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이 하루 지난 토요일, 할머니 생신을 맞아 할머니 자녀들, 그리고 그 자녀의 자녀들이 의정부 한 집에 모였습니다. 아흔 지나선 할머니 연세가 몇인지 꼽아보지도 않았습니다. “이제 저도 쉰이에요”라는 손주 며느리에, 입대한 증손자가 있을 정도로 오랜 인생을 이어오고 계십니다. 이제는 세월이 가져온 무게때문에 침상에 누워계신 시간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자식들을 알아보며 살아계신다는 게 제 아버지를 비롯한 오남매에겐 큰 기쁨인 것 같습니다.
1년에 서너 차례 할머니 자손들이 함께하는 날은 늘 시끌벅적합니다. 큰고모부터 작은아버지까지 다섯 임씨 남매들이 원래엄청 목소리 크고 수다스러웠던 데다, 평균 연령 70세가 넘다 보니 귀까지 어두워진 탓입니다. 주변에선 시끄럽겠지만 이분들에겐 조용한 대화겠지요. 어릴 때부터 수십 년 동안 계속된 다섯 남매의 추억을 한두 시간 안에 줄여 이야기하려니 ‘압축률이 높아진 만큼 목소리의 세기도 더해질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 들기도 합니다.
고모와 삼촌 네 분에 대한 작은 기억들을 돌이켜봅니다.
부모님은 허락지 않던 고가의 전자오락기를 사주신 분이 큰고모입니다. 초등학생 시절 최고작인 우뢰매 영화가 나올 때마다 데려가서 보여주기도 하셨지요. 덕분에 수원 촌놈이 세종문화회관에도 가봤습니다. 제가 미디어에 눈을 뜬 건 큰고모의 공이 아주 큽니다.^^
대학원 수업을 듣는 날이면 큰아버지 댁에서 숙박했습니다. 정성으로 챙겨주신 잠자리와 아침밥 덕분에 수월하게 과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어릴 적 작은고모의 두 자녀인 사촌 동생들과는 아주 친했습니다.저희 남매는 명절이나 방학 때마다 장위동 작은고모 집에서 살다시피 했지요. 고모는 저희를 자식처럼 대하며, 특히 정말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해주시고 사주셨습니다.
기관사인 작은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4학년 때 갔던 제천, 제게 가장 인상에 남는 여행지입니다.
분명 지금 떠오르지 않는 더 대단하고 의미 있는 일들도 많았을 텐데…. 이분들이 제 삶의 중요한 순간 함께하며 도움을 주고 영향을 끼쳐온 것은 분명합니다. 조카인 제게도 이런데, 오남매 서로 간에 끼친 영향 관계는 어떨까요?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저녁식사 후 다과와 함께 나누던 이야기가 끝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잠시 추억 속 시절에 살던 오남매도 다시 고령의 노인들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마음으로 어머니와 형제들을 그리며 추석을 기다리실 테죠.
가족!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애틋하고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부디 할머니와, 그 자녀인 다섯 남매 모두 하루하루 조금씩 더 건강과 행복이 더해지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런 대규모 모임에는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는 손길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번 가족 모임을 위해 식사 자리를 마련해 수많은 음식을 준비하고 물김치와 겉절이 등으로 귀갓길 손길을 따뜻하게 채워준, 어쩌면 한없이 쌓인 설거짓거리에 투덜대며 분노의 수세미질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작은고모 식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