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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IM Apr 28. 2022

연차 아닌 연차 같은 날

평일 아침은 이렇게 좋다

가방을 주렁주렁...


연차 내고 아침부터 카페에 앉았다. 집 앞이지만 절반쯤 놀러 나온 기분이 난다. 우리 동네의 좋은 점이다. 주거지가 산재했는데 묘하게 번화가의 질감이 있다. 혹자는 그 동네 대놓고 번화가가 아니냐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6년째 살고 있는 내겐 밸런스가 좋은 동네일 뿐이다.


아침부터 외출한 이유는 따로 있다. 마감해야 할 일이 남아서다. 클라이언트에게 자료를 받아야 처리할 수 있는 일이라 대기 중이다. 얼마 전 누군가를 대신해 출장을 가게 됐는데, 그 사이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을 내부에 부탁하고 갔더니 전혀 처리가 되어있지 않았다. 오늘처럼 쉬는 날 굳이 일을 기다리는 것도 그래서다.


원래라면 오늘 쉬면 안 됐다. 마감해서 결과물을 넘겨야 하는 날은 디자이너와 협업이 필요하다. 대화를 해야 하고 결과물이 오간다. 그래서 오늘 쉰다고 어제 말했을 때 회사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어쩌겠나. 나는 쉬어야 할 이유가 있었고, 그럼에도 펑크가 나지 않게 대기하고 있다. 내심 연차 왜 썼나 싶고.


반기지 않는 연차를 쓰기로 결심한 배경은 이러하다. 원래 두 사람이 하는 일을 계속 혼자 소화하다가 최근에 도움을 받았다. 사진작가 이야기다. 사진을 전담해주니 워딩이 편했다. 장비를 챙길 필요가 없었고 가방도 가벼웠다. 현장에서도 앉아있었다. 이런 일들을 계속 혼자 해왔다. 오랜만에 느끼는 편안함에 울컥했다.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 대부분이 그렇다. 그래서 사람들 대부분은 모른다. 사진 찍으면서 워딩 하려면 속된 말로 '쌔빠진'다. 혹은 현장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녹취한 뒤 따로 녹취를 풀면서 정리해야 한다. 품이 두 배로 든다. 사진 편집은 말해 뭐해. 이런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이 좀체 없다. 누가 사진을 하면서 글을 쓰겠나. 외로운 바닥이다.


그러다 뜻밖의 말을 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진 찍는 이'가 반가워서 "작가님 오니까 참 좋네요"라고 말을 건넸다. 사진기자를 그만둔 뒤로 나를 대신해서 사진 찍어주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작가는 그간의 사정을 물었고, 혼자 일했다는 말에 "사진을 찍으면서 취재가 돼요?"라고 반문했다. 역시 해본 사람만 안다. 글만 쓰는 사람들은 언제나 이 일을 당연하게 여긴다.


가는 김에 사진도...


이런 환경에서 어느 직원의 실수로 올해의 내 연봉 인상분을 미리 알게 됐다. 잠정치지만 회사에서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기본급이 적어 퍼센트로 보면 인상적이지만 총액으로 보면 소액이었다. 사진과 글을 같이 한 결과가 그 모양이라 사실 좀 실망했다. 사진을 빼면 사실상 내 글에 대한 평가치(급여 책정치)가 사회 초년생의 그것과 비슷했다. "엄밀히 말하면 경력이 크게 겹치는 부분이 없어서..."라는 게 아마 낮은 급여의 원인.


그래서 반쯤 포기했다. 탈언론 말이다. 쓰고 찍는, 지긋지긋한 언론계의 범주를 벗어나려고 어느 정도 발버둥 쳤는데 어중간한 노력으론 죽도 밥도 안 된다. 그나마 능력에 대한 보상을 하는 곳이 언론 바닥이고, 진흙탕이라도 그 언저리에서 굴러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어느 정도의 수익이 보장되고, 그로 인해 생활이 안정되면 미디어 스타트업을 소규모로 시작해보려 했다. 특정 주제에 대한 기사를 시리즈로 연재하고, 사진은 다큐 사진처럼 찍어서 웰메이드 콘텐츠를 제작하는 거다. 수익성과 별개로 싹을 틔워보려 했다. 그 시발점이 조금 늦춰질 듯하다. 대략적인 색채는 '브로드컬리'라는 출판사의 인터뷰들과 비슷하지만 콘텐츠의 결과 출판 방식은 다른, 가안만 짜 놨는데 배가 자꾸 표류하는 기분이 든다.... 역시 선장이 문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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