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지만, 덥지 않다

로동의 대가로 앙버터 사 먹길 꿈꾼다

by OIM

다이어리와 랩탑, 아아를 상 위에 둔다. 벽을 등지고 앉아 상을 바짝 당긴다. 다리를 편다. 아, 좋다.

머리 위로 찬 공기가 떨어진다. 선풍기 바람이 에어컨의 날숨을 이쪽으로 넘긴다. 아, 좋다.

꽁꽁 언 아이스팩을 타월로 감싼다. 어깨와 목 사이, 겨드랑이, 등허리에 번갈아 끼운다. 아, 좋다.

바캉스고, 호캉스고,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그저 좋다 아 좋다.



근래 들은 노래 선호도 1,2,3. Vacation - 여자친구/위로 - 정인/모든 날, 모든 순간 - 폴 킴. 하루 종일 듣다 보니 나름 에피소드도 생겼다. 'Vacation'은 틀어놓고 들썩 거리다가 커피 쏟았다. 뭔가 엎지르는 일이 좀처럼 없는 내겐 몇 년만의 사고다. '위로'는 이른 아침, 늦은 밤 눈 감고 듣는 편이다. 그러다 자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와 별개로 장마/미워요/오르막길 삼형제도 참 좋다. 정인이 좋은 걸까. '모든 날, 모든 순간'은 나올 때마다 따라 부른다. 언젠가 노래방에서 불러볼 참이다. 이 세 곡이 요즘 내 생활을 조금 더 풍성하게 해준다. 고맙게도.




이직 엎어지고 한 달 쉬었다. 한 달까지 쉬려던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쉬었다. 좀처럼 마음에 드는 일자리가 없었고 필요조건을 충족하는 일도 눈에 띄지 않았다. 놀고먹었다. 통장 잔고가 준다. 9월엔 추석이 있다. 이런 이유들이 무거워진 엉덩이를 재촉한다. 8월엔 좋든 싫든 다시 일할 생각이다. 다른 건 몰라도 돈 벌어 앙버터 사 먹는 생활이 소확행인 건 알겠다. 그걸 좀 해보려 한다. 우선 빵길따라/만동제과/브레드랩부터 친다.




구직활동에 청사진이 보인다. 사실 청사진인지 적신호인지 잘 모르겠다. 무슨 지박령처럼 또 이쪽 바닥이다. 자기 사진을 하기 위해 밥벌이로 타협한 것이 사진기자라던 어느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 내 글 쓰기 위해 기자를 하긴 해야 할 것인가. 요즘의 화두다.


생각의 타래는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나름 생활 가능한 급여를 제시한 신생 언론 출범 소식에 망설이다가 결국 지원했다. 가든 안 가든 결과 보고 고민하면 될 일이라고 합리화했다. 급여 수준 탓인지 지원자도 예상보다 많아서 '될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근데 됐다. 음.


면접 안내 문자가 왔다. 서류 모집 일정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면접 일정이 잡혔다. 제주행은 경비와 시간 등이 다소 많이 드는 탓에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부르는 경향이 높(다고 믿고 있)다. 2년 전에도 면접 보러 갔다가 현장에서 "함께 하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이번에는 어떨까.


소득이 없는 상황에 경비로 15만여 원을 소모하는 건 타격이다. 면접 갔는데 탈락하면 생돈 날린다. 반대로 합격해도 문제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모든 짐을 제주로 부쳐야 한다. 거주지부터 생활 전반의 모든 게 변한다. 상당한 품이 든다. 무엇보다 모든 과정을 집에 알리지 않고 진행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걱정 안 할 수 없다. 어쩐지 부모님의 한숨을 동반할 듯하다.




짧은 시간 제주도 집을 알아봤다. 갈지 안 갈지도 모르면서 영양가 없는 일을 하는 게 가장 재밌는 법이니까. 어쨌든 직방이나 다방, 지역 웹사이트 등을 통해 매물을 살폈는데 2개 정도가 눈에 띄었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오피스텔과 오션뷰를 자랑하는 부둣가 오피스텔이 그것이다. 둘 다 가격대가 다소 부담스럽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이 정도 선이 최선일 듯하다.


시내 중심가 오피스텔은 각종 편의시설이 건물 내에 있고, 19층이라 시내 전망이 한눈에 보인다. 물론 사진과 실물은 차이가 있기에 실제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다. 전세로 나왔고 대출을 써야 하며 대출 이자가 월세처럼 나갈 예정이다.


부둣가 오피스텔은 방 통유리로 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심지어 방도 10층이라 주변 소음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바다를 볼 수 있다. 위치에 따라 바다를 보는 각도가 달라지긴 하겠지만 홍보 자체도 '오션뷰'로 해뒀다. 대출은 필요 없지만 월세살이로 생활비 지출이 조금 더 크다. 그 정도.



도전은 늘 망설이는 순간에 좌절됐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가장 적절한 때란 건 살면서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을 수 있는 건데 말이다. 기준을 정하는 건 언제나 자신이었는데 주변 시선과 미래에 대한 걱정 등으로 미루기를 수차례다. 정작 그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면서도 자유로워 보이지 않을까 봐 움츠렸나 싶다. 후회나 자기연민 따위도 결국 내 안에서 파생되는 건데 누구를, 왜 두려워했던 걸까. '일자리만 있으면 제주 가서 살고 싶다'는 사람도 수두룩 하건만.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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