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윤, 한사를 기록할 붓을 꺾다.
드디어 역적 동탁을 처단했다. 그자로 인해 얼마나 오랜 세월 나라가 흔들렸는가.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나라의 기반을 공고히 다져나가야 한다. 우리의 역사는 지금부터 다시 써 내려간다.
사람들은 역적 동탁이 죽었다고 환호한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역적이 아니라, 하나뿐인 지기(知己)였다. 그는 방구석에 숨어있던 나를 세상에 나오게 했다. 사흘 만에 세 번이나 내 관직을 올려주었다. 그렇게까지 나를 알아봐 준 사람은 세상에 없었다. 그런 그가 죽었다. 그런데 내가 모른척한다면 그게 사람인가. 다른 사람들은 욕할지라도 나는 욕할 수 없다. 동탁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게 사람의 도리이다.
왕윤의 체포 명령이 떨어졌다. 아니,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역적을 위해 곡을 할 생각을 하지. 설마 그게 역적 행위라는 걸 모르는 걸까? 누군지 정말 궁금하다.
낯이 익다. 궁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확실히 기억나진 않는다. 근데 왜 동탁을 위해 울고 있지? 그것도 대중들 앞에서? 이해할 수 없다. 아무튼 나는 내 일을 할 뿐이다.
아니, 저 자는 한사(漢史)를 집필하고 있는 채옹이 아닌가. 글재주가 좋다고는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 왜 동탁을 위해 곡을 한 거지? 역사를 쓰는 사람이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를 리는 없고. 알고도 그랬다면 당연히 의도가 있다는 건데.
"얼굴에 죄인의 낙인을 찍고 발꿈치를 잘라내도 좋습니다. 다만, 지금 쓰고 있는 한사(漢史)만이라도 마무리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이제 와서 벌은 받을 테니 역사는 계속 기록하게 해 달라고?
당신을 살려두면, 당신처럼 동탁을 추모하는 자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건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역사를 쓰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당신을 살려둘 경우, 당신이 나를 역사에 어떻게 기록할지도 의심스럽다. 역적을 몰아낸 영웅으로 기록할지, 아니면 당신이 좋아하는 동탁을 죽인 역적으로 기록할지. 그러니 당신을 살려둘 수 없다. 지금은 본보기가 필요하다.
“베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