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백수일 때 주말은 별 의미가 없다. 거리나 카페가 평소보다 조금 더 붐비는 날 정도다. 어떤 면에서 주말은 타인과 어울리는 요일이자 모두가 소비하는 날이다. 그래서 백수는 주말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벌이는 없는데 다른 사람과 어울려 소비를 시작하다 보면 어쩐지 신세를 되새기게 된다. 내가 백수일 때 그랬다. 더는 백수가 아니라 적어보는 기억.
:: 독일어 교재를 고르는 중인데 병행 가능할지 모르겠다.
1. 회사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한 여자가 갈 길이 급한지 택시를 잡았다. 버스 정류장 뒤로 택시가 서는데 여자는 머뭇거렸다. 택시는 정차해 비상 깜빡이를 켠 상황. 알고 보니 택시와 여자 사이에 비둘기 한 마리가 걸음을 옮기더라는. 비둘기는 여자를 피하고 여자는 비둘기를 피하는 길이 어쩐지 박진감 넘쳤다. 일상이 고요하면 모든 게 드라마다.
2. 새로 들어간 회사에 떨어진 줄 알았다. 지난주 결과가 나온다고 했는데 막바지까지 연락이 없었다. 지원한 포지션 대비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포트폴리오도 첨부했다고 생각했다가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기분이 다운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소 의기소침해진 것 같기도. 어쨌든 그렇게 주말을 앞두고 있다가 받은 연락은 2차 면접 통보. 그제야 웃어버렸는데 너무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낸 것 같아 스스로에게 조금 부끄러운 기억이다.
3. 2번에 따라 오늘 보기로 했던 다른 회사 면접은 참석하지 못한다고 전화했다. 애초에 입사한 회사는 이너 피스를 찾고자, 면접이 잡혀 있던 다른 회사는 다양한 경험과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을 염두에 뒀는데 이로써 워라밸에 초점 맞춘 생활을 기대해 본다.
4. 결혼한 친구가 있다. 뭔가 물어볼 게 있어서 카톡을 했다가 "결혼하니 어떻냐"며 "재밌냐"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이 "재미로 결혼하냐"라는데 어째서 이런 대화가 가능한지 모르겠다. 물음에 대한 답이 이런 식으로 돌아온 게 처음이 아니라 의아하다. 결혼 소감을 묻는 건 혹시 실례인가 싶다.
5.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대형 버스가 도로를 달렸다. 온통 검은색인 버스에는 '해피 버스 찬열 데이'라는 문구가 큼지막히 쓰여있었다. (해피 찬열 버스 데이였든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저런 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는 생각에 웃었다. 사랑의 방식이 다양해지며 이를 소화하는 자본도 변화하는구나 싶다.
6. 지하철을 타려는데 할머니 한 분이 새치기를 했다. 지하철이 들어온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어디선가 나타나 제일 앞에 선 할아버지 뒤에 섰다. 할아버지 뒤에 내가 서 있고 그 뒤에 여자 한 명이 서서 사실상 내 앞에 선 건데, 유순한 생김새로 내 눈치를 살피는 모습에 당황해서 아무 말 않았다. 종종 겪는 일 중 하나.
7. 동네에 입간판이 서있는 걸 봤다. 영어 유치부 2차 입학 간담회를 한다는 내용이다. 어릴 때 동네에 있는 유치원에 가면 장미반, 달님반, 해님반 등 나뉘어 나이대에 따라 색종이를 접거나 노래 등을 배우던 기억과 제법 다르다. 유치원 입학 간담회라니...
8. 프랑스 경제지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의 유죄 판결을 위한 희생양이라고 지적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떴다. 해외에서 이런 분석을 내놓다니 의외라고 생각해 기사를 읽었더니 기자가 기사로 지적한 게 아니고 해당 외신에 글을 기고한 한 경제학자의 칼럼을 인용해 제목과 리드를 위와 같이 뽑았다. 이를 몇 개 언론사가 거의 그대로 받아 썼다. 비슷한 내용이 십여 개 언론사에서 반복 재생산되자 일종의 여론이 된 셈인데 피식했다.
몇 개 언론사에서 기사를 쓴 기자 이름을 검색했더니 산업부 차장이거나 삼성 출입기자 등이다. 외신을 인용해 기사를 쓰거나 이를 번역해 옮기는 일은 국제부의 일이 될 가능성이 다분한데 산업부에서 한 걸 보면 기사의 방점을 어디에 찍었는지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외부 필진이 쓴 칼럼을 마치 외신에서 지적한 것처럼 권위를 실어 보도한 건 의도적이다. 우리나라 언론사만 하더라도 외부 필진의 글은 해당 매체의 논조나 방향과 다를 수 있다고 명시하기도 한다. 가령 모 신문에 한 대학 교수가 '문재인 케어'를 비판하는 내용의 칼럼을 기고했다고 해서 우리는 그 신문이 문재인 케어를 비판했다고 보도하지 않는 것과 같다.
눈 가리고 아웅이다. 원문을 찾아보지 않았고 기사 내에서 칼럼 이외의 내용은 인용하지 않아서 그 신문도 경제학자와 같은 취지의 기사를 썼는지 알 수 없다. 따라서 기사 내용만 놓고 보면 그 기사가 누구를 위한 기사인지 명확하다. 나는 우리나라 언론이 고민의 흔적도 없이 이런 식으로 기사를 쏟아내는 게 슬프다. 기자는 어떤 의미에서 글을 쓰는 일 보다도 가치 판단을 업으로 삼는 직업인데 말이다. 좋은 기사를 보고 싶다. 나는 그렇다.
추신. 해당 기사를 받아 쓴 언론사를 검색해보면 공통분모가 보이는 듯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