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을 벗어던지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이사를 준비하며 새삼 느낀다. 3년간 머물렀던 연희동을 벗어나 어느 조용한 동네에 전셋집을 구하려 했건만 뜻대로 되지 않는 마음에 한 자 적는다. 이사할 때마다 사람들이 집을 사는 이유를 깨닫는데, 옮겨 다닌다는 건 때로 번거로움을 넘어 묘한 감정을 부르는 탓이다.
불광동, 홍제동, 합정동 등 다양한 위치를 둘러봤다. 성산동도 있고 연남동도 있고 나열하면 끝도 없다. 어쨌든 하고 많은 선택지 중 연희동으로 돌아왔다. 조건에 맞는 집을 구하기 위해서 외곽으로 나가느냐, 매월 돈을 지불하면서 중심에 머무르느냐 하는 단순한 고민에서 후자가 승리했다. 발품을 팔아봤자 마땅한 방이 안 보였고 내건 조건에 비해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아서, 체력이 닿는 데까지만 서울을 돌았다.
하루는 어느 동네에 갔는데 분위기가 묘했다. 빌라 규모도 컸고 방도 어지간히 많은 듯했다. 그만큼 주차공간도 많아 입구에 아예 '바'를 설치해뒀다. 단일 공간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건 아파트를 제외하고 처음 봤다. 낯설었다. 거주자 중 몇몇은 내려와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어둑어둑한 분위기와 맞물려 어딘지 피하고 싶었다. 그 길로 방을 본척만척하면서 자리를 떴는데, 이 경험이 연희동을 벗어나지 않기로 마음먹는 계기가 됐다. 내가 의외로 주변 분위기를 중요시 여기고 있단 걸 이날 처음 알았다.
매주 이 같은 일들로 업무 외 시간을 쓰고 나자 피로가 쌓였는데, 어제는 요 근래 하지 않던 지출로 스트레스가 이어졌다. 알게 모르게 압박을 받았나 보다. 그 유명한 <오향만두>에서 모처럼 탕수육을 사 먹었다. 혼자 먹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사이즈임에도 말이다. 하지만 어제는 나사가 하나 빠졌고 연희동을 유령처럼 배회하다가 탕수육을 질렀다. 맛있데. 모처럼 동네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게 됐는데 이 지역은 뭔가 아련한데 고급진 느낌을 동시에 주는 것 같다. 작은 가게들을 구경하다가 주택가를 보면 흠칫하게 된달까.
오늘은 승부를 걸러 간다. 연대 북문 쪽에 조용한 아파트 단지+주택가가 있는데 이곳에 방이 하나 있다고 해서. 차를 끌고 다니다 보니 선택폭이 좁아서 찾다 찾다 이까지 왔다. 사러가마트를 중심으로 반경 얼마 이상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팁이라면 팁인데, 연희초등학교 뒤쪽 언덕으로 올라가면 그나마 가격이 좀 저렴한 집들을 찾을 수 있다. 내가 전에 살았던 지역이기도 하고 밤이 되면 굉장히 조용한 동네다. 근데 지금은 그마저 매물을 찾기가 힘들어 북문까지 내려간다. 여기선 사러가 한 번 가려면 마음먹고 걸어야 하는 그런 거리다. 연희동 카페거리에서 벗어난 위치 덕분에 주변에도 조용한 가게들이 하나둘 있다고.
이사하게 된다면 후기를 남기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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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 <오향만두> 탕수육 맛있다. 만두류도 꽤 괜찮다. 만두집이니 당연하겠지만 이 시국에도 손님이 포장 주문하고 대기할 정도로 괜찮은 편이다. 탕수육 시키고 기다릴 때 같이 있던 손님만 해도 다섯 팀. 홀에서 음식 먹던 사람들이 두 팀. 그 정도로 괜찮다는 말.
<이품>도 괜찮다. 이품은 해산물이 가득 든 삼선짬뽕(국물 맛)이 압권이고, 군만두를 같이 시켜먹으면 배부르/터지게 먹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탕수육이 먹고 싶으면 <오향만두>에서 만두와 함께 사고, 짬뽕류가 끌리면 <이품>에서 다른 메뉴와 함께 사는 걸 추천한다.
포장해서 집에 가 누군가와 함께 먹을 거라면 사러가에서 장 보는 동안 전화로 주문한 뒤 돌아가는 길에 찾아가면 조금 더 시간 활용면에서 경제적이다.
내가 좀 먹는다 하는 사람은 이 같은 메뉴와 연희김밥을 한두 줄 같이 사가면 훌륭하다. 삼선짬뽕+군만두(이품)와 김밥 한 줄(연희김밥)을 혼자서 먹어봤는데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배가 불렀다. 참고해서 조합을 짜면 좋다.
별미로 사러가 마트 푸드코트에 있는 <동경 닭강정>을 추천한다. 여긴 주문해놓고 사러가마트를 한 바퀴 돌면 딱 좋다. 준비에 대략 13분 소요된다.
덧붙이자면 식후 디저트로 사러가 근처에 있는 <독일빵집>이나 <쿠헨브로트>에 들러 빵을 사면 조합이 딱 맞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러가 마트 뒤편 주차장 쪽으로 쭉 가다 보면 <콜드레시피>라고 아이스크림집이 나오는데 여기 얼그레이가 맛나다. 연예인들도 한 번씩 사 먹으러 온다고 하는데 그건 모르겠다.
집에 가는 길에 차를 타야 한다면 주차장 측면에 있는 <매뉴팩트>에서 플랫화이트나 라테 한 잔을 주문해 가면서 먹으면 된다. 이 정도면 거의 금요일 밤 지갑이 폭주하는 수준으로 소비가 늘어나지만 주 1회나 월 1~2회 정도는 해볼 만하다.
단점은 한 번 저지르고 나면 배가 튀어나온다는 거.
동네에서 살짝 멀어지는 것을 기념해 적어봤다.
_매뉴팩트는 오후6시면 문을 닫는다.
심지어 일요일은 휴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