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 되고 있어.
춥다. 기온이 부쩍 내려갔다. 밤공기는 물론, 한낮에도 가끔 으슬으슬하다. 가을이 왔나 싶더니 겨울인가 보다. 계절이 이토록 빠르게 바뀌는 건 올해도 정신없이 살았다는 증거일까, 잠시 생각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각이 많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누구나 그럴 거라고 스스로를 수긍해본다. 사람이 사는 집은 먼지 내릴 겨를이 없다는 말처럼 어째서인지 나는 자꾸 집안의 먼지를 턴다. 오랜 휴식에 쌓여가는 것들을 털어내려는 행위의 일종이다. 미세먼지니 뭐니 해서 미디어는 떠들어대지만 정작 내 마음이 둔탁해지는 것을 나는 견디지 못한다.
집에 있으면 시간이 아주 많다. 하루나 이틀쯤 쉬면 시간이 '그냥' 많은데, 한동안 내리 쉬면 그것도 '아주' 많게 된다. 같은 하루라도 시간의 결은 이렇게 갈린다. 나는 그 많은 시간으로 자신을 돌봤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며 설거지를 했다. 요리를 하고 밥을 지으며 책을 읽었다. 내가 집안일에 집중했던 건 온전히 할 일이 없는 탓이었지만 시간의 쓰임새를 결정짓지 못한 탓이기도 했다. 계획에 없던 휴식은 시간 자체를 다소 지루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지 않았지만 애써 마주할 용기도 샘솟지 않았다. 의지 따위가 부족했다고 하자.
나는 한동안 방황했다. 살면서 방황하지 않은 적이 한 번이라도 있던가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그 또한 대답이 궁색하지만 일관성 있는 삶의 증표가 되듯 이번에도 홀로 표류하여, 고백한다. 어릴 적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남들처럼'이 잘 안 돼서, 대중의 범주에 쉽게 편승하지 못해서 고생을 사서 한다. 나는 이 유별남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고민했다. 네댓 살 때부터 누나를 따라 읽었던 전래동화나 과학만화, 위인전, 문학전집 따위가 영향을 끼쳤을까. 만화책을 수십 권씩 빌려봐서 그럴까. 습관적으로 책을 읽은 유년기치곤 구슬도 썩 잘 치고 비석 치기도 잘 했다. 메뚜기를 잘 못 잡긴 했지만 이는 친구가 물려서 피 나는 장면을 목격한 탓이다. 나는 썩 유별난 과거가 없는데 내 선택은 늘 유별났다.
"더울 때 시원한 데서 일하고, 추울 때 따뜻한 데서 일하는 그런 일 하면 좋지 않겠냐"는 어머니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정말 그렇게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특히 사진기자로 일할 때 허리와 어깨 통증이 극심해져 나도 앉아서 일하면 좋겠다고 한때나마 생각했다. 하지만 근무환경이 공기관에 준한다는 모 협회에서 일할 때는 내 글의 쓰임을 고민했고, 모 전문지에 입사했을 땐 그곳에서 내 미래를 엿봤다. 한 외국계 금융업에 종사하던 누나는 어느 날 문득 상사에게서 자신의 미래가 보여 퇴사를 결정했다고 한다. 고액 연봉이나 남들이 원하는 직장도 결국 자신의 바람에 우선하지 못한다. 고민은 그런 데서 싹트는 법이다.
다시 사진기자다. 돌고 돌아 사진기자다. 역시 사진기자다. 비전공에 사진기자 지망도 아니었던 내가 사진기자를 시작한 게 '어긋난 단추'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왜 사진을 배웠을까. 어느 순간에 내 우유부단함이 이렇게 자랐을까. 그러던 생각이 자라 뿌리를 내렸다. 사진기자로 처음 일하게 됐을 때 '내가?' 했는데 이제는 '그래, 사진 하자'란 마음이 앞선다. 가지고 있던 카메라를 팔고 글을 쓰겠다며 다짐을 해보고, 이 모든 게 어떤 반감 같은 건 아니었나 생각도 해봤다. 고민, 누구에게 말하기 마뜩잖은, 직업적 특성상 공감대 찾기도 어려운, 혼자 곱씹을 수밖에 없는, 누군가에겐 배부른 그런 생각.
사진 찍을 수 있게 됐다. 감사한 일이다. 오랜 고민 끝에 다다랐다. 젠체하거나 뺄 생각도 없다. 일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달까. 사실 조금 즐겁기까지 하다. 가끔 SNS로 접하는 사람들을 통해 그런 걸 느낀다. 자기 일을 참 성의 있게 한다는 뭐 그런. 자신이 하는 일에 애정을 쏟는 사람들이 발하는 묘한 아우라가 있다. 혹자는 '매력'이라고도 하더라만. 그런 게 속에서 꾸물거린다. 원하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인도한 자신에 대한 것인지, 일 자체에 대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처음 사진기자가 됐을 때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사진 관련 서적을 7권 구입했다. 그때의 열정인지 애정인지 모를 달콤함이 다시금 맴돈다. 괜스레 참 좋은 햇살이다 싶고, 저녁엔 좀 걸어볼까도 싶고.
열심히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