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원수를 품다.
원소가 사신을 통해 편지를 보내왔다. 자기한테 항복하면 잘해주겠단다. 차라리 잘됐다. 원소라면 이미 천하를 호령한다고 할 만큼 막강한 세력을 갖췄으니 내가 가면 적당한 땅덩어리 하나 떼 줄 것이다. 뭐. 그 정도면 나쁘지 않다. 그런데 가후가 가타부타 말을 않는다. 설마 딴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얼른 알겠다고 해서 사신을 돌려보내면 좋겠구만.
원소가 장수를 회유하는 서찰을 보냈다는 건 의미가 있다. 쓸모가 있다는 반증이다. 좋다. 그런데, 그럼 나는 어떻게 되지? 나도 원소에게 쓸모가 있나? 물론 없지는 않겠지만, 그게 최선인가?
만약, 조조에게 항복한다면? 물론 조조는 지난번 완성전투를 맘에 두고 있을 것이다. 그땐 내가 좀 심하긴 했다. 장남과 조카, 그리고 그가 가장 아끼는 전위까지 모두 죽였으니. 하지만 그 덕분에 내 실력을 확실히 알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나를 쓰려고 할 것이다.
어차피 장수는 내가 하자는 대로 할 것이고. 그렇다면 이 서찰은 필요 없다.
찌-이익.
가후가 원소가 보낸 서찰을 사신이 보는 앞에서 찢어버렸다. 어쩌자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그의 지략이야 의심치 않지만, 이건 정말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원소에게 가면 편할 것을. 왜?
가후가 장수와 함께 항복하겠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일단 항복을 받아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들과 조카, 그리고 전위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을 생각한다면 항복을 받아주기는커녕 당장 그 목을 베어야겠지만, 사실 그냥 죽이기에는 가후의 실력이 아깝다. 내가 당해봐서 안다. 그의 지략은 훌륭했다.
게다가 내가 원수의 항복을 받아줬다는 소문이 중원에 돌게 되면, 많은 영웅들이 나를 찾아오지 않겠는가.
아들을 죽인 원수도 품는 인물.
그 정도면 충분하다.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것도 사실이지만, 전략적으로 항복을 수용하는 게 맞다.
저자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아직 지난날 불에 덴 상처가 다 낫지도 않았다. 그날 얼마나 뜨거웠던지.
당장에 저 목을 베어버려도 시원치 않은데. 옆에 동료 장수들도 눈에 불을 켜고 바라보는 게 내 마음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당연하겠지. 그날의 그 모욕과 고통을 어떻게 잊을 수 있나. 저 자를 보니 다시 전위 장군과 조앙, 조안민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등지면 안 되는 인물들이었는데.
그런데 저자는 도대체 왜 여기에 온 건가?
역시 오지 말았어야 한다. 저기 저자들의 살기가 피부로 느껴진다. 당연하겠지. 내가 저들의 동료를 죽이고, 다치게 했으니까. 근데 이제 와서 항복하겠다고 하니 나 같아도 화가 치밀어 오를 게다. 그러게 편하게 원소에게 항복했으면 좋았을 걸,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내가 강력하게 반대했어야 했는데. 이제 어쩔 건가?
막상 얼굴을 보니 정말 죽이고 싶다.
“어서 오시오. 기다리고 있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