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불타오르고?
1. 장 보러 마트에 갔다가 비피더스 요구르트를 한 묶음 집었다. 가격표를 보니 '12개입 0,000원'이라고 돼 있었다. 비쌌다. '그래도 명절이니까...'라는 마음으로 장바구니에 담았다. 마시는 제품은 잘 안 사지만 설을 기념하는 셈 쳤다. 근데 넣고 보니 16개들이 한 묶음이었다. 미끼상품이라고 직감했다. 다시 빼려고 제품을 들었는데 포장지에 '12개입'이라고 적힌 게 눈에 띄었다. 그러니까 '12개입' 가격표 앞에 16개입 제품을 진열해뒀는데, 16개입 제품의 포장지엔 12개입이라고 적혀있는 거다. 이중 트랩?
2. 300만 원짜리 G사 핸드백을 맨 분이 가장 저렴한 요구르트 제품을 담아가는 걸 보면서 동질감을 느꼈다. 나도 200만 원짜리 랩탑을 사면서 비피더스에 바들바들 떤다.
3. 전자책 구독 서비스를 시작하니 확실히 평소에 안 읽던 분야의 책을 읽는다. 이를 테면 자기 개발서나 '~해도 괜찮아' 같은 에세이 류다. 한정적인 재화로 책을 사다 보니 우선순위는 매번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쪽이었는데 빌려서 보니까 장르를 안 가린다. 특히 자기 위안류의 글은 정말로 금방 읽기 때문에 사는 일이 없는데 이런 식으로나마 접하게 된 건 구독 서비스의 장점이다. 하지만 나는 항마력이 바닥을.. 슉 슈슉.. 치는 편이라 더 이상은 무리 같기도... 실은 모르는 사람에게 쉽게 위로 받지 못하는 편.
4. 전자책 분야는 협소한 시장 규모 탓인지 희한하게 구매자보다 판매자의 입김이 쌘 분야 중 한 곳이다. 그래서 DRM이라는 것으로 저작권을 지키면서 구매자의 권리를 보장할 방법은 아직도 개발되지 않았다. 무슨 말이냐면, 돈을 주고 콘텐츠(전자책)를 사도 구입한 플랫폼(앱)이 아니면 콘텐츠를 볼 수가 없다. 심지어 해당 기업이 망하면 그간 샀던 책들이 모두 날아가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보통 날아가지만 다른 업체가 망하는 기업을 인수해서 기존 소비자의 소유권을 보전해주는 운이 따른다면 책을 살릴 수 있을지도...) 그러니 소비자는 값을 지불하고 콘텐츠를 장기간 빌리는 셈인데, 종이책의 생산이나 유통에 투입되는 비용을 고려할 때 현행 가격들이 적절하게 책정돼 있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가격 자체는 종이책보다 저렴한 편(중고 종이책=전자책, 비등)이라 나 같은 사람들은 전자책을 사고야 말고, 그 과정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예스24'로 안착했다는 그런 글. 초록색 배경과 자동 스크롤 기능이 큰 역할 했다.
5. 지인 중에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학원도 다니고, 개인적인 비용도 쓰며 꾸준히 자신의 관심 분야를 개척하는 형이 있다. 언젠가 내가 "형은 그래도 어떻게든 하고 싶은 거 하네요?"라고 했을 때 형이 그러더라. "그거 아나? 하고 싶어 하는 거랑 그 일을 실제로 하는 것 사이가 진짜 멀더라. 이까지 오는데 0년 걸렸다." 어제 불현듯 이 말이 떠올라 헬스장을 6개월 끊었다. '코로나 끝나면'을 부적처럼 품고 다니다가 그냥 질렀다. 약속도 줄이고 헬스장도 쉬면서 고향에도 가지 않았건만 확진자는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그렇게 운동을 쉰 것도 3년째다. 헬스가 생계의 문제는 아니지만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어 올해 한 번 해보려고 굳이 회원권을 등록했다. 어제 형의 말을 떠올리고선, 어차피 의지가 있으면 약수터에서라도 운동을 했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 시도를 해야 실패나 성공도 따르겠지.
6. "벌써 올해의 1/12이 갔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나이를 먹는다는 건 아마 사소한 것에도 놀랄 준비를 해나가는 게 아닌지. 별것 아닌 것들이 생에 의미를 가질 때 나는 전보다 조금 더 많은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구나 생각해본다. 그게 어쩔 땐 내 나이테를 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