집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