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그걸 몰라서 또 쓴다

by OIM

쓰는 빈도가 확연히 줄었다. 어쩔 땐 하루에 2~3개도 썼는데 요즘은 2~3일에 하나도 안 쓴다. 쓸 말이 없어서는 아니다. 쓸 말은 언제나 없었고 그 와중에 쥐어짜 내 썼기 때문이다. 내 일기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얼마든 여백을 채울 수 있다. 그저 숨 쉬는 것만이 쓰기의 필요조건이었다. 근데 왜일까.


지쳤다. 나가떨어졌고 다시 일어나려니 피로감이 크다. 밥벌이에서 얻은 독소들이 누적됐다. 일과 생활을 분리하지 못했고 둘 사이의 괴리로 상처 입었다. 그저 그런 일들에 대한 감상을 적다 보니 비교적 솔직한 이야기를 늘어놓게 되는데 정작 직업적 글쓰기에 솔직하지 못하면서 한숨 쉬는 날이 늘었다. 나는 누구인가.


친구는 말했다. "너무 의미를 두지 마." 알지. 아는데 밥벌이 수단으로 선택한 업종의 토양이 그렇다. 수익모델이 없다. 사기업이면서 수익을 낼만한 사업이 딱히 없는데 망하지도 않는다. 언론사 얘기다. 혹자는 광고수익은 수익(모델) 아니냐 반문하겠지만 광고를 유치하는 방식이 썩 깔끔하지 않다. 양아치란 소리를 듣는 이유도 여기 있다.


기업은 '관리비용'으로 언론사 광고비를 지출한다. 대체로 그럴 거다. 기업 광고 집행을 대행하는 지인은 "지면 광고효과 얼마 있다고 그 돈을 태우겠냐"며 "다 언론사 관리 차원에서 하는 거지"라고 했다. (방송 광고는 경우가 다르다.) 알면 알수록 밥벌이가 힘들어졌다. 구조적 문제를 모른 척하지 않는 한 쓰는 이에게 갈등은 디폴트 값이다.


"기자님, 저희한테 왜 그러세요오~" 기사를 썼는데 홍보팀에서 전화가 오면 속이 아팠다. 기사의 톤과 매너는 기자가 결정한다. 데스크의 간섭이 있기 전엔 그렇다. 데스크가 손을 대면 몇몇 표현이나 제목만으로 온도가 급변한다. 쓰는 이와 최종 승인권자를 분리하는 언론사의 시스템은 수익사업에 요긴하게 이용되곤 한다.


기자도 결국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할 말이 궁해지는 일을 거듭하다 보면 동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쓰는 일 중에 굳이 기자라는 업을 선택한 건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면서 사회에도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있어서였다. 그 신앙이 실은 세속의 이해타산 위에 세워진 누각이라는 걸, 알면서 외면해온 건 아닌지 문득 자신을 의심하게 될 때가 있다. 회의는 그럴 때 찾아온다.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대)기업은 언론사에 그 많은 돈을 왜 태울까. 지자체의 대 언론 예산 집행 당위는 어디 있나. 기업이나 정부가 태운 예산은 소비자나 시민에게 어떤 식으로 돌아올까. 일선 기자들은 알면서 모르는 척할까, 상관없다고 여기는 걸까. 정부나 기업이 언론사에 쓰는 비용을 줄이는 일이 언론탄압 같은 프레임으로 연결되는 이 바닥은 그야말로 기괴했다.


진성 인팁(INTP)인 나는 이게 정말 이해가 안 됐다. 내 일에 대한 당위가 안 서면서 기업이나 지자체 등을 비판하려고 하니까 힘들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라고 말하던 선배가 있었다. 부러웠다. 사고방식이. 기업(홍보팀)에 밥을 얻어먹는 게 당연하다 말하던 선배도 있었다. 예산이 나오니까 상관없다는 얘기였다.


관습에 순응하는 게 비판받을 일은 아닐 터다. 하지만 나는 타성에 젖고 싶지 않았다. 정의로움 같은 낯간지러운 이유가 아니라 취재원과의 관계성에 있어 한쪽이 밥을 사는 이유를 도통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기업의 의중과 무관하게 기사를 쓴다는 가정 하에 어떤 조직의 예산이 나를 위해 쓰이는 게 이상했다. 인팁은 이런 거 못 참거든. 친구야?


이해 안 되는 환경에서 구르다 보니 회의감이 눈덩이처럼 불었다. 복리도 아닌데 자꾸만 살이 붙어 정신을 좀먹었다. 의욕도 이때 많이 깎여나갔고 글은 그냥 취미로 쓰자고 자신과 합의하는 데 이른다. 그래서 신변잡기나 끄적이는데 가끔 재미 삼아 쓴 글에 피드백이 올 때가 있다. 글 보고 연락드린다는 그런 거.


별 거 아닌데 이런 게 사람을 흔든다. 오늘은 내 글을 다큐에 인용해도 되겠냐는 연락이 왔다. 얼마 전엔 여론조사 기관에서 글의 주제와 관련해 인식조사를 진행하니 패널로 참여 가능하냐고 물었다. 제품 후기를 사회문제와 연관 지어 썼다가 기업 측 인사로 추정되는 이에게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일개 블로그의 글에 이런 반응을 보여주면 대충 쓰고 적당히 살자는 모토로 일관해온 지난 몇 년이 불편해진다. 지금 딱 그렇다.


사실 잘 모르겠다. 전보다 대충 쓰고 공들이지 않는 건 내 자유다. 그런 글에 호응해주는 것도 그들의 자유다. 서로 어떤 인과도 없는데 마음속에서 연결고리가 생기는 건 어떤 연유인지. 죽어가는 가치관에 단비를 뿌리면 한겨울에도 싹이 튼다. 이제 그만 눕고 싶은데 자꾸만 비가 내려서 나무가 쉬지 못하고 새 생명을 틔운다. 또 꺾여나갈 의욕인 걸 알면서도 이렇게. 곤란하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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