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라 Nov 05. 2024

추운 계절이 오면 마녀 스프

[마녀스프]

쌀쌀해지면 

일조량이 줄어 

우울감을 느끼기 쉽다고 하는데, 

그렇다고만 하기에 이 계절은 

좀 구체적으로 슬프다. 


한 해 동안하기로 한 일들의 반도 이루지 못했음을 직시하거나 해놓은 게 없는 거 같을 때 특히나. 아등바등 열심히 한 거 같은 초라한 성적표를 받은 거처럼 기운이 빠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해가 넘어가면 또다시 잘해보자!라는 힘이 생긴다는 것..!) 이토록 몸과 마음에 서늘한 기운이 스미는 계절에 따뜻한 음식보다 더 좋은 게 또 있을까. 이를 테면 냄비와 주걱 하나로 뚝딱 만들 수 있는, 몇 해 년 전 다이어트 푸드로 유행한 마녀 스프와 같은 음식 말이다. 


옛 동화 속 마녀가 마법의 스프를 만드는 장면은 참 좋아했었다. 사람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거나 개구리 같은 걸로 변하게 만드는 마법의 약을 제조하고 있는 거기는 하지만. 계절은 언제나 겨울. 차가운 숲 속 뾰족 지붕을 얹은 오두막집 안. 마녀는 두꺼운 옷을 뒤집어쓰듯 입은 것으로 모자라 모자까지 눌러쓴 채 스프를 만든다. 화로 위 커다란 무쇠솥 안 금방이라도 넘쳐흐를 듯 푸른 빛깔을 내뿜는 스프를. 낡은 소파에 비쩍 마른 검은 고양이는 집 안에 퍼지는 훈훈한 기운에 잠이 들랑 말랑. 이 풍경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갑자기 날이 추워져 그런지 갑자기 이 마녀 스프가 생각이 났다.  비몽사몽 잠이 덜 깬 상태로 닭고기와 자투리 채소, 얼려 둔 완두콩을 한데 볶다가 토마토소스와 물, 동량으로 넣고서 푹 끓였다. 냄비 바닥에 재료가 들러붙지 않도록 주걱으로 젓다가 마녀가 추하게 늙고도, 거느리는 부하 하나 없이 늘 혼자임에도, 외로워 보이지 않는 이유가 이 스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스프가 토마토 스튜처럼 새큼하고 향긋하지는 않겠지만은, 적어도 이 온기만큼은 분명 그녀 또한 느끼는 것일 테니까. 


따뜻한 스튜를 홀짝홀짝 먹다 보면 온몸에 온기가 스민다. 딱딱하게 굳어 있는 무언가 사르르 녹는 거 같은. 뭐랄까, 괜스레 용서받는 기분이 드는 그런 기분이 든다. 초현실적인 마법에 비할 바는 아니더라도 이 또한 마법에 준하는 힘을 갖고 있다. 



토마토스튜 간단 레시피
①  닭고기 (가슴살이나 안심)와 자투리 채소를 볶는다. 
② 토마토소스와 물을 동량 넣고 걸쭉해질 때까지 끓인다. (재료가 잠길 듯 말듯하게 맞추면 된다)

tip 
❶ 과정 ②에서 치킨 스톡 1T를 넣으면 더 맛있다. 
❷ 자투리 채소는 양파와 감자, 버섯이 기본, 그 외 토마토와 가지, 셀러리, 콩, 허브류 등도 추천. 

이전 22화 매주 스타벅스에 가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