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08 욕망의지분

by OIM

과소비를 자제하기 위해 과소비를 하는 아이러니. 장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할인'이나 'sale' 딱지에 정신을 못 차린다. 브레이크 없는 경운기처럼 직진하고 본다. 집에 올 때마다 영수증 조각을 적장의 수급이나 되는 것처럼 거머쥐고서 쓰레기통에 그대로 꽂아 넣는다. 목록을 보면 마음이 두 번 아플까 봐 그렇다. 지난 주말도 마찬가지였다.


닭가슴살 사러 이마트에 갔다. '한스바커'라고 훈제 닭가슴살을 이마트에서 판다. 정확히 말하면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파는 제품이다. 수색점에 갔더니 이게 없더라. 매장을 한 바퀴 돌았는데 이것만 없더라. '마니커'도 있고 '하림'도 있는데 한스바커는 왜... 물건을 찾는 동안 함께 먹을 채소(상추, 방울토마토)와 바나나, 달걀 등을 담았다. 최근 불어난 뱃살에 당황해 건강식품 위주로 지방을 쳐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트를 돌면서 닭강정도 방어하고 피자도 방어했다. 이날은 닭가슴살을 위한 출정이었으니까. 근데 없어. 내가 찾는 그것만 딱 없다. 원래 없었던 건지 떨어진 건지 잘 모르겠으나 모든 세팅이 끝났는데 메인 요리만 없으니까 마음이 급 허해졌다. 원래 피자를 사려던 게 아닌데 허한 마음을 달래려고 쉬림프 피자 패밀리 사이즈를 주문해 카트에 실었다. 밤 10시였지만 나는 원래 작은 사이즈 피자를 자의로 시켜본 적이 없다. 명실공히 피자빠다. 피자만 먹으면 헛헛하니까 콜라도 하나 샀다. 2개짜리를 사려했으나 마트 온 취지를 생각해 1개에서 그쳤다. 피자를 싣고 계산대로 가다 보니 오늘이 마지막 만찬이란 데 생각이 미쳤고, 가는 길에 있던 수박도 한 덩이 담았다. 여름 가기 전에 제철 수박 한 번 먹어보자는 심산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수박도 빠수준이다. 하루에 한 통 이상도 먹는다. 카드를 내밀고 계산을 마치는데 폰에 45,000원이 찍혔다. 닭가슴살도 못 샀는데, 1인 가구 다이어트 식단 구성에 근 5만 원 돈이라니. 내 이성은 식욕 앞에서 모래성처럼 무너졌고 끈 풀린 자제력에 눈이 돌아가 그날 저녁 피자 반 판에 칙촉 2개를 먹고 잤다. 콜라도 두 잔 마셨다. 체형은 의외로 정직하달까.


*수박빠임에도 불구하고 특대형(10kg 이상) 말고 7~8kg형을 샀는데 냉장고에 안 들어간다. 구획을 나눠놓은 칸막이에 막혀 수박이 힘겨워한다. 너도나도 살 안 빼곤 못 쓰겠구나 싶어 괜스레 마음에 불똥이 튀었다. 수박은 그냥 내 방 한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2주 전 동네 마트에서 구입했던 파프리카가 냉장고 안쪽에 살아있다. 이런데도 또 건강식을 하겠다고 장을 봤구나 싶어 마음이 무거웠다. 마음에서 돌을 덜어내고자 수분이 풍부한 오이 3개를 깎아먹었다. 이마저 2주 전에 샀던, 건강을 위해 먹겠다고 다짐한 내 욕심의 파편이다.


***인터넷으로 닭가슴살을 구입했다. 몸집을 키운 뒤 살을 뺄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체형이 커지지 않는다. 나는 벌크업을 해서 줄리엔 강처럼 큰 골격을 목표로 하려 했는데 이승윤처럼 다소 햄처럼 변해가는 게 아니겠나. "인생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기택'의 말(영화 <기생충> 중)처럼 그냥 원래의 내 몸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에서 카드를 긁었다. 이제 내 냉장고에는 무가당 두유 한 보따리와 3색 파프리카, 키위 꾸러미, 유부피, 유통기한 지난 우유 2팩, 방울토마토, 칙촉 따위가 가득 들었다. 아, 상추도. 닭가슴살이 오면 뭔가 건강한 과식을 하게 될 것만 같은 구성이랄까. 싱크대 위 바나나도 있으니 참 싸질러 놓은 게 많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네.


****내 실행력은 늘 의지를 못 따라간다. 물건도 그렇다. 어릴 때부터 다 쓰거나 헤져서 버린 물건은 손에 꼽는다. 내 기억으론 한 차례,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던 시절 수첩 몇 권과 볼펜 몇 자루를 다 써서 버린 기억이 있다. 쓰는 속도가 느려 가뜩이나 필기를 잘 안 하는 내 스타일상 그건 상당한 도전이자 성과였다. 그래서 아직도 "영광의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지금"이라곤 말 못 하겠다. 임계치를 넘은 건 분명한데 이후 추진력이 붙지 않는다. 상자에 갇힌 개구리처럼 점프! 점프! 해도 애매~하네.


*****휴가 때 일본 가려다가 포기했다. 굳이 이 시점에 갈 이유는 없는 듯하다. 이러다 살면서 일본 한 번도 못 가 보는 건 아닌지.


11.jpg 애착 깊은 나무시계. 정말 가볍다. 원래 줄은 나무 색과 같은 브라운이었으나 이젠 더이상 재고가 없다고...


******2008년 전후로 구입한 나무시계가 있다. 가볍고 심플해 몇 년간 줄곧 차고 다녔다. 가죽끈이 헤지고 연결고리가 떨어졌다. 독특한 생김새 탓인지 시계줄을 구할 수 없었다. 이후 거주지를 몇 번 옮겼지만 시계만은 챙겼다. 언젠가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비싼 제품도 아니었지만 내겐 애착이 있었다. 그러다 엊그제 시계를 고쳤다. 줄을 갈고 멈춰버린 시계에 약을 넣어 전류를 흘렸다. 전말은 이렇다.

브랜드명을 인터넷에 쳤더니 나무시계를 전문으로 하는 분의 매장이 나왔다. 지금은 하지 않지만 번호는 다행히 남아있었다. 이 분이 이 시계를 판매했던 장본인이었다. 기록을 뒤져보니 2007년쯤 시계 사업을 시작하신 듯하다. 그러니 나는 사업 초창기 제품을 구입해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그게 고마우셨는지 이 분은 내가 사는 동네까지 찾아와 시계를 살려주셨다. 내가 샀던 제품은 완판 돼 시중에 남아있지도 않을뿐더러 이런 유형의 시계줄도 재고가 2개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중 한 개를 내가 갖게 됐다. 그분은 초기 제품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내게 고마워하시는 듯했지만 나는 그 더운 날 10년도 더 된 시계를 살리려 먼 길 나서주신 분이 감사해 몸 둘 바를 몰랐다. 지금은 시계(사업)를 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나는 조금 더 이쪽 길을 가셨으면 좋겠다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거의 7년 만에 움직인 내 나무시계는 괜스레 사람을 울컥하게 만들었는데, 이유 없는 감정의 진폭에 가슴 저린 하루였다. 아참, 시계 선생님 말로는 시계를 팔목에 채운 뒤 남은 줄을 고정하는 고리 두 개 중 끝에 것에만 줄을 넣어 사용하는 게 착용감이 더 좋다고 한다. 시계 사용한 지 십수 년 됐지만 처음 안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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