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그 사람

어느 죽음에 관한 이야기

by OIM

*심약한 분들은 읽지 마시길 바랍니다. 사진과 내용이 자극적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를 할 거예요.

죽음에 대한 거죠. 어제 예고한 대로 '고독사'에 대해 말해볼까 합니다.

고독사, 잘 안 와 닿죠.


6년 전 고독사를 취재할 때 기억입니다. 워낙 기억이 생생해 신기할 정도인데요. 사람이 살면서 타인의 죽음을 관망할 기회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처음으로 사람이 죽은 현장에 갔어요. 취재라는 명목 아래 용기를 냈죠. 근데 현장은 생각보다 참담하데요.


당시 저는 노인 고독사를 주제로 고독사 현장 섭외를 진행하던 중이었고요. 당시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유품 정리 업체들을 인터넷으로 찾아 하나하나 동의를 구했습니다. 쉽지 않았고요. 퇴짜에 퇴짜를 거듭하다가 한 업체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어렵사리 현장에 갔죠.


그때도 같았습니다. 지난 7월 29일 부산에서 발견된 고독사 현장과요. 이 분도 36살이라고 하는데요. 제가 찾아갔던 현장(서울 00구)도 또래 분(35살, 여성)이 유명을 달리한 곳이었습니다. 발견된 시기도 유사하죠. 당시 시신이 발견된 시기도 7월 즈음이었습니다. 숨진 지 한 달 좀 지난 시점에 발견됐고요.


업체에서 알려주더라고요. 여름과 겨울에 사람이 많이 죽는다고. 특히 겨울에 많이 죽는데, 상대적으로 여름에 시신의 부패 속도가 빨라 발견이 많이 된데요. 겨울은 누군가 발견하기 전까진 티도 잘 안 나고. 연고 없는 사람의 죽음이 그렇더라고요.




한 아이가 고독사 현장을 정리하러 온 유품정리업체 차량 옆을 지나가고 있다. ⓒ 2013. 임경호 All rights reserved.




근데 제가 현장을 보고 느낀 건 좀 더, 뭐랄까 '평범'하더라고요. 강력범죄니 고독사니 이런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일상과 동떨어진 '사건사고'의 범주에 속했을 것만 같았단 말이죠. 엄밀히 말해 제가 여태껏 살면서 뉴스에 나올만한 일을 직접적으로 겪은 적이 없어요. 그러니 보통은 '뉴스에 나올 그런 일' 정도로 체감하는 게 일반적이죠.


말했다시피 현장을 보기 전 까진요. 음. 그렇습니다. 아직도 이 분의 죽음을 어떤 식으로 꺼내야 할지, 그게 맞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의외로 주변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일 가운데 한 가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사례를 잠시 들려드릴게요.


이 분은 무연고자가 아니었어요.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서 고독사 대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고독사와 같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고독사는 무연고자에게서 발생한다는 관념을 벗어나는 사례였죠. 30대, 이른 나이였고요. 가족이 있었어요. 같이 살진 않았지만.


그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원래 그 방(집)에는 자매가 함께 살았고요. 둘이 다퉜다고 해요. 이후 동생이 집을 나갔고요. 혼자 살던 분이 어떤 이유로 그 방에서 돌아가신 거죠. 이후 아무도 연락을 하지 않았는지 숨진 뒤 한 달이 넘어 사람들에게 발견됐습니다. 가족들이 수습을 거부한다거나 가족(연고자)이 없으면 그날처럼 유품 정리 업체에서 현장을 정리하게 됩니다. 슬프죠. 그보다 허무하고요.


보통은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했을 때 애도하는 일이 선행돼야 하겠죠. 저도 그러했습니다. 다만 현장에서 받는 느낌은 애도와는 또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켜요. 묘합니다. 생각해보세요. 20대 끝자락에 있던 제가 30대 중반 어떤 이가 죽은 현장에 가있습니다. 일반적으로 30대 중반 여성분에게 받을 수 있는 느낌이나 기분과는 완전히 달라요. 심지어 지인도 아니니 이 분의 죽음에 어떤 자세를 취하는 게 좋을지 선뜻 판단이 안 선단 말이죠.


방은 참담했어요. 고인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고요. 복도식 빌라 4층이었는데, 2층 계단부터 시신이 부패했을 때 나는 냄새가 났어요. 현장을 마주했을 때 도의적인 어떤 자세보다 현실적인 반응이 우선했단 거죠. 놀랐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


크로스백(가방)이 옷걸이에 여럿 걸려있었고요. 신앙, 미용 등과 관련된 책 몇 권이 책장에 꽂혀있었어요. 각종 식기구와 집기들이 방안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요. 화장대라든가 청소기 등 고인이 평소에 쓰던 모든 게 그 방에 남아있었죠. 생전과 다른 게 있다면 그 모든 것 위에 구더기가 기어 다녔고요. 고인의 냄새가 베여있었습니다. 바닥엔 사람 유분과 피가 눌어붙어 발을 뗄 떼마다 우리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었고요. 그 와중에 해는 참 잘 들더라고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이상했거든요. 얼마 전까지 사람의 손길이 닿던 현장이 마치 옛 것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게, 현실감이 오락가락하더라고요? 근데 업체 대표님이 그러더라고요. "최악의 현장은 아니다"라고.




고독사 현장을 정리하는 유품정리업체 직원 뒤로 고인이 기르던 반려견의 케이지가 보인다. ⓒ 2013. 임경호 All rights reserved.




방안에 케이지 하나가 있었고요. 그 안에 반려견도 함께 굶어 죽어있었데요. 근데 반려견을 기르는 사람이 고독사 하게 되면 남겨진 개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시신을 훼손하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그 현장은 말도 못 하게 끔찍하다고 하니 이번 사례는 그나마 온건한(?) 편이란 거죠. 그 말을 듣는데 어느 부분에서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하는지 잘 모르겠데요. 감정이 되게 뒤죽박죽인 순간, 그 와중에 '이게 맞아'라는 직감적인 판단이 안 서는 상황. 보통 사람이 '시비'보다 '호불호'를 판단할 때 논리(이성)보단 감정(감성)이 앞선다고 하던데 그 회로가 머뭇머뭇.


방은 서너 시간에 걸쳐 정리돼 갔습니다. 고인의 짐을 포대에 넣어 문 밖에 빼두고요. 방안 곳곳을 청소합니다. 짐을 모두 빼면 냄새 제거도 함께 하고요. 그렇게 그 방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무리돼 갔습니다.


빌라는 조용했어요. 오전에 시작한 작업이 정오를 넘겨 오후 2시에 이르기까지 누구 하나 나와보지 않더라고요. 당시엔 '삭막한 도시 풍경' 정도로 생각을 갈음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좋은 일이라고, 또는 무슨 관계가 있다고 나와서 들여다볼 일일까 라는 생각이 우선합니다. 타인의 죽음이란 게 가깝고도 그렇게 먼 게 아닌가 싶고.




고인의 짐을 담은 포대 세 자루가 빌라 복도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 2013. 임경호 All rights reserved.




오후 2시 좀 넘어 저는 현장을 벗어났습니다. 얼추 정리가 끝날 무렵이었죠. 복도에 고인의 흔적을 모아둔 포대 세 자루가 묶여있었고요. 냄새도 얼추 옅어진 듯했습니다. 복도 유리로 해가 내리쬐는데 자루를 비추더라고요. 일부러 거기 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내가 살다 간 흔적도 저렇게 세 자루로 정리되는 게 아닌가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나오면서 친구들에게 카톡을 돌렸습니다. 연락 좀 하고 살자는 뭐 그런 내용이었어요. 기사에 쓰지 못할 현장이었지만 기억엔 제대로 새겼죠. 이 취재가 제 삶을 바꿔놓았다거나 그런 건 아닌데 잊지 못할 순간이 될 것 같더라고요.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요즘도 관련 기사를 보면 그때가 생각납니다.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도 종종 떠올려보고요. 그러고 보니 제가 기자가 되려고 한 이유와 죽음은 참 밀접한 관계에 있네요. <세상의 끝에 내가 있다>(앤더슨 쿠퍼)에 영향을 좀 받았는데요. 이 사람도 친형의 죽음(자살)을 계기로 타인에 대한 이해를 시작하거든요. '너와 나는 왜/어떻게 다른가' 이게 시작이란 거죠.


뜬금없지만 이 얘길 한 번쯤 하고 싶었습니다. 며칠 전 기사를 보고 생각이 났어요. 무려 6년 전 일이죠. 문득 고인의 동생은 또 어떻게 잘 살아가고 있을지, 주제넘게 그런 궁금증이 이네요. 그때로부터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는데 여전히 고독사는 낯선 문제 취급을 받는 듯하고요. 취재 이후 이렇다 할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그런지 저에겐 이유 모를 부채감도 좀 생겼네요. 여러모로 쉽지 않은 주제네요. 죽음이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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