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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IM Mar 18. 2022

뒤틀린 관계와 약방문의 효용

감정 낭비에 대한 현대인의 자세

타버린 달걀과 같이 대수롭지만 선명한 상처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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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좀 기분이 별로인 일이 있었다. 과거에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과 관련된 해프닝이다. 이 사람과 대화나 일을 함께 하면서 크게 어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이야기에 묘하게 힘이 들었다. 말과 말이 오갈 때마다 미묘한 긴장감이 돌았고 살짝씩 기분을 긁는 것 같았다. 이해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되는 식의 대화가 흘러갔다.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은 아마 내 쪽이었고, 급기야 빨리 대화가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딘지 날이 서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이럴 때 상대와 톤을 맞추면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기는 탓에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대응 방식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대게 이런 기세는 가치관이 충돌하면서 흐름을 타는데 오랜만에 만난 사람과의 대화에서 피로함을 느껴야 하는 상황이 낯설면서 서글펐다. 타인에게는 내가 그러한 존재일 수 있겠지만 살면서 마주하는 변화라는 것이 유독 씁쓸한 날이었다.


사실 익숙한 사람에게서 낯선 상황을 마주할 때 사람이 변했다고 보기보다 관계가 변했다고 믿는 편이다. 살면서 겪은 바에 의하면 사람이란 너무다 다면적인 데다 때로 각진 면체 같지만 다음 순간 각이 없는 구체 같기도 해서 좀처럼 알 수 없는 생물이라고 생각해왔다. 때문에 어느 순간 힘들어진 관계에서 해답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관계 개선 같은 조금 희박한 확률에 기대는 행위와 비슷해 보였고 감정적 소모가 불필요하게 심한 사이는 그냥 정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람은 관계에서 일정한 선을 그어놓고 상대에 따라 범주를 달리 대응하는데 나와 상대의 기대치가 다를 경우 실망이나 아쉬움 따위의 감정적 생채기를 수반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한 번 선을 넘은 상대는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아 관계 정리에 큰 고민이 필요치 않다. 상대가 밟거나 넘은 선을 곧 나에 대한 상대의 감정이나 태도로 이해하면 편하다. 아주 드물게 "우리 사이..."나 "몰랐다"는 식의 얘기를 들을 수 있지만 애초에 그래도 되는 사이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에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정리하면, 인간관계로 일희일비할 이유가 없고 불편한 일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 끝날 일이다. 하지만 오래된 사이에서 발생하는 크랙일수록  옛날 기억에도 흉터를 남겨서 추억을 뜯어먹고 사는  같은 노인에게는 퍽이나 대미지가 들어온다. 인생이라는  라인에서 보면   일이 컴퓨터 검사에서 발견된 불량 섹터처럼 눈과 마음을 어지럽혀서 오늘도 임시방편으로 펜대를 잡았다. 글을 자꾸만 처방전처럼 쓰면   일인데 일상의 멍울은 어찌할 방도가 없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래도 문文은 문이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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