샀다. 벼르던 리코GR3다. 한때 가성비를 따져 리코GR(1)을 20만 원 선에 구하려 했다. ‘어차피 찍는 사람 문제’라 생각했다. 마음가짐 그런 거. 인터넷을 찾아봐도 GR로 찍은 걸출한 사진이 많았다. 나도 그럴 수 있을 거라 자위했다. 그리고 매물을 뒤졌다. 매물 자체가 많지 않았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오늘은 리코GR3 5차 물량 판매 날이다. 9시에 풀린다는 썰이 있어 8시 58분부터 홈페이지에서 대기했다. 9시 정각 새로고침을 눌렀더니 로딩 시간이 길었다. 마침내 뜬 화면에는 한 달간 변함없던 ‘품절’ 란이 ‘구매하기’로 변해있었다. 눌렀다. 가입하란다. 다급한 마음에 ‘뒤로 가기’를 눌렀더니 다시 품절이다. 거지도 이런 거지 같은 일이 없다고 분개했다.
20분 정도 더 홈페이지에 죽쳤다. 취소 물량을 기다리며 가입도 해뒀다. 중간에 잠깐 구입하기 버튼이 살아났다. 눌렀는데 창 바뀌는 도중에 또 품절됐다. 내가 내 돈 120만 원을 이렇게 어렵게 쓸 수 있나 싶었다. 맞다. GR3는 자그마치 120만 원에 달한다. 돈 쓰기가 이렇게 힘들다.
포기하고 일하다가 카페에서 그런 글을 봤다. 티몬에 물량이 남았단다. ‘웬 티몬?’ 하다가 일단 들어갔다. 홈페이지보다 3만 원가량 비쌌지만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재고가 7개 남은 상황이라 마음이 급했다. ‘매진 임박’의 효과는 더욱 뛰어났다. 할부로 질러놓고 카메라를 기다리는 중이다. 액정보호필름과 필터도 주문했다. 오늘 하루 125만 원을 소비했다.
할부니까 1/N이라며 다시 위로한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 알차게 쓰면 0원일 리 없겠지. 경험에 비춰볼 때 욕망을 짓누르다 터지면 더 크게 분화한다. 그나마 GR3도 DSLR 사려다가 타협한 거다. 사실 그냥 GR3가 갖고 싶었던 거지만 어쨌든 구입 실패는 후자로 나아갈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덜컥 120만 원을 결제하기가 두려웠지만 지르고 말았다.
인터넷에선 아직도 못 산 사람들이 즐비하다. 구입하셨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저 대열에 낄 뻔했다. 어제 임대주택 신청한 게 떨어져서 낙담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GR3는 얻어 타고 간다. 나는 해냈음에도 여전히 구입사는 물량을 찔끔찔끔 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게 뭐라고’라는 생각이 80% 정도, 나머지는 ‘으히히헤헤헤ㅏ헤!@#$’가 담당 중이다.
내가 GR3를 선택한 건 활용도가 높아서다. 카메라가 크면 의도적으로 손을 대지 않는 이상 사용빈도가 떨어진다. GR3는 필통이나 폰 챙기듯 가지고 나갈 수 있다. 찍을 때 사진 찍는다는 부담도 덜하다. DSLR은 들고 있는 것만으로 상대가 의식하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양질의 사진을 어느 정도 보장하면서도 늘 소지할 수 있는 GR3는 꽤나 좋은 선택이다.
GR3는 맥북프로 레티나를 구입한 이후 가장 큰 지출 가운데 하나다. 맥북프로 레티나(15년형, 15인치)는 비싼 만큼 값어치를 했다. 약 3년이 다 돼 가지만 여전히 ‘잘 샀네’ 목록에서 지울 수 없다. 앞으로도 몇 년을 쓸 수 있을 듯하다. ‘돈 값’을 한다고 표현하면 조금 그러려나? 어쨌든 GR3도 잘 샀네 리스트에 넣어둘 수 있도록 야무지게 쓸 생각이다.
종종 이곳에 그 흔적을 남기며 내 선택을 합리화하려 한다.
칭찬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