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대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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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감정이란 어찌나 갈대 같은지.
이번 주 토요일 '당근마켓'에서 공기청정기를 구입하기로 했는데 판매자가 돌연 판매가 완료됐다고 상태창을 바꿨다. 이야기를 나눈 지 1시간 30분 만이었다. 브랜드 제품을 워낙 저렴하게 올렸기 때문에 지근거리에 있는 분에게 판매한 줄 알았다. 근래 공청기와 제습기를 모니터링하다가 알게 됐는데, 이런 제품들은 가격경쟁력 여하에 따라 게시 1분 만에 예약이 잡히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이번에도 공친 줄 알고 판매자에게 말을 걸었다. 서로 손해 보는 것은 없다지만 그래도 마음이 조금 상했다. 너무한 것 아니냐는 말을 삼키며 "팔린 거냐"라고 드라이하게 물었다. 날 선 말을 뱉기에는 서운함의 크기가 애매했다. 그런데 판매자는 내 성급함에 주의라도 주려는 듯 의외의 말을 꺼냈다. 그는 "채팅이 하도 많이 와서 판매 완료로 상태를 바꿨다"며 예정대로 거래하자고 답했다. 선뜻 쏘아붙일 생각을 했던 게 겸연쩍었다. 요즘 연이어 사람 일로 지치면서 불신 같은 게 몸에 밴 탓일까. 이래서 일상의 평온을 유지하는 게 사람에겐 더없이 중요한가 보다. 여유, 이 두 글자가 오늘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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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면서 책만 150여 권 날랐다.
책을 가득 채운 중형 이사 박스가 3개 나왔고, 나머지 책은 가방과 이불 박스 등에 분산 포장했다. 그런데 이런 포장방식이 화근이 됐다. 박스 수를 줄이기 위해 몰아 담은 책은 상당히 무거웠다. 쌓아둔 박스가 잘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서 다시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로 짐을 옮기면서 허리가 끊어지는 듯했다. 용달 기사 아저씨와 박스를 함께 들 줄 알았는데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그는 한 손을 쉬게 두지 않았고 나도 혼자 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사 다음날 허리를 부여잡고 누워서 끙끙 앓았다. 집을 사기 전에는 책을 사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다시 옮길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그게 3주 전이다. 요 며칠 알라딘에서 책을 구입하면서 '전자책으로 안 나왔으니까...'라며 합리화하는 자신을 봤다. 책을 살 때마다 후회와 욕망이 편을 갈라 싸우는데 언제나 돈 쓰는 쪽의 자아가 쉽게 이기는 걸 보면 욕망을 고집한 결괏값으로 후회가 태어나기 때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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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배치를 바꾸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테이블을 침대 아래쪽에 두고 테이블에 앉아 넷플릭스를 볼 수 있게 티브이를 구석에 붙였다. 감상이나 대사 따위를 적으면서 보는 게 언제부턴가 습관이 됐고, 그런 면에서 이런 구도는 퍽이나 실용적이다. 방 센터에 뒀던 테이블이 한쪽으로 빠지면서 사람 둘 정도가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자전거가 팔리면 조금 더 넓게 방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하여 이 자리를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다가 요가를 해보기로 했다. 몇 가지 동작을 따라 해 보고 가능성이 보이면 요가 매트도 살 예정이다. '요가가 몸에 좋다더라'는 얘기를 귀담아듣던 건 아닌데 문득 빈 공간을 보니 '요가 자리'라는 생각이 스쳤다. 모든 일이 그렇듯 계기는 우연하게 찾아오고, 그게 자신과 맞아떨어지면 일상의 좋은 루틴이 되어주는 게 아니겠나. 그러고 보니 엊그제 모 유튜버도 자연 속에 몸을 담그러(?) 가서 '명상이 그렇게 좋다'는 이야길 했었다. 뭔가 근육의 강직도를 높이는 쪽보다 이런 류의 이야기가 솔깃한 요즘이다. 기호의 갈래가 전보다 다양해지는 게 썩 반가운 한편 나이듦이란 이렇게 자연스러운 일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