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IM Jan 27. 2022

행인의 마음

떡볶이 앞에서 할 생각은 아니지만

잘 먹고 잘 사는 일은 타인을 위해서도 이토록 중요하다, 고 끄적끄적...


어려운 시기다. COVID19 확진자가 하루 13,000명을 웃돈다. 거리 곳곳에 문을 닫은 가게가 여럿이다. 명동 일대 상권은 전멸했다는 말도 나온다. 걷다 보면 문득 시국이 밀려올 때가 있다.


어제 일이다. 퇴근길이었다. 떡볶이를 사러 가는 길에 어느 가게 앞을 지났다. 문전성시를 이루는 가게였다. 평일에 웨이팅이 있는 곳은 대체로 유명하다. 명소 앞에선 고개가 돌아가기 마련이다.


실내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보였다. 좋은 음식, 따뜻한 장소, 비싼 저녁이 연상됐다. 그러다 가게 끄트머리를 지나칠 무렵 아저씨 한 분을 발견했다. 목에 펫말(이름표)을 걸고 계셨다. 펫말에는 '발레파킹 0,000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언짢았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상황이 그랬다. 그는 대가를 받고 일을 하는 중이었고 나는 그 앞을 지나는 행인1이었다. 식사 중인 사람들은 말해 무엇하랴.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 충실한 현장인데 기분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떡볶이를 먹으며 생각해봤다. 멀쩡했던 감정이 어떤 부위에 닿아 마모됐는지. 떡과 김말이와 어묵이 자취를 감출 때까지 머리를 굴려봤는데 속 시원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편향된 경험에서 비롯된 위선 같은 게 마음 한 구석에 남은 게 아닌가 지금에서야 판단을 내려본다.


일전에 인간의 윤리의식과 관련된 수업을 들으면서 사람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척도는 이성보다 감성이 우선 작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 잘못됐는지 생각하기보다 본능적으로 어떤 상황에 대한 거부감이 먼저 드는 것이 증거라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성인 남성이 생닭을 사서 자위에 이용한 뒤 깨끗이 씻어 요리를 해 먹는다면 그 누구도 피해를 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이 같은 행위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낀다. 우리의 판단은 이런 프로세스를 거친다는 내용이었다.


따라서 내가 그를 보며 느낀 감정은 아마 무의식의 영역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의 무의식은 그 이름이 나타내듯 의식적으로 개선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고, 비슷한 상황을 목격할 때마다 비인간성 따위를 연상하며 기분이 가라앉을 것을 생각하니 어째 더 우울해졌다.


사실 내가 느끼는 우울감 따위가  자신과 연관된 '진짜' 아니라는 점에서 감정적 허구에 가까운 한편, 생각의 타래가 이런 쪽으로 물꼬를 틀어 곤란한 마음이 생기는  실체를 가진 난감함  이상이다. 혹시 이게 코로나 루는 아닐.


나는 단지 그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길 바란다. 작업 효율을 위해 팻말을 걸었겠지만 그것도 벗어던졌으면 좋겠다. 누군가 왜냐고 묻는다면 그냥 내 마음이 그렇다는 말 외엔 할 말이 없다. 아무 상관없는 제3지대에서 하는 속앓이란 어차피 이런 식이다.


봄이 오면 그는 어제처럼 발을 동동 거리지 않을 거다. 추워서 몸을 움츠리는 법도 없을 터다. 목걸이는 어쩌면 계속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계절이 변하면 그의 환경도 같이 변했으면 좋겠다. 오로지 내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다. 우연을 가장해서라도 그렇게 변해만 준다면, 행인의 마음은 한결 평안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