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12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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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에 혹이 생겼다. 결절종이다. 볼록한 모양새가 제법 눈에 띄었다. 군대에서 얻은 질병이다. 몇 년에 한 번씩 생겼다가 없어진다. 이번에는 크기와 지속성이 심상찮았다. 정형외과를 찾았더니 "놔둬도 상관없는데 많이 올라오긴 했네요"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이후 권고에 따라 엑스레이를 찍고 물을 빼기로 했는데 엑스레이에서 뜻밖의 증상이 발견됐다. 뼈가 뭉쳤다나. 반투명해야 할 뼈 중간에 원형의 짙은 흰색 형상이 보였다. 보통은 보이지 않아야 할 증상이다. 보이더라도 99%는 이상이 없지만 만약을 위해 시간을 두고 재검을 받아보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갑작스러운 진단에 불안이 새어 나왔다. 화요일 오후라서 더욱 그랬다. 하지만 유달리 인자한 의사 선생님의 진단에 마음이 풀려버렸는데, 그 사이 주사기가 손등을 뚫고 들어와 현실감도 함께 돌아왔다. 손에서 나온 액체가 투명한 물이 아니라 찐득한 레몬색 슬라임 재질라는 사실이 조금 충격적이었던 오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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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저러니 떠들어도 전문성은 무시할 수 없나 보다. 밥벌이의 일환으로 윤문을 하다 보니 글과 관련해 의문이 생길 때가 있다. 유달리 읽기 어려운 문장을 접할 때가 그렇다. 특히 글을 쓰는 대가로 돈을 받는 소위 '프로'의 결과물이 아쉬울 때 이런 생각이 강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만큼은 기자에게 맡기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업계 바깥에서야 기자들을 무턱대고 욕하겠지만 나만 해도 조사의 쓰임 하나로 수차례 전화를 받은 적이 있고, (시스템이 갖춰진 조직의) 기자들 대부분이 이런 트레이닝 과정을 거친다. 글에 대한 민감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경제적인 글쓰기, 쉬운 문장을 고집하는 업계 특성도 기자들에 대한 신뢰도를 높인다. 콘텐츠에 대한 깊이와 별개로 글의 기본 형태에서 스트레스받을 일은 덜한 셈이다. 업무적으로 글을 접할 기회가 적은 사람들은 체감이 어렵겠지만 거듭 쓰고 고쳐야 하는 사람에게는 '기본'의 의미가 살갑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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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진보적인 조직을 기대한 게 잘못이었을까. 솔직히 '스타트'업이라서 기대했다. 규모는 작고 재정은 열악하지만 분위기는 밝고 조직 운영은 젊은 그런 곳 있잖나. 이런 이미지를 기대하며 지원한 곳에서 면접 보자고 연락이 왔다. 근데 하는 말이 가관이다.
"000 씨? 저 000 000 국장인데 오늘내일 중으로 면접되죠? 안돼? 우리가 일정이 되게 빡빡해요. 만날 사람도 많고. 빨리빨리 진행해야 한다고. 일 할 마음이 있으면 적극성을 보여보세요."
수화기를 통해 재직 중이라고 말했건만 이 무슨 무례함일까. 쉬고 싶으면 쉬는 게 조직 구성원의 권리라지만 이해관계도 없는 타인에게 이토록 급발진이라니. 내일 안으로 시간을 비워보라는 얘기에 그렇겐 못 한다고 즉답하고 싶었는데, 혹시 모를 인간관계를 위해 한 템포 쉬었다. 그리고 보낸 문자 메시지.
"도저히 시간이 안 된다. 좋은 인재 채용하시라. 건승을 빌겠다."
초면에 정뚝떨도 능력이라면 대단한 능력이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