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아마도 꽤 오랫동안) 주류에서 벗어나 있던 시가 최근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명색이 고교 문학 동아리 출신이어서 그런지 시집 읽는 게 낯설진 않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감정 잃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꾸준히 시를 접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작품마다 일상 속 사랑의 의미를 담아내고, 특히 아내를 향한 애틋함을 느낄 수 있는 나태주 시인을 무척 좋아합니다. 철학적 메시지로 삶을 이야기하는 류시화의 시도 매력적이고요. 요즘에는 박준 시인의 작품이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시를 많이 읽진 못하지만, 그래도 눈과 마음에서 아주 멀리하지는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한 부부가 “감명 깊게 읽었다”며 책 한 권을 주셨습니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로 유명한 정재찬 교수가 저술한 시 강의 서적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입니다.
책은 인생의 여정 가운데 거치는 관문을 ▲밥벌이 ▲돌봄 ▲건강 ▲배움 ▲사랑 ▲관계 ▲소유 등 7개로 나누고, 각각 두 개 주제로 세분화해 정재찬 교수가 생각하는 인생론을 풀어냈습니다. 시 강의답게 주제에 어울리는 여러 시 작품들을 소개하고 해석을 달았고요. 시뿐만이 아니라 가곡과 가요, 소설, 동화, 수필 등도 곁들여 독자의 감성을 깨우고, 이야기 주제에 더욱 몰입하도록 했습니다. ‘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네 번의 시 강의’란 부제의 의미를 살리려는 마음이 전해집니다.
정재찬 교수가 쓴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강연업체에서 강의물 제작과 출판을 병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네 인생을 빗댄 시 강의서라고 하는 게 딱 적당하지만, 제겐 그저 한 권의 시집처럼 느껴졌습니다. 정재찬의 페르소나 중 하나가 ‘인생’을 주제로 적은 액자식 구성의 산문시이자 연시라고 할까요? 은유와 상징의 유리창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시처럼, 인생이라는 거대 유기체를 시 강의서 모양의 산문시집에 풀어놓은 것이죠. 이를 통해 ‘나’라는 개인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하려고 한 듯합니다. 덕분에 저는 시인의 인도 속에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김종삼)', '아버지의 꼬리(안상학)', '식사법(김경미)', '아름다운 비명(박선희)', '공부(김사인)', '더딘 슬픔(황동규)' 등의 쉼터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삶과 죽음, 부모님과 아내, 학창시절과 회사생활 등 경험과 추억을 돌아보고, 시와 연관된 삶의 가치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회사원이라 그런지 ‘밥벌이’ 관련 부분이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비정규직으로 눈칫밥을 먹는 이십 대도, 퇴근길 삼겹살에 소주 한잔마저 없다면 의미를 찾지 못하는 직장인도, 여전히 중과부적으로 허덕이는 사오십 대도 밥벌이가 힘들기는 매한가지인 현실이 시구와 함께 가슴을 파고듭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미생인가 봅니다.
하지만 밥벌이는 숭고하고, 또 재미있기도 합니다. 정직한 노동의 본질은 창조의 기쁨과 상통하는 법이지요. 성실성으로 ‘일을 즐거워하는’ 형용사적 상태일 때 행복합니다. 밥벌이의 꿈이 특정 직책 등의 명사가 되거나, 보상을 향한다면 결코 유쾌하거나 행복할 수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참 일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물론, 문화가 있는 삶도 참 좋아합니다). 발생한 문제에 몰입하고, 동료들과 함께 해결하는 데서 희열과 행복을 느껴왔습니다. 하지만 간사한 사람이라 그런지 결과적 보상을 좇기도 합니다. 그 순간 일은 소명으로 즐거워서 한 게 아니라, 아내와 가정을 희생시키면서 해왔던 단순한 밥벌이로 변합니다. 희생의 대가로 반드시 더 높은 자리와 나은 평가·급여가 주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화가 치밀어오르죠.
목적함수가 그렇게 중요합니다. 제 시선이 항상 마음껏 뜻을 펼칠 수 있는 업무환경과, 함께 일하는 좋은 선·후배들을 향하기 원합니다.
중년기가 공부하기에 딱 좋은 때란 부분도 되새겨 봅니다. (아직 젊다고 생각하고 아이도 없기에 여전히 ‘중년’이란 말이 낯설지만, 이제는 40대 중반이라는 현실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할 듯합니다.) 고차원적인 인지능력은 중년 이후가 적당하다네요. 또 성실성, 자신감, 배려, 평정심도 발달해, 적절한 감정 통제력을 갖고 공부하기에 무척 좋은 시기라고 합니다. 배우고 익히는 데에 더욱 힘써야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마추어’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깁니다. 프로보다 못한, 실력이 미숙한 자란 뜻이 아닙니다. 아마추어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은 사랑하는 자, 곧 애호가라고 합니다. 일이든 공부든 취미든 아마추어의 자세로 즐겨볼 참입니다.
시로 만나는 인생론, 저자의 말처럼 '꽤' 좋았습니다!
시는 사람에게 힘을 줍니다. 가끔은 그저 바라봐주기만 하다가, 어쩔 때는 돌과 나무로 변해 말을 걸고, 때론 감춰뒀던 눈물을 터뜨리게 하면서 위로를 건넵니다. 서정시나 시조, 노랫말, 동화와 소설 등 여러 형태로 손을 내미는 게 마음 속에서 함께하며 조언을 건네는 스승과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살아가게 합니다. 갑자기 어제 본 영화 <해피해피 레스토랑> 속 고민 많은 주인공이 시처럼 바람처럼 제 가슴에 이야기를 걸어옵니다.
“남은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살아가는 것, 그것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차피 살아야 한다면 마음껏 고민하고 멀리 돌고 돌아서 우리만의 인생을 살아보는 건 어떨까요?”
은유로 다가오는 시는 변신의 귀재입니다. 심신이 지친 어느날, 영화의 형태로도 제게 말을 건넵니다.
독서를 마친 후 언젠가 저도 이와 같은 ‘인생론’을 담은 책을 쓰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생의 여정 가운데 만나는 유사한 길목에서 사람은 저마다 다른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관해 서술하는 방법과 콘텐츠도 차이가 있습니다. 정재찬 교수는 시 작품들을 가져와 자신의 인생론을 정리했습니다. 목사님들의 경우 성경 말씀으로 길목을 헤쳐갑니다. 철학가는 철학 사상으로, 경영자들은 경영이론과 경험들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제 인생론을 풀어갈 저만의 콘텐츠는 무엇이 있을까요? 수차례 위기상황을 극복해온 회사의 홍보맨, 마흔 넘도록 철들지 못하고 동갑내기 아내와 티격태격하며 만들어내는 케미가 저만의 특별함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제 삶의 언어를 찾아야겠습니다.
모든 꽃길은 그 밑에 흙을 깔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흙길이 아니면 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흙길이 곧 꽃길입니다. (28p)
우리의 꿈은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이어야 할지 모릅니다. (51p)
일이냐 삶이냐, 문제는 그 둘 간의 조화와 균형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 인생을 일과 삶의 대립으로 간주하는 데 있습니다. 모든 것은 인생을 잘 살기 위한 것, 어차피 일도 인생이고 삶도 인생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59p)
자기 자신은 돌아보지 않을 채 그저 자기 인생길을 외면하며 가지 않은 길을 부러워하거나 투덜대기만 하는 이에게 인생길은 고분고분해지지 않습니다. 뜻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는 건 길 탓이 아니라 어쩌면 자신을 잘 알지 못해 스스로 잘못 세운 뜻 탓일지 모릅니다. (194p)
이기적인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관계니까요. 자유롭고 아름다운 구속이니까요. 오랜 시간 서로 길들이고 인내하고 생각하며 책임져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그대로 인해, 그대를 위해, 내 스스로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게 하는 거니까요. (223p)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해보라는 의미에서 볼 때 카르페디엠은 메멘토모리와 상통하는 말입니다. 카르페디엠과 메멘토모리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교훈인 것입니다. (33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