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26

이 시간에?

by OIM

잠을 덜 잤다가 방전됐다. 엊그제 3시간쯤 자고 일어나 일하다가 저녁에 쓰러지다시피 잠들었다. S 보도와 관련해 쓰고 싶었는데 여유가 안 났다. 마감기간이니 할 수 없다. 그래도 오후 9시쯤 잠든 건 예상 외다. 체력이 약해진 건지 나이를 먹은 건지 원인을 찾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피곤했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아침부터 해프닝이 있었다. 늦잠 자서 조금 늦을 것 같다는 카톡을 회사에 보냈다. 부리나케 가는데 카톡이 울렸다. 오늘 대부분 재택이란다. 그래도 회사에 출근해도 된다고.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카페로 향했다. 어릴 때 잠에 취해 가방 메고 나갔다가 묘하게 길거리가 한산하단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날 같았다. 쉬는 날 나만 등교하던.


KakaoTalk_20200326_004545927.jpg 왜 재택인데...


카페는 붐볐다. 차츰 사람이 들어찼다. 한창 기사를 치고 있는데 건너 테이블에 어떤 사람이 앉았다. 타자 치는 게 익숙하다 했더니 기자였다. 00경제 ooo기자. 아침부터 출입처에 전화 돌리는 게 어딘지 낯설지 않았다. 그냥 사람 일하는 게 다 비슷하다 싶었다. 점심까지 카페에 머물렀다. 기사를 썼다.


KakaoTalk_20200326_004626072.jpg 출근, 실패한 자의 아침.


점심 먹고 집에서 일하는데 집주인 아주머니가 방 구경하러 온 분들을 대동하고 들이닥쳤다. 문 두드리는 소리와 비번 누르는 소리 사이에 왜 텀이 없는 건지 미쳐 물어보지 못했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서 집에 있을 때 꼭 도어록 외 잠금장치를 걸어놓는다. 그리고 예상했던 메시지엔 오차가 없다. "어? 집에 있었네?"


저녁에 다시 집 앞 스벅으로 갔다. 너무 졸렸다. 저녁에도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잠들 것 같았다. 버티려고 갔는데 버틸 수 없었다. 주문한 '베이컨 어쩌고 샌드위치'는 몹쓸 맛이었다. 몇 번을 시도해도 베이컨은 내 사랑이 아니란 걸 또다시 깨달았다. 시그니쳐 초코도 별 맛이 없었다. 꿈에서 음료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근래 커피를 너무 마셨더니 가슴이 뛰어 초코를 시켰는데 잠은 안 깨고 맛도 없었다. 실패라는 자각도 없이 잠에 취했다. '더 써야 하는데...' 따위를 뇌까리며 집에 왔다. 대충 씻고 침대에 쓰러졌다. 이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모처럼 몸과 마음이 합의했다. 잤다.



오늘도 기사를 손봤다. 또 재택 했다. 기사를 손보는데 데이터를 찾기 어려웠다. 기사 방향에 맞는 근거가 안 나와서 고전했다. 내가 취재원을 못 찾아서 그런 게 아닌가 몇 번 의심했다. 길게 끌 기사는 아니었는데 이 의심이 사람을 붙들었다. 보고서와 기사 등을 뒤지며 시간을 썼다. 내 생각이 맞았다. 그러니까 원래 예상했던 기사 방향에 맞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내 생각이 맞는 거다.


전문가들도 그랬다. 내 생각을 뒷받침했다. 원하는 답은 아니었지만 기사를 틀기에 충분한 말을 해줬다. 늘 특정 분야의 최고들에게 연락할 수 있는 특혜를 누리면서도 그분들의 전문성을 뽑아낼 수 없던 게 마음에 걸렸는데 이번엔 나름 적당한 질문을 던진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내 예상이 맞아서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와 별개로 앞선 기사에 시간을 할애한 탓에 원래 오늘 처리해야 할 기사를 거의 손도 못 댔다. 그러니 지금 이 시간에 깨서 적고 있다. 아까 집에 돌아와 잠시 잤다. 그대로 있다간 밤에 잠들 것 같아서 예방주사를 놓은 거다. 조금 더 자려했는데 불안감이 깊은 잠을 막았다. 편하게 살긴 그른 성격 머리 아닌가 했다.


다시 커피를 탔다. 우유를 듬뿍 넣었다. 희석해야지. 안다. 커피 총량은 같다. 근데 기분이란 게 있다. 커피색이 옅어지면 조금이나마 괜찮은 기분이 든다. 일을 할 때 기분은 참 중요하다. 우유와 커피색 사이에서 조금 더 우유 쪽으로 기운 커피를 마시면서 일을 시작했다. 그래. 확실히 중요하다.


아침이 오면 출근이다. 찐 마감날이라 그렇다. 재택을 할 수 없는 마감. 내일모레 이사를 해야 하지만 마감이 남았다. 아마 토요일 새벽에 퇴근할 예정인데 그날 아침부터 이사를 해야 한다. 차에 짐을 싣고 얼추 5~6번 왕복해야 할 거다. 계약도 해야 하고 뭐 그런 일정이 기다린다. 발등의 불이 두 개나 떨어져서 지금 좀 정신이 없다.


여유가 된다면 이케아에 가서 토퍼도 사고 간단한 집기도 보고 싶다. 아마 불가능하겠지. 수습 때 오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일하고 회사 들어오는 길에 급브레이크를 밟은 적이 있다. 잠시 정신이 나갔다. 도로 한복판에서 시야가 사진처럼 펼쳐졌다. 영화가 아니라 사진 말이다. 그때 이후론 안위를 조금 더 챙긴다.


정신없는 한 주가 되겠다. 당장 기사를 써내고 마감 동안 미뤄놨던 책도 좀 읽고 싶다. 물론 이사 후 정리가 우선이다. 무사히 계약을 마무리하고 식물을 하나 들여야겠다. 채광이 좋은 곳이니 잘 크리라 믿는다. 물은 내가 줄 테니 녹음을 돌려주면 좋겠다. 사람이 사는 곳은 그렇게 꾸미는 게 맞겠지.


기대된다.







여담) 음식점에 갔다. 한산했다. 저녁시간인데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어쩐지 가격이 오른 것 같았지만 오랜만이라 정확하지 않다. 다만 현금 계산을 권장하는 분위기가 평소보다 짙었다. 기분 탓일지도 모른다. 그냥 그런 상황 속에서 경제가 어렵다는 말이 피부에 닿았다. 벌이 없이 나갈 구멍 막을 때의 기분이란. 생각이 깊어지면 슬픔에 닿을까 봐 그만뒀다. 꽃은 언제쯤 피는지. 봄은 봄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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