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은 반전!
한밤 중 운동 가다가 느린 걸음을 옮기는 할머니를 봤다. 자신만의 속도로 골목길을 걸어가던 그는 내가 골목 끝에 다다랐을 때도 바지런히 길가를 걷고 있었다. 나는 이 할머니를 보면서 우리 삼촌을 떠올렸는데 어쩐지 이유는 생각나지 않았다.
지금은 돌아가신 삼촌은 내가 어릴 적부터 몸이 아팠다. 코흘리개 시절 나는 삼촌이 '아픈' 건지 '약한' 건지 알 수 없었고 그 사실이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아주 작았을 때부터 우리 집에 함께 살았던 삼촌은 건강이 많이 안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삼촌이 특별히 운동을 하거나 격렬한 행동을 하는 걸 한 번도 본 적 없었고 그게 이상하지도 않았다. 삼촌은 아팠고,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그 정도 나이 때의 시선에 나는 삼촌을 투영했던 것 같다.
그러다 어젯밤 갑자기 삼촌이 떠올랐다. 울다 지쳐 쓰러지는 일을 삼 일간 반복하면 마음속 응어리를 비워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그보다 훨씬 본질적인 고통에 몸부림쳐야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내게 알려준 그 삼촌이 말이다. 노화로 인해 느리게 걸을 수밖에 없는 할머니에게서, 평생 건강의 제약을 안고 살았던 삼촌이 겹쳐 보였다. 삼촌도 꿈을 꿨을까.
암 진단을 받고 죽어가는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 "어제까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려고 무던히 노력해왔지만, 오늘 나는 어제의 나를 목표로 하는 게 고작이다" 갖은 고생 끝에 영예와 부를 눈 앞에 둔 사람이 암에 걸린 뒤 그저 정상적으로 걷거나 일상생활을 할 수 있길 바라게 되면서 읊조린 말이다. 삶을 통째로 뒤흔드는 변곡점 너머에 '꿈'이란 어떤 형태로 존재할까.
아이와 동물을 사랑했던 삼촌은 첫 조카인 누나와 나를 아꼈다. 삼촌은 내가 고2 때 자신의 일터에 나를 데려가기도 했다. 나는 삼촌이 운전하는 동안 줄곧 옆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삼촌이 묻는 말에 대답이나 했던 것 같다. 나는 삼촌에게 한 번쯤 '무엇이 되고 싶었냐'고 묻고 싶었다. 아마 저때가 적기였을 거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입밖에 꺼내지 못한 채 삼촌을 놓치고 말았다.
삼촌도 시골 어느 한적한 마을에서 태어난 꿈 많은 소년이었을 거다. 형제들 사이에서 악다구니를 써가며 유년 시절을 보내고, 주름이 늘 때쯤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도 했을 테다. 내가 삼촌의 조카가 되기 이전 삼촌은 삼촌만의 꿈을 가슴에 그렸을 거다. 누구나가 늙어가고 또 죽어가는 생의 과정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을 아픈 삼촌도 신나게 그리곤 했을 거다. 아마 그랬을 게다.
나는 후회인지 그리움인지 모를 무엇을 들고 비 갠 하늘이나 올려다봤다. 할 말은 많은데 사람이 없는, 별도 없는 뭐 그런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