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 취한 합정

한 차례 고개를 떨구고서야

by OIM

정신을 못 차리고 잤다.

졸았다고 말하기 민망하게 머리를 휘청휘청.

눕지만 않았지 잔다고 광고했다.

어제와 같은 카페,

스벅에서 쓴다.


<합정과 홍대 사이>



1.

조금 늦게 잤더니 여파가 그대로 오후를 덮친다. 물먹은 솜처럼 몸을 늘어뜨리고 정신을 간신히 가눈다. 이런 노력은 쓸 데 없이 시간을 잡아먹는다. 폰게임 없이도 시간이 훌쩍. 8시가 되어서야 기록을 시작한다. 정. 신. 차. 리. 고.


2.

오늘도 어제처럼 출퇴근을 마쳤다. 일과처럼 찾은 곳에서 샌드위치를 시켰다. 커피도 먹는다. 할인된다. 예기치 않은 결과에 기분이 좋다. 그게 뭐라고.


3.

스벅 카드를 찾는다. 백수 때 스벅을 애용한 덕분에 무려 골드회원이다. 한동안 잊고 있던 카드를 모처럼 충전하려 가방을 뒤진다. 없다. 신용카드, 은행카드, 보안카드, 기자증 등 별별 게 다 있다. 스벅만 빼고. 찾으면 꼭 없다. 이런 식이다.


4.

상관없다. 걸신처럼 빵을 먹고 이내 졸았다. 허기가 가자 졸음이 왔다. 어제 늦게 잔 탓이라고 생각해본다. 특별히 한 일도 없는데 잔 시간만 늦었다. 늦잠이 원래 그런 것 아니겠나. 편하게 생각한다.


5.

오늘 있었던 일을 정리한다. 새 직장 출근 이틀째, 다른 회사에서 면접 제의가 왔다. 보다 크고 조금 유명한 회사다. 타이밍 하고는. 잠시 투덜거리고 주변에 조언을 구한다. '못 먹어도 고'. 아니 못 먹으면 나는 뭐가 되나. 뭐 그렇다.


6.

면접을 보려면 지금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 기회비용이 크다. 허나 연봉 차이도 크다. 아직도 이 회사는 계약서를 내밀지 않는다. 별 거 아닌 상황에 미묘한 일탈을 꿈꾼다. 아직 잠이 덜 깼나.


7.

내일은 아마 결단을 내려야 할 터. 오늘 밤이 고비의 산등성이, 고민의 클라이맥스.

이 얘기는 여기까지만.


8.

전 직장 동료, 이를 테면 '거래처 직원'으로 하자. 기자에게 거래처 직원이 어딨겠냐만 어쨌든 그런 걸로 하자. 타사 선배나 기업 관계자 등에게 연락 왔다. '언제 그만뒀냐, 생각나서 연락했다, 꽃길 걸어라' 등이 주된 내용이다. 고마운 한편 아주 못살지 않았다는 방증 같아 어깨뽕 살짝.


9.

주말 전까지 살 집을 구해야 한다. 토요일엔 고향에 내려가 쓰던 짐을 차에 싣고 고속도로를 타야 할 판. 안 그래도 이 문제로 어제부터 신경의 한 축을 빼앗겨있는데 난 데 없는 면접 제의로 사고 회로에 혼선 왔다.


10.

머리가 이렇게 복잡한데 '브런치'에선 어제 쓴 일기를 '직장인 현실 조언' 섹션에 욱여넣었다. 앞선 글을 썼을 때 비해 갑자기 방문자가 늘었다 했더니 운영진 탓. 하지만 내 글은 섹션을 구분하기 힘든 푸념에 가깝다. 주로 그렇다.


11.

한 때 이런 식으로 '작가' 호칭 달고 글이 노출되는 것을 꺼렸다. 정제된 글을 써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있었다. 네이버로 돌아간 이유이기도 했다. 허나 뭐 어때. 그런 생각으로 다시 일기를 쓴다. 신나게 쓰자.


12.

일요일엔 아는 형이 결혼한다. 모처럼 받은 연락에 맞춰 모처럼 서울로 이사했고, 모처럼 출근하고 있으며 모처럼 근처에 있다. 빠지기 미안할 정도로 '모처럼'의 연속이다.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이사를 서두를까 보다.


13.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느낀 게 있다. 일에서 만족을 찾으면 일상의 리듬이 때때로 요동친다. 삶의 주도권을 직장 상사나 업무에 내어준 것처럼 불쾌해지기도 한다. 어떤 식으로든 행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연인이든 가족이든 취미든 수지타산을 따질 필요가 없는 일상의 모든 것을 좀 더 소중히. 그게 감정적 적금 같은 건 아닌지 문득 생각이 든다.


14.

"남자 서른에서 서른다섯 사이가 가장 잘 팔리는 시기"라는 말을 들었다. 근거 없는데 묘하게 믿고 싶어 지는.


15.

그나저나 어느 동네에 살아야 '대박' 소리를 들을까. 대박, 대박 하던 양반이 빵에 들어갔으니 의미 없으려나.


16.

내일은 안정과 모험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당장 계약할 수 있는 집도 살펴봐야 한다. 그 두 가지가 골자라면 골자랄까.


17.

계획했던 일을 해냈을 때 게임처럼 보상이 주어지면 좋겠다. '띠링'하고 말이다. 넘나 두서없는 생각, 그치만 가끔은 괜찮은 망상으로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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