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행복한 걸로.
1. <영국인 발견>, 책을 주문했다. 지인이 추천해준 책이다. 영국판 <국화와 칼> 같은 느낌이다. 엄청 두껍다. 페이지 수를 보고 대뜸 <서양미술사>가 떠올랐으니 말이다. <서양미술사>는 몇 번이나 시도했다가 못 읽었다. 그런 동류를 샀다. '읽어야 한다' 읊조리지 않으면 좀처럼 읽지 못할 책. 동네 뒷산 같달까.
2. 파본이 왔다. 엄밀히 말하면 파본은 아닌데 기분이 영 파이다. 흰색 표지에는 검정 때가 묻었으며 모퉁이 곳곳은 뭉개지거나 까져있다. 침대와 벽 사이 책을 떨궜다가 이사 전 날 발견한 그런 모습이다. 교보에 문의글을 남겼더니 맞교환해주겠다고. 하지만 나는 시간보다 의지가 없는 직장인 아닌가. 그냥 읽기로 했더니 2,000포인트를 준다.
3. 포인트가 생겨 책을 사러 갔다, 는 훼이크다. 동묘시장 고양이 사건을 보고 동물법에 관심이 생겼다. 관련 주제를 다룬 책을 찾아 교보에 갔다. 인터넷으로 살까 하다가 재고가 있길래 갔는데 없었다. 다섯 권 중 세 권은 재고가 있다 나왔는데, 세 권 중 한 권만 찾을 수 있었다. 이럴 거면 인터넷으로 시키는 건데.
4. 그래서 나머지는 인터넷으로 시켰다.
5. 이번 달엔 나도 모르게 과소비했다. 책을 사면 소비로 인한 중압감이 덜하다. 그게 흐름을 타버렸다. 마감 후 책을 사고, 재난지원금이 남았다며 사고, 추천받아서 사고, 궁금한 게 생겨서 샀다. 이 정도로 사자 마음에 혹이 생겼다. 보통은 ‘짐’이라고 한다. 이걸 덜어내려 밥을 굶었다. 점심값만큼 덜 산 셈이라며.
6. 읽을 책이 많고, 써야 할 기사도 여럿이다. 개중 하나는 초안보다 덩어리가 많이 커졌다. 적당한 선에서 쳐내려던 계획이 그럴 수 없게 됐고,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잔뜩 들어버렸다. 얼마나 다듬을지는 이제 내 손으로 넘어왔다. 사실 이번 달이 마지막이라(=책을 많이 산 이유) 다음 수를 내다볼 시간이 필요했지만 믿고 말씀한 내용들을 멋대로 털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 보니 주말은 다가왔고 책은 쌓여있으며 미진한 기사들이 나를 기다린다. 이걸 어떡한다.
7. 모르긴 몰라도 집에 가서 만들어 먹을 아포가토가 맛있단 건 알겠다. 오늘은 일단 행복하는데 치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