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직장 내 괴롭힘인 거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바람이 불었다.

by OIM

커피를 탄다. 캡슐에서 뽑아낸 크레마가 얼음 위로 떨어진다. 살짝 녹은 얼음은 우유 위에 옅은 막을 친다. 젓가락을 이용해 커피를 휘휘 젓는다. 아차, 크레마. 할 수 없다. 적당히 탁한 커피를 책상 위에 둔다. 랩톱을 연다. 글 쓸 준비를 한다.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인다. 좀처럼 녹지 않는다. 그런 11월이다.


퇴근은 즐겁고, 그 과정을 견뎌내는 일은 언제나 고되다. 이것은 직장의 묘미이자 직장인의 비애.


며칠 전 일이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퇴근 후를 즐기던 무렵이다. "여보세요?" "000 기자님?" 연락처에 없는 사람이 직함을 불렀다. 이름도 불렀다. 이럴 땐 대게 두 가지로 나뉜다. 오보가 나갔거나 기사 수정이 필요한 경우다. 오보는 당연히 고쳐야 하고 후자는 기사에 아쉬운 점이 있을 때다. 하지만.


요즘 내가 쓰는 글은 영양가가 없다. 보는 사람도 없다. 포털 노출도 잘 안 된다. 매체 규모 문제는 아니다. 기존 콘텐츠들을 포털에서 저품질로 분류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유야 어쨌든 그냥 쓴다. 직업적 글쟁이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다. 요즘의 글은 무해하지만 무익하다. 그래서 의아했다. 누가 나를 찾을까.


"안녕하세요. 000 회사 000 이사입니다. 왜 전화드렸는지 짐작하시겠지만..." 아니. 전혀 짐작 못했다. 퇴사한 지 3달이나 지났다. 브런치에도 썼지만 받는 것(급여)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곳이었다. 인간관계가 부른 참극이었다. 사람은 때로 악의란 걸 타인에게 드러내는데 이유를 알 수 없어 괴로움이 컸다.


"전화드린 이유는 A 씨 때문인데요. 아시겠지만..." ... 모른다. 아는데 모른다. A 씨가 전화의 발단이란 건 몰랐다. 하지만 A 씨 때문이라면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래서 모르는데 알고 아는데 모른다. "사정 청취 차 연락을 드렸어요." 회사에서 또 퇴사자가 나왔단다. 원인은 A 씨. 내가 그러했듯.


이야기 좀 해달란다. 나와 A 씨 사이에 있었던 일을 묻는다. 인사위가 열릴 거란 말도 함께다. 징계위에 회부되면 처벌을 받을 거란 이야기도 들린다. 수화기 너머에서 000 이사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신경을 못 썼단다. 그러는 동안 상황이 너무나 심각해졌고, 어떻게든 인사위를 열어 A 씨를 처벌하겠단다.


내가 들은 상황은 이랬다. A 씨의 텃세(?)로 퇴사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내가 나갔고, 전임자가 나갔으며, 내 동료도 나갔고, 직장 상사가 나갔으며 같은 사무실을 쓰던 타 부서 직원도 나갔다. 대략 아는 사람만 이 정도. 마지막에 퇴사한 타 부서 직원이 모든 것을 터뜨리고 나갔단다. 내 이야기도 함께.


이날 전화는 그 여파였다. 그간 퇴사한 이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있고 나도 그중 한 명이라 했다. 이제는 부서에 직원이 거의 남지 않아서 부서 업무 자체가 힘든 듯했다. 부서장을 제외하면 A 씨와 A 씨의 부사수만 부서에 남았다. 항간에는 '부사수'도 A 씨와 똑같다는 말이 들렸다는데 그는 이상한 사람, 딱 그 정도 선이었다.


이사는 물었다. "000 기자님, 이거 직장 내 괴롭힘인 거죠?" 나는 선뜻 대답을 못했다. 그가 나를 괴롭힐 수 없다고 생각한 탓이다. A 씨는 업무능력이 연차에 비해 (많이) 아쉬운 편이었다. 또 유해했다. 그런 인물은 누군가를 괴롭힐 깜냥이 안 된다고 봤다. 그래서 호흡을 멈췄다가 "글쎄요."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괴롭힘이 맞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람을 세워두고 요지 없는 말을 30분간 늘어놓았다. 보고를 하면 빈정댔다. 부서장이 시킨 일을 부정하며 책임을 돌렸다. 늘 틱틱댔다. (나와 동료의) 능력을 폄훼했다. A 씨의 꾸지람을 듣고 나면 항상 '?'가 붙었다. '그래서 대체 어쩌란 말인가?'


발전이 없는 욕받이는 힘들다. 혼나도 배우는 게 있어야 한다. 혼나면 배우는 게 있어야 한다. 배울 점도 없이 사람을 깨는 건 감정 배설밖에 안 된다. 이런 인간상이 의외로 조직에 많다. 문제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우발적으로 일을 벌이는 인간과 습관적으로 이러는 인간이 있는데 A 씨는 후자였다. 골치였다.


"A 씨를 조직에 방치할 거라면 그런 조직은 차라리 없어지는 게 맞겠죠." 이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의중이 인사위에, 나아가 그 조직에 얼마큼 영향력을 발휘할진 모르겠다. 나는 A 씨의 징계 수위에 영향을 미칠까 봐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이사의 요구를 처음에 거절했다. 돌이켜 보면 좀 더 세세히 말했어야 했다.


개인적인 감정을 접어두고서라도 A 씨는 조직에서 배제하는 게 맞다. 그가 태도를 바꾸면 좋겠지만 장기간 여러 사람의 직장을 빼앗고도 문제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조직을 위해 잘라내야 한다. 물론 그가 실제로 잘릴 거라 보진 않는다. 그럼에도 변화의 바람은 낙관적이다. 문제의 해결은 문제를 인식하는 데서 시작된다.


조금은 덤덤한 대화가 10여분 간 이어졌다. 이사는 말했다. "000 기자님, 앞으로 종종 연락드리겠습니다. 후에 필요할 경우 조금 더 이야기를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그러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때의 기억은 불쾌했지만 별 거 아니었다. 다만 이런 해프닝으로 사람의 궤도가 완전히 바뀔 수 있다는 게 아이러니였다.


선배, 선배, 선배. 연차가 쌓아 올린 권위에 도취돼 휘두른 폭력은 돌고 돌았다. 폭력이 징계를 불렀다는 인과를 믿진 않는다. A 씨가 선택한 순간순간이 무수한 미래 중 이곳으로 그를 인도했을 뿐이다. 이 우연을 필연으로 믿고 싶은 건 나 같은 피해자들 정도다. 명확한 '제로'보단 '0에 수렴하는 쪽'이 낫다. 역시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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