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안 쓰면 계속 안 쓸 것 같아 쓰는 글
여유 나면 쓰려고 했는데 여유가 안 났다. 어쩐지 막내로 돌아간 기분이다. 좀 허덕였다. 옛날엔 무쓸모 한 나를 고민했는데 이제는 나의 쓸모를 고민한다. 평가하긴 쉬우나 쓰기는 어렵다는 '글'을 실감한다. 또 체감한다. 남들 원하는 글 써주고 월급 손에 거머쥘 땐 푼 돈 같았는데 내 글 쓰고 돈 받아가려니 글 한 편 기사 하나가 이렇게 무겁다. 그걸로 버는 돈은 오죽하랴.
헤맸다. 오랜만에 써서 그렇다, 고 몇 번 되뇌었는데 효과는 미미하다. 첫 주는 밥값을 못해 스트레스가 치솟았다. 하루를 쥐어짜다 집에 오면 곯아떨어졌다. 출근 전에 비해 스트레스 지수가 299%로 증가했다. 굳이 수치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새벽 3시 반에 잠에서 깨 기사 거리를 찾았다. 그런 시간이 한 주간 반복됐다. 그럼에도 하루에 기사 하나 쳐내기가 쉽지 않았다. 경력직이라는 무게가 나를 눌렀다.
둘째 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첫 주에 비해 부담감이 조금 덜할 뿐. 가까스로 분위기를 읽고 있지만 아직 역부족이다. 멍석 깔아주면 못 한다는 말은 이럴 때 꼭 옳다. 쓰고 싶은 기사를 장려하는 환경 속에 결과는 언제나 심판대에 오른다. 내가 쓰고 내가 하는 판단이지만 그래서인지 조금 더 냉정하다. 왜 못 쓸까. 자조가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한동안 계속되지 싶다.
가라앉은 기분과 다르게 활동은 늘었다. 친구를 만나고 책을 샀다. 모처럼 친구가 대만에서 내한해 밥을 먹었다. 인터넷에서 알게 된 친구인데 드물게 오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내 좁은 인간관계를 생각하면 지분이 큰 편이다. 사진을 계기로 친해졌는데, 친구는 포토그래퍼가 된 뒤 제시카와 작업을 하기도 했다. 한동안 그의 성장기를 보는 듯해 왠지 모를 아련함이 생겼다. 현재는 직원 다섯의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이자 사진 스튜디오를 병행하는 포토그래퍼로 활동한다.
친구를 홍대에서 만난 관계로 영풍문고에 들렀다. 들린 김에 책을 한 권 샀다. <JOBS - EDITOR>라고 '땡스북스'에서 지난해 사랑받은 책들로 꼽은 것들 중 하나다. 어쩐지 내 삶에 기여하는 제목 같아 벼르고 있었는데 한 권 남은 재고를 내가 가져왔다. 매거진 <B> 같은 포맷인 줄 알았더니 일반 책이라 의외였다. 일단은 침대맡에 두고 탐독 예약 중.
돌아가는 길은 신촌을 경유했다. 연희동에 가려면 연남동을 가로지르는 방법도 있으나 알라딘에 살 게 생겼다. <JOBS - EDITOR>와 함께 사려던 책이 중고서점에 있었다. 갔고, 샀다. 근데 좀 많이 샀다. 그 수가 무려 10권. 원래 사려던 책은 올리버 색스의 <고맙습니다>와 이미경 작가의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이다. 근데 영풍문고에 재고가 없으니 별 수 있나. 모처럼 욕망에 솔직하다 보니 어느새.
앞선 책 외에도 <아무튼,> 시리즈(택시, 피트니스, 잡지, 양말)를 네 권 사고, <퇴사준비생의 런던>도 집었다. 언젠가 페이스북에서 본 뒤 사겠다고 다짐한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는 안 살 수 없었고, 엄마가 입원하는 바람에 갑자기 가게를 맡게 됐다는 내용의 <사장의 마음>도 옆구리에 꼈다. <대리사회>는 이 책들을 고르다가 알게 된 어느 책의 저자가 책 속에서 추천한 탓에 즉흥적으로 골랐다.
알라딘에서만 약 7만 원을 지출했다. 당초 사려던 책은 15,000원 남짓이었는데 그마저 도서상품권을 쓰면 5,000원에 해결 가능했다. 근데 고른 책은 10권에 도서상품권은 기한 만료로 쓸 수 없다고. '10권이지만 1만 원 할인' 같은 낙관으로 계산대에 갔다가 한 방 먹었다. "고객님, 발급 5년이 지나서 이 상품권은 쓸 수..."라는데 얼굴이 화끈.
_이와는 별개로 SNS를 하기 시작했다. 아카이브 차원이다. 또 사람을 사귀는 용도로도 활용하려 한다. 나는 순례길을 걷는 동안 '패턴사'라는 직업을 처음 알았는데 그날 그 친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평생 동안 패턴사를 몰랐을지도 모른다. 만남을 계기로 경험이라는 게 삶에 미치는 크고 작은 영향에 대해 생각해봤고, 그 앎의 다양성이 눈 앞에 보이는 색을 만드는 채도나 명도 같다는데 사고가 미쳤다. 나는 내 삶을 다채롭게 하는 이런 시도를 조금 더 해보려는 의지가 이제 막 생겼고 그 과정을 충분히 존중하기로 마음먹었다, 고 기록해둔다.
잊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