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이 간다
다래끼 경과 보러 안과에 들렀다. 의사가 오늘 오면 추가 치료 여부를 알려준다고 했는데, 이 때문에 아무래도 방문이 꺼려졌다. 여기서 말한 '치료'가 눈꺼풀에 놓는 주사를 의미하는 탓이다. 얇은 피부에 약을 주입하다 보니 조금 아플 거란 말을 함께 들었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지난번 건강검진 때 피 뽑는 광경이 시각적으로 달갑지 않았다. 피부에 바늘이 박히고 꿀렁꿀렁 붉은 피가 빠지는 기분이란. 하물며 이번엔 눈꺼풀이라니 꺼려지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쫄아서 그런 건 아니고.
다행히 검진은 2분을 넘기지 않았다. 경과가 좋아 관리만 잘해주면 된다고 의사가 말했다. 별다른 치료 없이 안구에 붉은빛(?)을 쐬어줬더니 기분이 조금 좋아졌는데, 이게 병원의 쾌적한 기온 덕분이었단 걸 신촌역으로 나오고 나서야 깨달았다. 오늘도 여름이 한창이구나.
앤트러사이트 또 왔다. 물론 연희점이다. 혼자 오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에 왔을 때도 커플이나 가족 단위 손님이 많았다. 혼자 랩탑을 가지고 오는 게 낯설 것 같았다. 맞은편에 있는 스벅과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왔다. 근데 생각보다 괜춚?
사람이 별로 없다. 평일 낮 시간에 있어야 얼마나 있겠냐만 예상보다도 훨씬 적다. 그야말로 한적하고도 쾌적하다. 인터넷이 살짝 느린 편이지만 글 쓰는 정도엔 문제없다. 그보다 홍대나 이태원에서 볼 법한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패피나 힙스터들이랄까. 역시 핫한 곳은 다른가 보다.
오늘은 오랜만에 파블로 네루다를 시켰다. 올 때마다 컨디션이 별로라 먹지 못했던 그 커피다. 다만 오늘도 필터 커피는 안 되고 라테만 가능하다고 했다. 나쓰메 소세키와 잠시 갈등했지만 결국 네루다로. 앤트러의 가장 큰 장점은 원두 선택 폭이 넓다는 건데 원두마다의 맛 차이가 뚜렷해 골라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고 보면 어째서 커피 종류에 문인들의 이름이 붙은 걸까. 나쓰메 소세키에 파블로 네루다, 윌리엄 블레이크라니. '나 오늘 소세키 먹었어'는 아직도 어색하다. 네루다 먹었어, 윌리엄 마셨어 등 외국으로 치면 '쌍화차는 윤동주로, 당귀차는 이육사로 주세요' 같은 느낌일까.
덧) 지난번엔 여기서 유호진 PD를 봤다. 의외로 컸고, 생각보다 건장했다. '1박2일' 막내 피디 때 모습을 상상했더니 괴리가 컸다. 그는 일요일이었음에도 사원증 같은 걸 목에 걸고 있었다. 다만 그 누구도 아는 척을 하지 않았는데, 그는 동행과 함께 잠시 커피를 마시다가 자리를 떴다. 여의도에서 이까지 웬일인가 했더니 2016년 K를 퇴사한 걸로 나온다. 지금은 상암에 있는 제작사에 다니는 모양이다. 나영석 PD의 길을 밟는가.
제주도에 기자 자리가 떴다. 신생이지만 제주 지역 언론사가 제시하는 급여 대비 20~40% 높은 수준의 급여를 제시한다. 따지고 보면 얼추 서울에서 받을 수 있는 급여와 비슷한 수준이다. 좀처럼 없는 기회에 마음이 동한다. 2년 전 공채로 들어간 언론사에서 나온 뒤 제주행을 결심했지만 실패한 적이 있다. 제주 모 언론사에 지원해 최종 합격했지만 급여 수준이 맞지 않아 입사를 거절했다. 이후 잊었던 도시 제주가 다시 떠오른다.
김칫국은 내가 또 잘 마신다. 지원서 쓰기도 전에 제주 시내 집을 알아봤다. 때마침 20층 건물의 19층 방이 전세로 나와있다. 대출 끼고 살면 나쁘지 않을 오피스텔이다. 실제 사진인지 모르겠으나 창밖으로 저 멀리 바다도 보이는 듯하다. 어쩔. 2년 전 제주행을 선행한 누나에게 물어보니 베란다론 바다가, 부엌에 난 창문으론 한라산이 보인다고 했다. 그때의 부러움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이 같은 나래를 펼치는 이유는 김칫국이 실현될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덕분이다. 나는 (아마) 언론사 종사자치곤 가성비가 높아 중소 언론사에서 선호하는 인재상에 해당한다. 분야별로 기사를 써본 데다 일간지에 게재될 정도의 사진 취재 경험이 있어 1명 몫을 주고 1.5명 이상의 노동량을 뽑아낼 수 있다. 때문에 사진기자를 따로 뽑기 어려운 여건의 언론사는 특히나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지원 여부다. 지금 제주로 내려가게 되면 서울에서 하고자 했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게 곧 제주 생활의 또 다른 출발점이 될 수 있겠지만 누리던 것들을 내려놓는 일은 항상 쉽지만은 않다. 제주에 뿌리내릴 것인가를 생각해봐도 사실 잘 모르겠다. '가능하다'는 정도지, '그래야만 한다'는 확신은 들지 않는다. 일전에 제주행을 고민했을 때도 느꼈지만 제주를 '여행자'로 겪는 것과 '도민'으로 겪는 것엔 많은 온도 차가 있다.
단순히 서울 생활에 염증을 느꼈다거나 조금 더 평온한 생활을 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제주행을 결정할 수 있을까. 물론 바다가 보이는 집 베란다에 앉아 글을 쓰면 요구르트 먹은 날의 배변활동처럼 쭉쭉 뽑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것이 단순히 기대에 찬 허상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기대만큼의 소득 이면엔 반드시 후회를 부르는 상실이 있다. 그게 두려울 따름이다.
어디로 가든 슬슬 다시 일해야겠다. 쉬는 기간이 길어지면 감이 죽는다. 노동 의욕에 대한 내성도 생긴다. 밥벌이를 위한 모든 감각이 앓아눕기 전에 전이든 지단이든 뭐라도 부쳐야 한다. 단지 '기자직'만 피해보자는 심정인데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 글과 사진을 하면서 기자가 아닌 일이 뭐가 있으려나.
시중에 판매하는 문학잡지 중 '악스트(AXT)'라는 게 있다. 작가들의 단편이나 시각, 특정 작가와의 인터뷰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출간 초기 (문예지 치고) 신선한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 등으로 입소문을 탔다. 문학의 대중화에 기여한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격월로 발행되는 이 잡지를 이번에도 한 번 볼까 해서 서점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지난 호에 비해 가격이 3배 이상 뛰었다. 가격을 마케팅 요소로 넣었던 이 잡지는 '마진이 남느냐'는 독자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2,900원에 판매해왔다. 그러다가 갑자기 가격이 너무 오르자 나 같은 반응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한 블로거는 이번 가격 인상을 이렇게 평했다. '분량 증가와 새로운 시도 등은 눈에 띄지만 급증한 가격 대비 구매욕이 생기지는 않는다'고. 편집부가 마련한 시도가 가격 상승분에 비해 구입 동기를 총족시킬만큼 충분치는 못했다는 방증이다. 나도 생각이 비슷하다. '리터'나 '미스테리아', '악스트' 등 여러 문예지가 있음에도 선택을 결정짓는 주된 요소는 가격이었다. 책 한 권 값을 내고 잡지를 보자니 어쩐지 아까운 마음이 들었고, 그 마음이 상대적으로 덜했던 악스트에 손이 갔던 게 솔직한 마음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격이 올라도 너무 올라서 구입을 포기하고 말았다. 심지어 살까 말까 고민하던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과도 가격차가 3천여 원에 그쳤다. 이러니 손이 가겠느냐는 말이지.
동네서점이나 교보문고 등의 재고 소진 등으로 구하기 어려워 구독을 포기했던 <볼드 저널>에 이어 <악스트>도 이렇게 안녕을 고하나 싶다.
별개의 이야기지만 '도서구입비' 명목으로 매달 일정 금액이 지원되는 회사에 가면 애사심이 한결 높아질 것만 같다. 정말이다.
별개의 이야기 2. 예전에 패션쇼 취재 갔을 때 누가 황신혜 딸이라고 알려줘서 계속 찍은 모델이 있다. 지금 보니 문가비가 아닌가. 어디서부터 소통이 잘못됐는지. 포트폴리오 정리하며 사진첩 뒤지다가 발견한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