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과 찜질방과 독서와 나머지들
난 데 없이 여유를 부리게 된 날들의 기록.
1.
'할만한 곳' 두 곳 넣어놓고 기다린다. 공채로 들어간 언론사를 나온 이후 별다른 노력 없이 들어가는 곳을 노리고 있다. 서류-필기-실기-2차 실기-면접으로 이어지는 전형을 근 50일 간 치르고 기자가 됐다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나 의문을 갖게 됐다. 이후 글로 밥벌이를 하는 일 정도의 타협안을 세우게 됐는데 워라밸은 지키고 싶은 소망이 있다.
1-1.
월 500만 원 정도를 실수령 하는 친구를 보니 'x발x발' 욕해도 업무강도나 스트레스 대비 임금이 받쳐주면 '그래도 할만하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 같다. 친구도 잔업과 주말근무 등을 포함해 300만 원 정도를 수령하다가 이직과 함께 연봉이 대폭 올랐는데, 과거엔 "못해먹겠다"는 소리를 종종 하더니 요즘은 "그래도 해야지"라는 말로 대화가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물론 "힘들다"는 말은 여전히 달고 산다.
1-2.
직장을 구하면서 세운 조건 3개 중 2개가 상충된다. 조건이래 봤자 글 쓰는 일, 일정 수준 이상 연봉, 워라밸 보장 정도인데 첫 번째와 세 번째는 동시에 지켜지기 힘들다. 어째서인지 글밥 먹는 사람들은 워라밸이 보장되지 않는 일에 너그럽기까지 한데, 한때 면접 자리에서 편집장에게 그런 말도 들었다. "글 쓰는 일을 하면서 자기 시간이 보장되길 바라는 건 모순 같은데... 무슨 말인지 알죠?"
1-3.
애석하게도 무슨 말인지 안다. 편집장이 한 말의 시비보다 활자 노동자 시장의 생리란 게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나는 그나마 오롯이 직장만으로 고소득을 노리지는 않겠다는 타협안을 스스로에게 제시했는데 돈 덜 벌겠다고 또 좋아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근 몇 년간 이 바닥 고용 현황을 살펴본 결과 임금이 낮아도 너무 낮은 수준인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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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로 글쟁이 명함을 가지되 다른 일과 병행하자는 결론에 도달했는데 이 경우 워라밸 저지선이 붕괴될 수 있다. 워라밸을 포기하면 소득은 눈에 띄게 증가하는가. 그것도 장담할 수 없다. 생활하기 벅찰 정도의 저소득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일을 선택한 것이 직장 이상의 소득을 안겨줄 것 같지는 않다. 아, 이 무슨 딜레마란 말인가.
2.
남아도는 시간으로 찜질방에 갔다. 고양 스타필드의 아쿠아필드라는 곳인데 꽤 비싼 가격 탓에 아주 가끔 간다. 이번에는 동네 찜질방 가려다가 의도치 않게 발길을 돌리게 됐는데 주중이라 비교적 한산했다. 입장 전, 평일 낮시간이면 아기들을 데리고 온 가족 단위가 많겠다 싶었는데 역시나였고 목욕탕에도 아빠들이 주니어를 한 명씩 붙여 다녔다. 졸졸졸.
2-1.
매년 명절 때 목욕탕에 가서 느끼는 기분을 여기서 또 느꼈다. 작은 탕에 아빠와 아들 또는 할아버지와 아빠와 아들 등 2~3대가 함께 들어앉아있는 걸 보면서 유전자의 힘에 놀라곤 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판박이 수준의 성인 남성과 아기들이 쌍쌍이 몰려다니는 걸 보니 왠지 모를 따스함이 몰려왔다. 그중 아이를 씻기는 젊은 아빠의 노력은 가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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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놀이 재미있었지?" "xx이 졸려? 집에 가면 아빠랑 얼른 자자~" "어어어, xx이 자면 안 돼. 안돼. xx아 자면 안 돼~!" "많이 졸려? xx아 지금 자면 다쳐. 집에 가서 자자" 옆칸에서 아이를 씻기는 또래의 아빠는 부단히 아이를 깨우려 노력했고 2~3살 남짓의 아이는 목욕탕 의자에 앉아 졸린 몸을 기우뚱거렸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욕탕에서 아빠에게 이것저것 묻던 아이는 그렇게 스르륵 단잠에 빠졌다.
2-3.
젊은 아빠들은 잘 뛰지도 못할 나이 때 아이들의 질문에 차분히 대답을 이어나갔는데 그 모습이 마치 현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삶이란 걸 물려주는 과정인 것만 같아 괜히 마음이 벅차올랐다. 이 고양된 감정은 1980~1990년대 우리네 아빠들도 이런 과정을 거쳤을 거라는 생각에까지 미쳤는데, 문득 아기들도 자라면 저들과의 대화가 단절되는 건 아닐까 궁금해졌다. 그런 면에서 소통과 단절은 성장의 자연스러운 과정인가 싶기도.
3.
독서량이 계획에 못 미친다. 올 들어 대략 7~8권 읽은 듯한데 예상보다 한참 떨어진다. 책 읽고 쓰려던 서평에 은근 압박을 받은 듯하다, 라고 자위 중이다. 사거나 빌린 책은 많은데 의욕을 행동이 못 따라가는 중이다. 적은 양이나마 읽으며 그나마 거둔 수확은, 무턱대고 읽다간 정작 읽고 싶은 책을 후순위로 미루게 되기에 독서도 나름 전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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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몇 권 읽었나 보려고 책장을 살피다가 뜨악했다. 같은 책이 두 권 있다. 샀다는 사실을 잊어먹고 있다가 또 사온 모양이다. 먼저 구입했던 책은 심지어 언제 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반납한 걸로 기억해서 다시 사 왔던 책이 버젓이 책장에 꽂혀있을 줄이야. 그나마 새로 사 온 책은 사자마자 다 읽어 아까운 맛은 덜했는데 무척이나 재미가 없어 서평을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책이 책장에 두 권.
3-2.
이와 별개로 <숨결이 바람 될 때>(폴 칼라니티 저)는 수작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한 자서전적 성격의 책으로 삶에 대한 고찰이 돋보인다. 죽어가는 의사의 마지막 순간이란 문구를 통해 '의사의 시각'을 엿볼 줄 알았던 나는 크게 한 방 맞았다. 저자는 의사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죽음을 담담히 마주한다. 그 고민과 표현의 깊이는 책을 추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책. 추천사를 쓴 인물을 통해 내용의 결을 짐작해볼 수 있다.
마종기(시인, 의사)
"내가 의사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중략)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너무나 큰 행운이었다"
이해인(시인, 수녀)
"문장 하나하나가 어찌 그리도 간결하게 시적이며 애틋하고도 현실적인 아름다움으로 빛나는가"
이국종(교수, 의사)
"의사들은 정도의 경중이 있을 뿐 언제나 일정 부분 남의 삶과 죽음에 관여한다. 이 글도 다른 의사들이 통상적으로 쓴 글처럼 삶과 죽음에 대한 치열한 기록이지만 이토록 깊고 아픈 의사의 글은 본 적이 없다"
이 교수는 추천사 말미에 이 책의 저자를 "정말 만나고 싶다"라고 썼다. 하지만 저자는 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이 교수도 "그러기에 너무 늦은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라고 덧붙인다. 그의 죽음을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애도하는 이유를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3-3.
박선영 전 한국일보 기자가 쓴 <1밀리미터의 희망이라도>를 보면 박 기자의 글맛과 함께 여기자로 살아가는 의미를 느낄 수 있다. 원체 글을 깔끔하게 쓰는 사람이라 내용에 관계없이 글이 술술 읽힌다. 이런 장점 아래 그의 글을 보면 나처럼 '출산'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볼 기회도 생긴다. 그는 여성이자 기자로 살면서 출산의 사회적 맥락을 짚었다. 저출산 시대의 애국이자 근거리(직장)에 있는 이들에겐 우환 같은 소식이 바로 '임신'이다. 또 세 아이(남편 포함)를 둔 엄마로서 기자를 계속하고 싶은 욕망을 솔직하게 기록했다. 그 현실적 고백은 여자 이전에 사람으로서의 삶을 곱씹어보게 한다.
출산은 육아와 이어지고, 그 연결고리 앞에 무수히 무너져 내린 여성의 한 개인으로서의 욕망은 다른 가치와 저울질당하며 사회적 눈물을 삼켜야 했다. 이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젠더이슈가 좀먹기 전에 제도적으로 보완할 방안은 없는 걸까. 방안이 없는 건지 의지가 없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자기 자식의 부모가 되는 그 순간에 꿈과 자식을 두고 갈등하게 하는 사회가 '굉장히' 잔인하게 다가왔다. 이 대책 없는 사회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본격화된 이래 얼만큼의 꿈들을 가로막았을까. 그 꿈이 좌절되는 순간의 원념이라도 긁어모았다면 요괴가 돼도 대요괴는 됐겠다.
4.
최근 익명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직장인 앱 '블라인드'나 각종 커뮤니티, 뉴스 댓글 등을 열심히 보고 있다. 딱히 보려고 노력 중인 건 아니고 그냥 본다. 그러다 사람들의 의견에서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블라, 커뮤, 뉴스 모두 해당된다. 화제에 따라 다르지만 사람들이 타인을 상처 입히는 말을 쉽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진리의 사바사겠지만 민감한 주제가 등장하면 거의 피아식별하는 수준으로 다퉜다. 상대와 의견이 다르다는 게 확인되면 기본적으로 조롱을 섞는 데다 가족 안부나 지능 확인 시도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분법은 이 세계 논리의 끝판 왕이다. 그걸 반복적으로 보고 있으니 머리가 아팠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지인은 "안 보면 되지 않느냐"라고 조언했는데, 사실 그러면 되긴 된다. 읭?
5.
얼마 전 직장 탓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고 적었다. 이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인 사건이 어제 일어났다. 맞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이다. 이 일로 커뮤니티 등은 양분돼 싸웠다. 최저임금 못 맞춰줄 자영업자는 경쟁력이 없는 것이란 말과 인건비 상승으로 영세 자영업자 다 죽이는 결정이란 의견이 맞섰다. 시간당 노동가치를 따지는 일의 사회적 파장은 워낙 복잡다단하게 일어나 특정 의견에 기다 아니다 두부 자르듯 할 수 없다. 그러나 최저임금이 마치 우리나라 노동자의 임금 산정 기준이 되는 듯한 풍토는 언제부터 정착됐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수많은 업자들이 너무나 당연한 듯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임금을 정하지 않나. '최저'임금인데 말이다. 노동문제는 어쩌면 다른 어떤 분야보다 훨씬 생계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만큼 사안을 대중에게 풀어서 설명해주는 역할도 충실해야겠다 싶다. 정부는 좀 더 미디어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6.
카카오톡 채널에 글이 노출돼 유입자가 갑자기 늘어나면 아직도 조금 부끄럽다. 한 번 노출된 이후 노출 빈도가 증가한 것 같기도 하고...
7.
브런치엔 글 쓰고 인스타그램엔 사진을 올린다. 그날그날 기분 따라 사진과 짧은 감상을 함께 올리기도 한다. 대략 9장 정도를 올리며 우리나라엔 인스타를 사업에 활용하는 분들이 많다는 점을 새삼 느꼈다. 또 단순히 사진만 올렸을 때보다 짧은 감상이나 글을 함께 남겼을 때 반응이 더 좋은 듯하다. 딱히 유입자를 늘리겠다거나 무엇을 할 거란 계획이 있는 건 아니지만 흥미로운 결과라서 기록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