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괜찮다며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 선풍기 틀어놓고 책 읽는 게 왜 이리 좋은지.
베란다 창과 화장실 문을 통한 바람에 졸음이 쏟아진다.
마시다 만 커피를 탁자에 올려두고 읽던 책으로 배를 덮은 채 단잠에 빠지면,
꿈결도 혹서기라 금방 깬다 하더라.
더워.
1.
놀고먹는 생활로 두 주가 지났다. 그동안 규칙 없는 생활로 리듬이 무너졌다. 시간 감각이 무뎌진 것도 같은 이유다. 문득 '한 주가 지났다'고 적다가 글자를 고쳤다. 벌써 보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언제 이만큼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새삼 시간 가는 게 두렵다.
이직한 곳을 박차고 나온 뒤 첫 주는 쉴 생각이었다. 둘째 주부터 구직에 나서고 이번 주쯤 면접을 볼 계획이었다. 지난주 거의 가뭄에 가까운 구직난 속에 두 곳을 찾아 넣고 결과를 기다렸다. 한 곳은 탈락, 한 곳은 아마 면접을 보게 될 듯하다. 아직은 예상이다.
오늘 아침 두 곳 중 한 곳에서 연락 왔다. 포트폴리오 등을 다시 보내달란다. 제출서류를 재요청하는 걸 보면 면접 후보군에 올랐다고 해석돼도 좋을 듯하다. 다만 서류를 재송고한 뒤 반나절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조금 애매한 상황에 처했다고 보는 게 맞다. 탈락인가.
2.
그나마 연락 온 곳은 두 곳 중 후순위로 둔 회사다. 그래서 희망연봉 자체를 다소 상향해서 지원했다. 어차피 되든 안 되든 큰 의의를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바로 직전 회사에서 출근 첫날 연봉을 후려친 탓도 있어 보험 측면에서 급여를 올려 적기도 했다. 희망 연봉에서 너무 많이 깎지 못하도록 말이다.
근데 연락 왔다. 오라는 곳은 안 오고, 안 와도 그만인 곳에서 연락 왔다. 이런 상황을 하루 이틀 겪는 것도 아니지만 늘 실망스럽다. 물론 두 곳다 안 오면 훨씬 실망스러울 테다. 어쨌든 서류를 다시 달라고 하는 문자를 받고 급하게 답장을 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열대야로 자다 깨는 일을 반복하는 요즘 아침잠이 많아졌다. 잠결에 회사 문자에 답장을 했는데 실수가 있었다. 서류를 보냈다는 문자를 보내려고 창을 다시 열어보니 문자 마지막에 "(중략) 감사합니다."라고 적어야 하는 것을 "(중략) 감사합니다ㅋ"라고 보내 놨다. 오픈사전에나 등장할 'ㅋ'이라니.
어째서 마침표 자리에 'ㅋ'이 있는지 알 수 없다. 'ㅋ'은 평소에도 잘 안 쓴다. 무의식이라고 해도 이상하다. 결국 잠에 취해 실수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근데 하필 눈에 띄는 오타도 아니고... 설명하기도 애매하다. 무척이나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여겨주기를 다소 바라고 있다.
3.
지금은 오랜만에 스벅에 와 앉았다. 연희 DT다. 스벅은 가게 되면 늘 거기서 거기다. 최근 스벅 대각선 맞은편에 생긴 앤트러사이트 연희점에 다녀왔지만 글 쓰러 다시 가게 될지는 불확실하다. 이색적인 분위기에 세련됐고, 커피 가격도 저렴했지만 사람들 대부분이 그룹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그런데 재밌는 일이다. 모처럼 찾은 스벅이 한산하다. 이 시간엔, 특히 여름날 이 시간엔 사람으로 붐비던 스벅이 한산하다. 추측컨데 앤트러사이트 탓이 아닐까 싶다. 위치상 스벅에 정면 도전하듯 들어선 것도 그렇고 카페로 춘추전국을 이루는 연희동의 동네 분위기와도 어우러진다.
손님이 평소보다 1/3 정도 줄었다. 감소한 매출이 저쪽에 보탬이 됐는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 묘한 상황이 싫지 않다. 오히려 흥미롭다고나 할까. 한국에서 고유한 방임 문화로 세를 불려 가는 스벅에 정면으로 부딪친 앤트러사이트가 흥하다니. 오는 길에 바라본 그곳엔 적지 않은 손님들이 있었다.
4.
커피를 위해 연희동을 찾는 이들을 위해 혹은 연희동을 찾았다가 커피를 마시려는 이들을 위해 쓴다.
앤트러사이트 연희점은 독특한 콘셉트로 미술관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공간을 넓게 사용해 바게트 빵 같은 긴 테이블이 메인이다. 그 외 걸터앉을 수 있는 긴 의자형 테이블이 이어져있다. 총 2층이며 직감적인 인테리어에 비해 편의성은 높지 않다. 입구나 내부 안내 등 남는 공간을 '공백'으로 채운 느낌이다.
커피 종류는 '필터'와 '라테'로 나뉜다. 원두 종류가 8종 정도 된다. 원두를 고르고 필터로 할 건지 라테로 할 건지 주문하면 된다. 나는 '파블로 네루다'를 라테로 마셨다. 맛이 꽤 괜찮았다. 가격은 필터 4,000원, 라테 4,500원이다. 다른 음료도 몇 있으나 가격도 종류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커피는 1층에서 주문하면 된다. 자리로 가져다준다. 그 탓에 직원들이 끊임없이 오간다. 하지만 그들은 매우 친절하다. 웃는 얼굴로 상냥한 설명을 해준다. 그 정도로도 카페를 선택할 기분 좋은 이유가 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있다. 주문한 커피를 마시고 1,000원을 더 내면 필터 커피를 리필해준다.
건물 입구에는 10여 대 정도 주차할 공간이 있다. 쓰레기통이 따로 없어 다 마신 커피는 한 편에 치워두고 나가거나 자리에 두고 가면 직원이 치워준다. 실제로 직원이 자리에 두고 가면 된다고 말했다. 아직은 가오픈 기간이라고 한다. 가족 단위 손님과 여기저기 사진 찍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덧) 집에 오는 길에 보니 야간 분위기도 꽤 괜찮은 듯. 약간 어둑한데 분위기 있어 보인다. 조만간 가보는 걸로.
5.
90분쯤 뒤에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돌아가면 초파리들이 기다린다. 젖은 쓰레기가 생기면 여지없이 발생하는 이것들은 어지간히 사람을 괴롭힌다. 책 볼 때 집중력 깨는데 선수다. 자려고 누우면 얼굴 박치기도 잘한다. 영화 보려고 불 끄면 모니터 '와리가리' 쩐다. 성가시다.
얘네 탓에 쓰레기 봉지도 덜 찼는데 버렸다. 이후 젖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있지만 아직도 방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잠시 뜸해졌다 싶었는데 다시 돌아왔다. 방에 파리를 들인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이상하게 모기와 초파리는 출입이 잦다. 월세라도 내든가.
6.
넘치는 시간으로 빈둥거렸더니 독서에 속도가 붙는다. 일주일간 세 권 읽었다. 네 권째 읽는 중이다. 그 결과 읽기 힘든 유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회과학책은 서술 방식이 고리타분하면 급격히 흥미가 떨어진다. 에세이는 저자와 공감코드가 어긋나면 거의 활자만 읽는 수준에 그친다.
최근에 소설은 안 읽어서 모르겠다. 강동원이 출연했지만 아쉽게 흥행에 실패한 영화 <골든 슬럼버>의 원작자 이사카 코타로가 쓴 소설들은 희한하리만치 잘 읽힌다. 반면 어떤 소설들은 진도가 잘 안 나간다. 소재의 차이일까. 기분 탓일지도 모른다. 마땅한 원인은 아직 찾지 못했다.
빌린 책을 다 보면 읽으려고 벼르는 인문학 책은 쉽게 읽을 수 없을 것 같다. 태어나서 자의로 사본 거의 첫 글쓰기 책인데 내용이 딱딱하다. 다만 굉장히 좋은 구문이 많다는 이야기를 어느 SNS에서 보고 구입해서 완독을 목표로 하고 있다. 꾸역꾸역 알약 삼키듯 명문을 흡수할 계획이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이사카 코타로' 정보를 찾다가 방금 알게 됐는데, 지난달 19일 강남에서 '북 토크'를 하고 갔다. 전혀 몰라서 가려고 시도조차 못해본 게 갑자기 조금 원통해졌다.
7.
기자 하는 애들인가 누군가 장강명 작가의 이번 책 <당선, 계급, 합격>에 주옥같은 말이 많다고 해서 빌려왔다. 이번에 읽을 차롄데 부디 술술 읽혔으면 좋겠다. 필드에서 만났으면 '선배, 선배' 했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도 기자 출신인 만큼 공감대는 적지 않을 거다.
그와 별개로 도서관에서 회심의 한 권으로 정했던 <석가의 해부학 노트>는 펼쳐보지도 못했다. 누나한테 모처럼 빌려온 "비싼" 해부학 책도 그대로 책장에 꽂혀있다. 샤프를 쥐지 않은지 몇 년은 된 것 같다. 연필은 더 오래됐다. '어차피 그림 재능은 누나가 다 가져갔다'는 체념 아래 시도조차 하지 않다가 최근 마음을 바꿨다. 노력은 늘 목표의 지근까지는 데려다주니까, 조금 해보기로 했다.
4B연필이나 스케치북은 '오버' 같다. 미대 출신인 누나는 스케치북을 사라고 조언했지만 왠지 거창하다. "그림에 대한 목마름이 있냐"고도 누나는 물었다. 시시때때로 마시고 싶은 게 달라진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도움을 안 줄 것 같아 답은 안 했다. 그림이 취미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8.
기다리던 블랙베리 '키투'의 사전예약이 시작됐다. 아직 쓸만한 아이폰6s를 두고 폰을 사려고 하니 명분이 안 선다. 단지 남은 약정 기간이 없다거나 폰이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는 지출을 늘릴 수 없다. 지난달에는 카메라도 샀다. 심지어 난 지금 백수 아닌가.
근데 손이 근질거린다. 신제품을 써보고 싶은 욕심도 크지만 예전에 Q10을 쓰면서 느꼈던 직관적인 블랙베리의 인터페이스가 그립다. ......이런 식으로 이유를 만드는 중인데 마땅치 않다. 사전예약 기간에 신청해야 케이스도 주는데 기간을 놓칠까 벌써부터 '쫄린'다. 하필 이 기간에 백수라서 분하다.
9.
인스타와 브런치의 콘텐츠를 구분하다 보니 쓸 말이나 사진을 중복하지 못해 조금 궁해지는 감이 있다. 기분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