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15분 일찍 나왔다. 일찍 출근하겠다고 상사에게 말해둔 탓이다. 여유롭게 걷고, 시간 맞춰 버스를 탔다. 그런데 버스가 돌았다. 평소 가던 길(연세로 명물거리)을 막아둬서 직행하는 길을 우회한 거다. 여기서 7-8분 까먹었다.
신촌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지하철이 안 온다. 지하철 전광판의 아이콘도 멈춰있다. 플랫폼에 사람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홍대입구역 신호 지연으로 앞차와 간격이 많이 벌어져 죄송하단다. 그래서 열차가 붐비게 됐다고. 랩탑이 든 가방과 카메라 가방을 들고 있는 나는 고역이다. 안타깝게도 지하철역에서 또 시간을 5-6분 까먹었다.
그 결과 평소와 같은 시간에, 뛰어서 출근하게 생겼다. 억울하다. 노력이 결과를 보장하면 좋겠지만 상황이 항상 그렇게 흘러가진 않는다. 출근길 몇 분 일찍 나오는 일처럼 노력이라 부르기 어정쩡한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마음 놓고 내달려 목적을 이루려는 건 어떤 면에서 순진한 바람이다.
이 같은 노력의 대부분은 어린 시절과 함께 떠나가버린다는 사실과, 일부 순수함을 간직한 이들만이 성장과정에 얻을 수 있는 욕망과 버무려 그 습성을 이어가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니 노력의 밀도와 성취의 빈도를 두고 실천보다 셈법이 우선하는 걸 욕할 건 없다. 우리는 그렇게 경험하며 살아오지 않았나.
이 글을 적는 지금 원래대로라면 15분 전에 지났어야 할 곳을 지나고 있다. 이왕 늦어버린 거 무슨 소용이냐 싶지만 미련은 특정인을 우대하지 않는 법. 이 와중에 노약자석에 앉으려는 할주머니는 그 앞에 선 내 골반 아래쪽을 한 손으로 잡고 밀친다. 바지 주머니가 달린 그 앞쪽에 손을 댄다. 30대의 건장한 청년도 이러면 놀란단 말이지.
"하지 마세요" 이 한 마디를 못해 몸을 배배 꼬았다. 사실 어떻게 대처하는 게 현명한지 판단이 안 섰고, 할주머니를 상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어쨌든 오늘도 무사히 출근길을 돌파해 회사에 도착했는데 그것만으로 감사한 아침이 될 수 있도록 긍정회로를 돌려본다. 오늘은 금요일이잖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